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머슴의 사기 밥그릇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1960년대 농촌에는 머슴제도가 있었다. 봄부터 시작된 머슴의 농사일은 가을 서리가 내릴 즈음 추수를 마치면 근무가 끝난다. 그리고 다음 해 이른 봄에 다시 구두계약을 할 때까지는 휴가기간을 갖는다.

 

머슴살이는 오늘날 일부 기업과 행정기관에서 볼 수 있는 연봉제의 효시(嚆矢)라 할 수 있다. 당시 일을 잘하는 일꾼을 상머슴이라 해서 쌀 12가마니를 받았다. 4가마는 선불로 받고 나머지 8가마는 가을 추수를 끝내고 받았다.

 

머슴 다음으로 중요한 농사일꾼은 소였다. 8살 전후의 소가 가장 일을 잘하고 주인이나 머슴과 호흡도 잘 맞았다. 요즘 코미디 버전으로 말해 소가 10년정도 묶을라 치면 주인집 논밭의 위치를 모두 알게 된다. 머슴이 바뀌어도 주인은 논밭의 위치를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농담을 한다.

 

이른 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농사일은 두엄(퇴비)을 논밭에 나르는 일인데 소등에 싣고 고삐만 쥐고 있으면 10년 동안 같은 일을 반복해온 소는 주인집 논의 가장 깊은 자리에 가서 자리를 잡는다. 두엄 실은 망태의 막대기만 당기면 되는 일이다.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되면 짐승도 기억하게 되는가 보다. 이 소는 주인집 제삿날도 안다고 시골 노인들은 말했다. 제사를 지내려면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드는데 그 과정에서 나오는 비지와 두부국물을 먹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시골집에서 농민과 함께 가족의 일원으로 사는 소는 설날, 추석, 주인의 생일이나 조상의 제삿날을 모두 합치면 한달에 한번정도는 맛있는 두부국물을 먹게 된다.

 

소가 가족의 일원으로 대우받는 것 이상으로 머슴도 대우를 받았다. 늘상 주인과 함께 생활하고 아침식사는 주인과 겸상을 했다. 둥근 상에 된장찌개와 김치, 장조림을 올리고 갓 시집온 며느리의 숭늉 시중을 받으며 식사를 했다.

 

 

방안에서 상을 받아 주인과 마주앉아 식사를 했고 식사를 마치면 사랑채 마루까지 상을 내어 놓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주인과 머슴이 함께 먹는 겸상의 그릇이 달랐다. 먼저 머슴의 밥은 사기그릇에 담는다. 요즘도 시골동네 산소 많은 곳에 가면 이른바 사금파리라는 것이 있는데 그릇 아래 부분에는 모래가 촘촘히 박혀있고 청자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은 옅은 청자색에 짙은 색의 난초그림 문양이 성의 없이 새겨진 그릇이다.

 

이 그릇의 특징은 아래쪽에 불필요한 턱이 1.5㎝가량 있고 그릇의 두께가 최소한 1㎝이상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아래쪽은 좁고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조금 넓어진다. 따라서 여기에 밥을 퍼주게 되면 그릇 속에 든 밥보다 그릇 위에 올라간 밥의 양이 더 많다. 외형상 밥의 양이 많아 보인다.

 

반면 주인은 놋쇠 주발을 쓰다가 나중에 스텐레스(시골말로 스탱그릇)로 바뀌었는데 이것은 머슴의 주발과 모양이 정 반대다. 그릇 위 테두리는 작지만 아래로 갈수록 널어진다. 또 그릇의 두께도 머슴의 밥그릇과 비할 바가 아니다. 외형상 보기에는 밥의 양이 적어 보이지만 실속이 있다는 말이다.

 

세상사를 논하는 말 중에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말이 있다. 조사모삼이라는 말이 연상되기도 한다. 겉으로 들어난 머슴의 밥이나 속에 숨겨진 주인의 밥이나 그 양은 비슷할 것이다. 그런데 밥그릇을 다르게 한 것은 시각적 효과를 노린 계산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삼모사를 말하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요즘에는 과식으로 인한 비만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린이 과식도 문제다. 과거에는 쌀이 부족하고 먹거리가 충분하지 않아서 우선 시각적으로 밥이라도 많아 보이게 하려고 그릇을 차별화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시골 동네에 머슴을 둔 주인이 있고 머슴 밥그릇과 주인의 그릇에 차이가 있다면 그릇은 같은 것으로 준비하고 식사량에 따라 밥을 퍼주었으면 한다. 조사모사이거나 조삼모삼(朝三暮三)이거나.

 

 

[저자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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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