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칠순 어머니를 그리며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불효자가 할 말이 있겠습니까만 늘 마음만 있고 시간이라는 거대한 힘이 허락하지 않으니 안타깝습니다. 파도를 헤치고 바다를 넘나드는 수 만톤급 배가 아니라 차 20여대와 사람 수십명을 태워서는 갈매기와 함께 5분이면 건너가 주름진 어머님 손을 금방이라도 잡을 수 있으련만.

 

강화도 석모도. 보문사로도 유명한 석모도 중간 허리에 서해바다 점점이 작은 섬이 내다보이는 그곳에 사시는 어머님은 오늘도 막내아들 생각을 하시며 갈매기에게 소식을 물으시고 한줄기 작은 바람에게도 손자손녀 작은 손망울이 얼마나 컷는지 물으실 것입니다.

 

경기미의 백미로 치는 강화 쌀, 한여름 더위를 시원히 씻어내는 花紋席(화문석), 모든 이의 건강을 도와주는 인삼, 그리고 무엇보다도 깨끗한 물, 맑은 공기와 함께 영혼의 아픈 상처를 씻어줄 것만 같은 마니산.

 

강화는 경기도 역사의 현장이었다고 합니다. 단군께서 하늘에 제사를 올렸던 마니산 참성단과 단군의 세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을 비롯 선사시대의 고인돌이 곳곳에 있습니다.

 

고려시대 대몽항쟁 39년간 도읍지인 고려궁지와 팔만대장경 판각지, 국보 제133호로 지정된 고려청자가 출토된 지역이며, 조선시대를 거쳐 구한말 서구열강의 침입으로부터 국가를 지키기 위해 격전을 치른 병인, 신미양요의 전적지 광성보와 초지진을 포함한 5진7보53돈대의 국방유적등 고대에서 근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련과 역경을 이겨낸 호국의 얼이 서려 있는 지역이라고 합니다.

 

역사는 그렇게 흐르는 것이겠지만 그러나 무엇보다도 어머니 같은 강화도를 오늘 아침 이별의 아픔으로 그리워 하는 것은 그 곳 가는 길이 예전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이른 아침부터 채소를 가꾸고 밭이랑을 일구며 땀흘리시는 삶의 터전, 가랑잎만 모아도 녹차향이 나고 갯벌 짙은 향기가 감도는 그곳 강화의 석모도가 몇 년전부터 간판을 바꾸어 달았기 때문입니다.

 

 

김포를 지나 강화를 지나 석모도를 건너 서해바다로 나가도 나가도 경기도였고 쾌속선을 타고 수시간을 달려도 경기도 옹진군이었습니다. 저 먼 수평선의 무인도에 사는 갈매기도 경기도 가족이었습니다.

 

몇 달을 별러서 가는 어머니, 아이들의 할머니 만나러 가는 길이 전처럼 용이하지 않은 것은 우리 가족만의 느낌일까요. 명절이고 생신날 부모님 뵈러 가는 강화가 고향인 모든 이들도 같은 느낌일까요.

 

산과 들은 예전의 그 모습이고 사는 이들도 그대로이건만 어머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 개운하지 않은 것은 그 곳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어서일까요.

 

석모도의 새벽과 밤을 그리는 것으로도 자주 뵙지 못하는 어머님, 그 슬하를 떠난 기러기 같은 마음을 조금이라도 추스릴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땀과 정성만으로도 통통하게 살이 찌는 순무는 그냥 먹어도 어머니의 냄새가 나고 김치를 담가도 당신의 향기가 나는 것은 강화도가, 석모도가 우리의 영원한 고향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이들이 TV를 보다가 강화도 소리만 들려도 공부방을 박차고 뛰어나오는 것을 어찌 나무랄 것입니까. 갈매기만 보아도 강화도를 생각하고 선착장만 보아도 석모도의 그 부드러운 해안선을 떠올리는 것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어머니. 불효자가 된 것은 저뿐이 아닌가 합니다. 내 살던 동네에 큰길만 나도 서먹한 것이 고향을 그리는 나그네의 심정인 것을 신작로가 아니라 땅덩어리를 잘라낸 이 아픔을 어찌 견디란 말입니까. 이 작은 가슴으로는 別離(별리)의 그 아픔 더 이상 견디기가 참으로 힘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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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