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월드컵 초보관객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2001년 수원 월드컵 경기장은 살아있었다. 준공 전 밤10시경 수원월드컵 경기장을 방문했을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6월8일 저녁 8시. 프랑스와 브라질의 대륙간컵 준결승전 경기를 보기 위해 가는 행렬은 가히 외신에서 가끔 보는 토네이도를 등진 그것과 같았다. 차량과 인파가 같은 속도로 월드컵 경기장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를 걸었나. 막히는 길에 정처없이 서있는 버스를 미리 내려서 걸었기 때문에 거리도 가늠이 되지 않는다. 차량속도가 사람의 속도보다 느린 경우 또한 흔하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우리의 젊은 축구팬, 붉은 악마의 친구들은 다급한 발 거름을 옮기거나 경보를 하거나 일부는 뛰어가고 있었다. 경기시작 시간 8시가 이미 수분은 지났으니 말이다.

 

얼마나 큰지 넓은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경기장 밖을 반바퀴 돌아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등산코스로 치면 하산길의 심정이었다. 경기장은 이미 도자기 가마처럼 달구어져 있었다.

 

군집한 인파의 움직임을 '열광의 도가니'라고 하던가. 이 거대한 경기장은 바로 열광의 용광로였다. 모두 귀한 사람들이지만 축구공에 쏠린 움직임은 서로가 발산하는 열을 받아 단단해지고 하나가 되어간다.

 

금방이라도 녹아 내릴 듯 달구어지는 경기장 열광속에 뭍혀있는 나 자신이 이처럼 작아보인 적은 없었다.

 

경기장의 잔디는 사방에서 내리 쬐이는 빛을 받아 프르름이 더한데 팽팽한 장단지에서 준마의 발목을 통해 전해지는 축구화의 압력을 잘도 견뎌낸다. 4만3천을 수용하는 경기장에 3만5천명을 들어온 것 같은데 본부석 쪽에서 바라본 정면 관중석은 빈자리가 있다.

 

그렇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4만3천 수원월드컵 경기장을 채울 수 있는 것이다. 키가 크다고, 몸무게가 나간다고 해서 두 자리를 채우지 못한다. 세상사 모두가 이런 것 아닌가.

 

초보 관중에게 있어 축구경기장 관람시 유의할 점이 있다. 함성소리만 들어도 경기상황을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러한 것은 아니다. 특히 헤딩슛은 형광등처럼 관중의 함성이 따라가지 못한다.

 

 

순간에 공은 고기잡이 그물 안에 들어가 있는데도 관중들은 함성조차 지르지 못한다. 건너편 스탠드에서 함성소리가 건너오는데 걸리는 시간도 축구경기장에서는 길게 느껴진다.

 

이 이유는 축구경기의 TV중계에 익숙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골이 나면 우리의 TV는 2-3번 보여준다. 여러 각도에서 잡은 화면을 보여주기에 편안하게 골인 장면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곳 경기장에서는 그 순간을 놓치면 다시 보기가 어렵다. 그러나 TV만은 못해도 축구장 우측에 설치된 대형화면에 1번은 보여주는 것을 안 것은 후반전의 중간쯤에서였다.

 

그렇다. 후반전이 지나서야 축구경기를 보는 방법을 조금 알겠다. 경기장 전체를 보면서 순간순간 우측의 화면을 보면 된다. 22명의 선수와 주심중에서 공 잡은 선수는 화면에 크게 나타난다. 그리고 프로급 관중들은 라디오나 소형TV를 손에 들고 있다.

 

우리나라 팀은 4강전에 탈락했다. 따라서 외국팀의 경기임에도 관중의 참여분위기를 고조되어 있었다. 축구 자체를 즐기는 높은 수준에 온 것이다. 리더 없는 파도타기가 경기장 스탠드를 한바퀴 도는가 하면 손빠른 삼삼칠 박수가 이어지고 선수 교체시에도 풍성한 박수를 보내준다.

 

개인기가 연출되면 박수가 터진다. 애국심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팀이 출전한 경기를 보게되면 오늘의 이 느낌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것이다.

 

경기가 끝났다. 주심의 호르라기 소리는 경기만 끝난 것이 아니라 관전도 마무리된 것일까. 선수들이 인사하고 관중은 박수로 답하면 좋겠다. 관중석 바닥을 살펴보니 깨끗한 편이다. 나오면서 쓰레기통에 자신의 쓰레기 봉투를 넣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밖으로 나오니 밤이었다. 경기장에서는 낮과 밤을 잠시 잊었던 것이다. 경기장 분위기에 자신을 잊고 몰입 했던 것이다. 그리고 관중들은 곧바로 일상의 시민으로 돌아와 있었다.

 

 

[저자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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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