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덕혜옹주묘 남양주에 있습니다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고종황제께서 61세 회갑을 맞으신 1912년에 고명딸 덕혜옹주를 얻으십니다. 고종은 요즘 유치원의 嚆矢(효시)랄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해 덕혜옹주(德惠翁主·1912-1989) 교육에 정성을 들입니다.

 

덕혜옹주의 교육을 위해 덕수궁(경운궁)에 처음으로 유치원이 설립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유치원 1회 졸업생이 덕혜옹주입니다. 덕혜옹주는 9세까지 ‘복녕당 아가씨’로 불리다가 1921년에 덕혜옹주로 봉해졌습니다. 1925년 일제가 유학이라는 명분을 세워 일본으로 데려갔습니다.

 

일본에서 영친왕과 한집에 살면서 학교를 다녔고 19세에 소다케유키(宗武志)와 정략 결혼해 딸 하나를 낳았는데 일찍 그 딸을 잃고 맙니다.

 

딸을 잃은 아픔과 이혼, 그리고 해방된 조국에 귀국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겹쳐서인지 1946년에 조현병으로 입원합니다. 그리고 신문기자의 노력으로 1962년 대한민국으로 귀국해 창덕궁 낙선재에서 기거하십니다.

 

영화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리고 역사는 면면히 이어져 덕혜옹주는 1989년 4월21일에 세상을 떠나시고 남양주시 금곡동에 소재한 아버지 고종황제의 홍유릉 인근에 묘소에 안식처를 마련하고 영면하십니다.

 

 

영화 ‘덕혜옹주’가 개봉된 그날 오후 남양주시 공무원 25명이 영화관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영화 관람 후 감상문을 쓰면 어떨가 제안하였습니다.

 

덕혜옹주는 힘들지만 치열한 삶을 살았고 우리가 모르는 대한민국 마지막 황녀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 미래를 향한 큰 희망의 메시지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남양주시를 위한 영화라 생각한 것입니다. 덕혜옹주님이 남양주시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공무원들이 업무 중 가장 힘 들어 하는 것은 국경일 축사를 쓰는 일, 각종 행사의 대회사를 작성하는 일입니다. 더구나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쓰느니 차라리 요즘 치열한 폭염 속에서 콩밭을 매겠다고 호미 들고 나설 기세입니다.

 

거지에게 먹여주고 입혀 줄 것이니 아이를 보아 달라 했는데 1시간 만에 아이 내려놓고 동냥자루 다시 들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아이보기 보다 더 힘든 일이 글 쓰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덕혜옹주의 묘를 비롯해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를 모신 홍유릉 등 많은 역사유물이 있는 남양주시의 공무원들이 이 영화를 본 뒤 역사를 재인식하고, 시민들에게도 우리 문화와 역사를 알리는 데 앞장서주길 바라는 취지에서 ‘덕혜옹주’ 영화 관람 감상문을 쓰자고 제안하였고 간부 공무원들은 이를 흔쾌히 수용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남양주시청 간부들이 영화감상문을 모아 작은 자료집으로 만들었습니다. 허진호 영화감독, 덕혜옹주 손예진, 김장한 역 박해일, 궁녀 복순 역 라미란 님 팬클럽이 되어 자료집을 동봉한 편지를 보냈습니다.

 

언론을 통해 남양주시 공무원들이 덕혜옹주 영화 개봉을 계기로 역사를 다시 보고 이를 통해 시를 홍보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공무원들은 행정과 홍보의 연계성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감상문에 언론보도를 보탠 두 번째 자료집을 발간하여 각 부서에 배부하였습니다. 다른 행정을 추진할 때에 이번 사례를 참고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남양주시 공무원 사이에서는 나비효과와도 같은 작은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안전기획과 직원들은 단체로 영화 ‘터널’을 보면서 안전의식을 키웠고 총무과 직원들도 영화 ‘덕혜옹주’ 단체관람을 통해 새로운 역사인식을 다졌습니다. 아울러 각종 회의중간 숨 고르는 시간에 단골소재로 덕혜옹주 이야기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후 지인의 협조로 영화제작진과 연결되었고 문화재청의 협조를 얻어 일시 개방이 가능해진다면 덕혜옹주 묘역을 방문하겠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남양주 조안면 북한강로에 소재한 남양주종합촬영소 실내세트에서 영화 일부를 찍었으므로 제작진들도 남양주시와는 친근한 사이라 할 것입니다.

 

남양주시에는 고종황제와 덕혜옹주가 계십니다. 명성황후도 함께 하시고 순종황제도 잠들어 계십니다. 덕혜옹주 영화에 함께 출연하신 영친왕의 英園(영원)도 인근에 있고 의친왕, 이구 황세손도 같은 산자락에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굽어 살피시는 참으로 걷기 좋은 이 산책로를 ‘차분하고 단아한 歷史(역사)의 길’이라 칭하고 싶습니다. 영화 덕혜옹주 개봉을 계기로 ‘덕혜길’이라 불렸으면 더더욱 좋겠습니다.

 

 

 

[저자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