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인천 문학경기장이 작아 보이는 이유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수원월드컵을 준비하는 경기도 공무원과 수원월드컵 조직위원회 관계의 일원으로 한국과 중국 팀간 ‘A매치’가 열리는 인천 문학경기장을 방문했다. 他山之石(타산지석), 벤치마킹의 기회로 삼고자 함이다.

 

버스를 내려서 올라가는 길 양편에는 십수년생은 되어 보이는 나무들이 초여름 신록을 자랑하고 있고 경기장 주변에는 그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나무들이 제법 뿌리에 힘이 든 모습으로 일행을 반긴다.

 

2002년 월드컵 경기중 우리나라 대표팀의 마지막 예선경기 등 3게임이 벌어질 인천 문학종합경기장은 2001년 12월 2일 개장했다. 주경기장과 보조경기장, 야구장 등이 있으며 국제 규격의 주 경기장은 지하 1층, 지상 5층, 연면적 1만1천여평 규모로 국내에서 네 번째로 크며 관람석은 5만256개다.

 

특히 '항구 도시' 인천을 상징하는 돛단배 모양으로 만들어졌으며, 돔 지붕은 관람석 98%를 덮고있어 비가와도 경기관람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인천 문학경기장은 넓어졌다 좁아지고 다시 넓어지는 축구구장인 것 같다. 처음 경기장 관람석에 들어서니 5만여개의 자리는 반 정도만 차 있었고 초록색 잔디는 비어 있어서 넓게 보였다.

 

 

그러나 매분 단위로 늘어나는 관객은 점점 경기장을 좁혀오더니 좌측 스탠드를 붉게 물들인 붉은 악마 응원단이 “대한민국! 대한민국!”구호를 외쳐대자 5만 관중을 수용한다는 경기장은 마치 TV 화면 만하게 좁아졌다.

 

함성이 클수록 국민이 하나되는 스포츠의 알 수 없는 마술보자기가 넥타이를 매고 온 관중에게까지도 짜릿한 흥분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랑스러운 것은 예정된 시간에 맞춰 초단위로 행사가 착착 진행된다는 점이었다. 중국 국가가 먼저 연주되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우리의 붉은 악마들은 수천의 손과 수만의 손가락으로 대형태극기를 끌어올렸다.

 

관중석을 덮고도 남을 태극기를 머리에 올린 우리의 젊은이들은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빨리 태극기를 내리고 경기를 보아야겠다는 젊은이는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개인기와 팀웍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누구나 아는 스포츠 상식이지만 이날 경기에서도 중국팀 선수가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자 공은 밖으로 내보내 졌고 다시 볼을 잡은 한국팀은 중국팀 진영으로 볼을 넘겨주었다.

 

 

경기는 0:0으로 끝났다. 그래서 모든 관중이 환호하는 골 장면은 볼 수 없었지만 아주 많은 것을 보았다. 벤치마킹하러 간것이지만 벤치에 앉아서 구경한 한 것이 아니었다. 경기 속에 몰입해서 거대한 경기장을 탁상이 TV를 보듯이 한눈에 보았다.

 

질서 있게 입장하는 인천시민을 비록한 국민들, 최선을 다하면서도 상대팀 선수들 특히 골키퍼를 보호하는 양팀 선수들의 몸놀림, 연속으로 2바퀴를 휘감아 도는 관중들의 파도타기, 초여름 관중석을 가을 단풍처럼 물들이는 응원단의 열기를 보았다.

 

그리고 월드컵은 큰 성공을 앞두고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우리 생에 다시 유치하기 어렵다는 스포츠 축전 월드컵을 한 달여 앞두고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가슴을 뜨겁게 하는 축구경기를 관람하는 것은 일방적으로 보는 단순한 스포츠 중계가 아니었다.

 

관중의 함성을 가슴으로 느끼고 상대를 배려하는 매너를 배우고 최선을 다해 뛰고 달리는 인생의 의미를 배웠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5월26일 수원경기장에서 펼쳐질 한국과 프랑 스팀간의 'A매치‘에서 우리는 또 다른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될 것이다. 인천 문학경기장처럼 수원경기장도 아주 작은 공간으로 함축되어 우리의 가슴에 간직되기를 바란다. (2001)

 

 

[저자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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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