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자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軍事郵便(군사우편)이라는 고무도장이 찍혀있는 노랑색 편지봉투를 접고 접어서 종이 갈피에서 먼지가 나는 편지를 들고 오신 할머니가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을 때 그 편지를 세 번인가 읽어드린 기억이 난다.

 

아마도 “어머님 전상서. 不肖(불초)소생은 이곳 부대에서 몸성히 잘 있으며 열심히 군복무에 임하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이 있었고 “저는 조금도 걱정 마시고 어머님 몸 건강히 계십시오.”라는 말도 있었다.

철부지 4학년 학생은 국어책 읽듯이 편지를 단숨에 읽어 내려갔을 뿐 이웃집 할머니께서 이내 고개를 뒤로 돌리시고 눈물을 감추시던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편지를 다시 접어 돌려 드리면 흰색 거즈 손수건에 정성스럽게 말아서는 고쟁이 주머니에 넣으시고는 잰거름에 집으로 가시곤 했다.

 

군사우편은 자식과 부모를 이어주던 메신져였다. 전화도 없고 사진 찍기도 쉽지 않았던 그 시절에 눈에 익은 자식의 편지지 위 글씨를 보는 것은 부모님의 행복이었다.

 

층층시하 시집살이에 가슴이 저리고 등이 시릴 때 어머니 장농속 한쪽구석에 밀어넣어 두었던 군대간 자식의 편지는 만병을 고치고 온갖 시름을 녹여주는 처방전이었고 그 편지를 읽어드린 초등학생은 잠시 행복을 담아내는 메신저 그릇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편지를 받기도 쓰기도 어렵게 되었다. 급한 연락은 전화하면 된다. 더구나 핸드폰이 일반화되면서 언제든지 시간과 장소의 제한 없이 연락이 가능하니 편지를 쓸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다. 요즘에는 해외에 갈 때 미리 신청하면 자신의 전화기로 지구 반대편에서 걸고 받을 수 있다고도 한다.

 

 

그리고 E-Mail은 시공을 초월한다. 전화기는 상대편이 전화를 꺼두면 통화가 안되지만 E-Mail은 상대편 편지함이 차지 않는 한 전달되고 언젠가는 열어보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에 받을 수 있는 편지는 카드회사 지출내역서, 청첩장, 광고편지 등이 전부다. 요즘은 타인의 개인간 안부편지를 구경하는 순간 “심봤다!”를 외쳐야 할 것이다.

 

그래서 편지를 쓰자는 말은 하지 않는다. 자신도 편지를 쓴지가 언제인지, 현재 우표값이 얼마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차라리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자. 부모님은 먼 곳에 나가 사는 자식의 전화 한 통화면 일주일은 행복하게 사실것이다.

 

지금 이 시간, 우리 모두 핸드폰에 시골 부모님 전화번호를 “첫 번째”에 입력하자. 또는 77번에 입력하고 자주 애용하자. 부모님의 자식 사랑과 자식의 효성이 “철철(77)” 넘칠 것이다.

 

 

[저자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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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