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서해대교 7,310m 105개 기둥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7,310미터와 18줄, 105개 기둥의 예술

 

서해대교는 거대한 設置(설치) 藝術品(예술품)이었다. 평택시 포승면 희곡리와 충남 당진군 송악면 복운리를 연결하는 국내 최대길이의 교량이다. 흔히 대교라는 말로 긴 다리를 표현하는데 서해대교는 차라리 서해 큰 다리라고 해야겠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려 도착한 곳은 서평택IC. 프랑카드 글귀가 마음에 든다. “평생에 단한번 마음것 다리위를 걸을 수 있다”는 말이다. 서해대교 준공을 기념하는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멀찌감치 차를 세우고 웅장한 다리 밑은 걸어서 행사장 입구에 도착하니 수천, 수만의 인파가 다리위를 지나고 있다. 먼 발치로 다리 위를 바라보니 작은 개미 머리같은 사람들의 뒷모습이 보인다. 머리만 보이는데 빨리 움직이는 몇사람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을 보니 마라톤 경기가 시작되었나 보다.

 

다리 위의 모습은 달랐다. 인파속을 비집고 다리위에 올라가니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그것은 인간만이 바다 위 창공에 설치할 수 있는 상상의 비경이다.

 

대리석 덩어리속에 숨어있는 모나리자 상을 볼 수 있는 조각가가 있어서 우리는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고 흰색 캠퍼스 위에 바다를 만들고 거대한 산을 만들고 같은 크기의 종이 위에 더 작은 물방울을 거대한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화가가 있어 우리의 영혼이 아름다운 것일까.

 

이곳 바다 위에 다리를 건설하겠다는 생각을 한 그들도 대단하지만 감히 그 계획을 상상을 통해 설계를 하고 설계대로 공사를 해낸 연인원 300만명의 용기와 예술성에 머리가 숙여진다.

 

키가 작아도 150이고 커보아야 180이 조금 넘는 것인데 도대체 7,310미터의 예술작품을 설치하겠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었을까. 더구나 바다 중간에 평택항을 넘나들 대형 컨테이너선을 생각해서 다리를 62m 상공 쇠줄에 매달았으니.

 

독립기념관 탑처럼 서 있는 2개의 기둥에 포물선을 그리며 매어 놓은 쇠줄이 양쪽을 각각 18줄이니 줄이 72개인데 가까이 가서 보아도 쇠줄은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쇠줄이 다리를 당기고 있는지 교량 상판이 쇠줄을 떠받들고 있는지 서로 조화된 모습이 그냥 보기에 좋으라고 매어놓은 예술품의 한 부분인 듯 보인다.

 

저렇게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서해바다 하늘중간을 가로지르는 모습은 멀리에서 보나 가까이가나 힘들어 하는 모습이 없어 좋다. 그 많은 인파가 몰려들면 혹시 다리가 힘들어 할까 하는 걱정도 되련만 오히려 다리밟기 행사에 찾아온 전국의 선남 선녀에게 장난이나 거는 듯이 다리 중간은 가볍게 흔들어 준다. 소인국의 흔들의자 같기도 하고 영화 촬영을 위한 셑트 같기도 하고.

 

다리 위를 걷는 다리가 아프다. 마라톤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의 다양한 역주모습을 보면서 경기도에서 충청남도를 향해 걷다보니 저 멀리 4개의 피라미드가 무지개 처럼 서있다. 저만큼 이려니 생각하고 걸어도 걸은만큼 저멀리 물러서 있다. 이 만큼이면 만나려니 걸어가도 그만큼 뒷걸음질 친다.

 

 

그냥 쉽게 182m의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하겠다는 것인가? 사람의 두 발을 다리라고 하는 것이 서해대교를 다리라 하는 것이 다리가 아파야 다리를 제대로 알 수 있다는 의미인가.

 

양도의 경계쯤 되는 곳에 도착하니 갑자기 피라미드가 없어졌다. 서해바다의 파도와 가을볕의 조화로운 모습에 취하여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피라미드는 어느새 머리 위에 있다. 멀리서 그냥 쇠줄이거니 생각하였던 18가닥의 아치는 다리 상판과 한 몸이 되어 있었고 105개의 교각은 운치있고 여유있는 곡선을 그린다.

 

저 쇠줄 속에는 얼마나 많은 실선들이 뭉치고 감겨서 거대한 철 동아줄이 되었을까. 앞으로 몇 백년간 이 교량은 숨쉬고 있을까. 100년 후, 200년 후까지도 다리를 버텨줄 쇠줄이 되기 위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튼튼한 쇠줄 사이로 평택항이 보인다. 서해안시대 남북을 연결하는 대동맥중 오른팔뚝에 불룩 튀어나온 대동맥이 서해대교라면 그 동맥의 맥박을 짚을 수 있는 곳이 평택항이다. 평택항은 바다를 통해 대륙을 연결하고 이 서해대교와 고속도로를 통해 남북을 연결하고 중국대륙과 시베리아, 유럽을 관통하게 할 것이다.

 

한반도 대동맥의 맥을 짚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오늘 이 순간 이 자리에 서 있게 한 그 무엇이 있는 것일까. 오늘 이 자리에 서 있는 우리 모두는 무슨 결심을 해야 하는 걸까?

 

내려와서 다시 본 서해대교는 또 달랐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큰 다리 밑을 지나면서 다시 한번 하늘을 보았다. 오르기 전에 보았던 그 모습이 아니다. 아주 다르게 보인다. 오르기 전에는 잘못 보았던 것이다.

 

소금 3가마를 먹어야 그 사람 속을 안다고 했던가? 사람의 속마음을 아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제 한번 올라보고서 서해대교를 말하는 것은 결례일 것이다. 설계한 사람, 시공한 사람, 그리고 몇일 동안 서해대교를 다녀온 또 다른 많은 분에게 미안한 일이다. 앞으로 개통되면 차로 달려보고 그래도 궁금하면 옆길에 차를 세우고 더 많이 살펴보고 나서야 제대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서해대교의 반을 걸어보고 서해대교에 대해 무슨 할 말이 많을까. 더 많이 걸어보고 가까이에서, 멀리에서 바라보고, 차를 타고 보고, 배를 타고 살피고, 평택항에서 관망해 보고 당진군에서 처다보고 나서야 제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더구나 가을에 보고, 겨울에 건너보고, 봄에 살펴보고, 여름 소나기속에서 서해대교를 달려보고 나서야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번 다녀와서 이렇게 아는체 하는 사람에게도 서해대교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내 줄 것만 같아 다행스럽고 믿음직하다. 1993년 11월4일생이다. 2020년에 보니 27세 청년다리가 되었다.

 

 

[저자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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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