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빈깡통과 키보드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빈 깡통이 요란하다는 말이 있다. 속이 꽉찬 깡통은 깡통 값보다 비싸고 중요한 내용물이 들어 있기도 하지만 바닥에 굴러도 소리가 묵직하고 중심을 잡고 있게 마련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고 한다. 검도나 태권도 고수는 절대로 싸움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상대편의 급소를 알기 때문에 함부로 주먹을 쥐거나 발길질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상의 생활에서도 이 같은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좁은 골목길에 수차례 전진과 후진을 해서 차를 주차한 초보운전자는 사이드브레이크만은 아주 빠르게 당긴다. 또, 컴퓨터 키보드가 손에 익지 않은 초보자가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은 엔터키를 힘차게 치는 일이다.

 

우리가 사회에서 직장에서 보면 이와 비슷한 사례가 많이 있다. 일하는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게 된다. 일의 중간 과정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그 정책을 입안하고 검토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갈등이나 시행착오는 간과하고 결과만 놓고 공과를 따진다는 말이다. 이것은 바른 일이 아니다.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은 다양하다고 생각한다. 확인할 길은 없지만 63빌딩을 지을 때 당시의 회장님의 연세가 63세였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가 가정에서 흔히 쓰는 때밀이 타월을 흑인여성을 대상으로 판매했으나 피부에 맞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사업의 내용이나 규모, 시책의 방향과 목표를 결정할 때는 충분한 사전조사가 필요하기도 하고 때로는 과감한 결정도 필요하다. 그래서 선물시장이나 외환분야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30대 중반이 되면 노장이라고 한다. 나이가 들면 그동안의 실패사례가 자꾸만 떠올라 과감한 투자를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프로야구나 축구선수들은 30대 후반이면 노장소리를 듣는다. 교통사고를 당한 가수의 보상금 결정시 그 가수의 장르가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 같다.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60세까지 가수로서 활동할 수 있느냐, 젊은 층의 인기를 얻는 분야의 가수이니 30대 초반까지만 가수로서 일할 수 있을 것이냐를 따지는 것 같다.

 

 

세상 살아가는 일이 이와 같은데 결정된 정책을 집행하다보면 시행착오도 있고 여건이 바뀌어서 결정 당시에는 좋은 계획이 쓸모없게 될 수도 있으며 그 사업에 새로운 수요가 발생하여 추가사업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 깡통이 현재 이 자리에서 쓰레기 취급을 받기 전에는 어느 고급 식탁위에서 맛있는 음식을 담고 있는 그릇이었을 것이다.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깡통이었을 것이다.

 

또, 아파트 단지안에 많은 차들이 주차해 있지만 어떤 차는 엄청난 고생을 해서 그 자리를 잡았을 것이고 때로는 마침 나가는 차가 있어 단숨에 대각선 차선위에 편리하게 주차를 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컴퓨터 엔터키 치는 소리가 큰 것은 글자를 조립하느라 손이 저리고 어깨가 뻐근하여 강하게 쳐서 그럴 수도 있고 속도가 빨라 다른 키와 마찬가지로 큰 소리가 나게 누룰 수도 있는 것이다.

 

결과만을 중시하는 급하게 당기는 자동차 주차브레이크, 찌그러지고 페인트가 벗겨진 빈 깡통, 엔터키 치는 소리만 크게 나는 일들은 줄여야 한다. 잘못된 상황에 대해서는 과정을 살펴서 관용을 베풀어 주고, 잘된 일이라도 추진과정에 잘못이 있으면 같은 시행착오가 반복되지 않도록 지도해야 할 것이다.

 

학교 선생님들이 수학 답안을 채점할 때 정답이 맞았어도 풀이 과정이 없으면 만점을 주지 않는다. 답은 틀렸어도 풀이 과정에 맞는 부분이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점수를 준다.

 

 

[저자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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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