[122] 참기름과 간장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농부 어른들이 신혼부부에게 ‘깨가 쏫아진다’고 부러워한다. 농민에게는 깨가 쏫아지는 수확의 기쁨을 알기 때문이다. 장마와 폭염을 이겨낸 참깨밭에서 작은 타원형의 흰 깨알들이 한 줄로 들어찬 4칸짜리 초록 주머니가 회색으로 변할 즈음에 할머니는 검은 천과 지팡이를 들고 깨밭으로 가신다.

 

검은 천을 넓게 펼치고 소속입건(小束立乾, 볏단을 작게 묶어 세워서 건조함. 1970년대 농사행정 용어)한 참깨 묶음을 수평 이동시켜 검은천 한가운데 안착시킨 후 한 단씩 거꾸로 들고 탁탁탁 약하게 두드려준다.

 

가을 태양에 바삭하게 마른 씨방속에서 한 줄로 숨어있던 뽀얀색을 자랑하는 참깨알이 검정천 위에 소록소록 떨어져 쌓이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수확의 행복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또 신혼부부에게 아예 참기름 냄새가 난다는 직설적인 표현도 한다.

 

참깨를 털어서 볶아낸 후 기름틀에 넣어서 천천히 압력을 가해주면 기름틀 아래로 초콜릿색, 조청엿, 아카시아꿀 색을 자랑하는 참기름이 한 줄로 내려온다. 기름을 짜는 할머니는 무리하게 힘을 주지 않는다. 차분히 긴 시간동안 느슨하게 눌러준다. 급하게 누른다고 참기름이 좍하고 내오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어머니들은 출가한 딸, 도시에 나가시는 아들 등 가족에게 향기로운 참기름을 추가한 맛있는 나물을 먹일 기쁨의 표정이다. 방금 뜸 들인 밥위에 계란 후라이를 얹은 후에 참기름 몇 방울 뿌려준 어린 아들딸 밥그릇도 머릿속에 그려볼 것이다.

 

주부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참기름을 숫가락으로 계량해서 음식에 넣었다. 병을 열고 팬에 촤르륵 뿌려주는 옥수수 기름과는 대우가 달랐다.

 

 

인터넷을 돌다보면 옷을 광고하는 코너에 재미있는 비교사진이 나온다. 유명인의 옷맵시를 비교하는 것인데 ‘같은 옷 다른 느낌’이라고 해석한다. 이 낚시사진에 끌려가서 클릭하였으니 이미 광고는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 같은 옷 다른 느낌처럼 참기름과 간장을 음식에 넣는 모습은 같지만 그 이유는 아주 크게 다르다. 간장을 숟가락으로 계량하는 이유는 들어가는 양이 많으면 반찬이 짤 것을 우려하기 때문에 적정량을 넣기 위함이다.

 

반면에 참기름은 더 넣어도 多多益善(다다익선)이지만 숟가락에 계량하여 아끼려는 생각이다. 큰 병 가득한 참기름에서 적정량을 따르는 경험적 생활상식이다. 참기름 양이 과하면 반납하기 위해 깨끗한 숟가락에 우선 따르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서 일하는 우리의 직장에는 참기름 같은 동료가 있고 간장 같은 선후배가 있다. 인사때마다 적재적소에 배치되는 ‘朴참기름’씨에 대한 후폭풍은 朴주무관을 데려가지 못한 간부들의 인사팀에 대한 하루이틀 불만 정도이다. 반면 조직원 대부분이랄 수 있는 ‘金간장’씨는 적당하면 불만이 없지만 과하면 짜서 음식을 망치게 된다.

 

過猶不及(과유불급)하니 중용(中庸)이 좋다. 조직에 잘 맞고 간부들의 입맛에 드는 朴간장씨는 쉽게 구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고소한 참기름만으로는 음식 맛을 다 내지도 못한다. 간장도 필요하고 참기름, 들기름도 있어야 하며 적당한 비빔의 강도가 맞아야 추가되어야 제맛을 낼 수 있다.

 

이 세상 모든 조직이 그러하다고 선배들은 늘 강조한다. 참기름도 되고 간장도 될 수 있는 그런 인적재원은 흔하지 않다. 하지만 세월속에서 단련되어 어느해부터 만능의 ‘참기름#간장’급 인물도 나타난다.

직장인으로서 조직성원의 한사람으로서 본인이 간장인지 참기름인지 ‘참기름간장’인지 아니면 ‘물에 간장탄’ 맛인지 스스로를 돌아볼 일이다.

 

[저자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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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