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자화자찬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지난 5월16일은 공무원 초임 9급 서기보시보 발령을 받은 지 꼭 40년이 되는 날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참 보람된 날이어서 초임 발령장 사진과 함께 소감문을 페이스북에 올리니 동기 한 분이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습니다.

 

40년전 19살 까까머리에 면바지, T-셔츠를 입고 발령받으러 가서 복장 불량으로 화성군청 행정계장님의 面駁(면박)을 받은 후 웃옷을 빌려입고 군수님 발령장을 받아 시작한 公職(공직)의 시작은 硬直(경직)의 출발이었습니다.

 

그리고 40년 동안 발령장 43장을 받으면서 한 번도 긴장을 푼 일이 없습니다. 발령 대상자 인원에 관계없이 줄을 세우고 늦게 오면 야단맞고 일찍 온 공무원 모두에게도 숨이 멈출 것 같은 긴장감을 조성하는 ‘인사계 군기’는 어느 기관에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10초 안에 끝나는 발령장 받기 의전을 위해 30분, 50분을 긴장한 채 대기하였으므로 결재판처럼 뻣뻣한 발령장을 들고 회의실을 나서면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습니다.

 

1990년경까지는 오전에 발령받고 오후까지 이 과(課) 저 부서(部署)를 돌면서 인사를 하고 선배 공무원들은 인사 오는 것이 당연한 듯 여기시면서 늘 반갑게 발령장을 두 손으로 받고 한번 쓰다듬은 다음 다시 돌려주시는 일종의 종교의식을 행하셨습니다.

 

이른바 나라님의 명을 받은 관직이니 그 기운을 받아들여 자신도 다음번 승진을 기약한다는 의미라고 들었습니다.

 

인사발령 다음날 복도에는 이삿짐을 싼 보자기를 든 선후배들이 새로운 부서까지 동행하는 이른바 ‘후행’이라는 참 좋은 전통도 있었는데 요즘에는 조금 줄어든 듯 보입니다만 좀 더 발전시켰으면 하는 참으로 인간적인 의식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공직을 마치면서 발령장 의식을 좀 더 부드럽게 하였으면 하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후배 9급 신규공무원 인사발령장을 주는 행사를 주무과에 가서 과장, 팀장, 주무관 등 공직 선배들이 보는 앞에서 줄 세우지 않고 순서 없이 전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경기테크노파크 승진과 전보인사 발령 의식은 기존의 틀에서 조금 일탈한 재미를 더한 세레모니로 진행하였습니다.

 

아침 9시40분에 1층 현관 로비에 발령 대상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습니다. 5본부의 본부장이 함께하고 첫 번째 본부장이 쌓여 있는 발령장 중 중간의 어느 하나를 뽑아 대상자를 호명합니다.

 

‘김승진씨는 대리로 근무하다가 이번에 과장으로 승진하여 총무팀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발령장을 읽지 않고 인사발령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입니다.

 

승진을 계기로 결혼을 해서 국가시책에 부응해야 한다는 덕담도 이어집니다. 일동이 박수로 축하합니다.

기다리는 이들은 총무팀이 제공한 과일주스, 커피를 마시고 있습니다. 발령장을 전하는 본부장, 원장도 한잔 마시는 중입니다. 발령장 전달이 끝나고 전체가 한자리에 모여서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뒤편에 매달아 둔 플래카드가 살며시 바람결을 타고 움직입니다. ‘榮轉(영전) 榮進(영진)을 축하드립니다’ 이 플래카드는 다음번 인사발령 세레모니에 또다시 재활용될 것입니다. 경기도 내 공무원 여러분의 昇進(승진)을 기원합니다.

 

 

[저자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