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펜대’들의 삽질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강원도 동해시 수해현장은 모래와 자갈을 상대로 싸우는 전쟁터였다. 1925년 7월 18일 을축대홍수 이래 처음이라는 노인의 말씀을 들었고 산불이 난 자리에 산사태가 발생한 것은 자연이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로 이해하였으며 밀려오는 물기둥을 피해 달리다가 팔을 다친 할머니의 말씀으로 그날 상황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일행은 일요일 아침 5시50분에 집결하여 3대의 버스를 타고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을 향해 출발했다. 흔들리는 버스안에서 도시락으로 아침을 먹었다.

 

고속도로를 지나 동해시로 들어서자 곳곳에 수마의 상처가 일행을 압도한다. 신문에서 본 항공사진이 실감난다. 이어서 도착한 수해현장은 전쟁터였다. 가재도구가 길 앞에 늘어서 있고 계절을 뛰어넘는 빨래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다리 상판이 털석 주저앉았고 시멘트 공장을 연결하는 구조물(수로와 비슷한)이 물살에 밀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조금 전 올라오다 본 철 구조물이 바로 그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수해복구 현장에는 이미 굴삭기와 덤프트럭이 굉음을 울리며 재건의 의지를 선도하고 있고 군장병과 벌써 도착한 자원봉사자와 이재민들도 복구에 나서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도착하자마자 동해시 공무원의 안내로 현장에 투입되었다.

 

방안으로 밀려온 진흙과 모래를 퍼내고 물에 젖은 창고를 정리하였으며 아직도 농경지로 흐르는 물줄기를 제자리로 돌리는 데 땀을 흘렸다.

 

어린이 키만큼 쌓인 모래밭에는 유모차가 묻힌 채 바퀴 하나만이 가냘프게 보이고 할머니 영정사진에 묻어있는 진흙을 아직도 닦아내지 못했으며 교과서를 간수 할 여유조차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날의 참담했던 상황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며칠을 더 걸려야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릴 수 있을까.

 

그래서 수해현장에는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 굴삭기와 덤프트럭이 할 일이 있고 삽이 필요한 작업이 있고 손이 필요한 집도 있다.

 

일행이 이날 퍼낸 흙과 모래를 다 합쳐도 굴삭기 몇 번 퍼낸 양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중요한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필요할 때 달려가서 재난과 싸우는 분들에게 작은 힘이 되었고 복구 의지를 밝히는 작은 불꽃이 되었다고 자부한다.

 

 

중국의 새 한 마리가 큰 강을 메워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모래알 하나를 물어다 강물에 던지고 수심이 얼마나 낮아졌나 되돌아 보았다는 말을 어느 강연에서 들은 것 같다. 미력이나마 복구지원에 참여한 것은 개인적으로 보람된 일이었다.

 

특히 수재민과 함께 삽질을 하고 흙투성이 장갑낀 손을 덥석 잡으며 아픔을 같이 한 경기도청 간부들의 존경스런 모습도 가슴 벅차게 와 닿는다. 그리고 바쁜 일정을 덜어내어 하루를 복구현장에서 함께 한 모든분들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새 한마리가 강물을 메우지는 못하고 100여명 공무원들이 자연의 재해를 일거에 복구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힘이 된 것 같아 마음이 즐겁다. 앞으로도 동해시 삼화동 주민들은 비가 와서 하천이 불어나면 이름모를 사람들이 다녀간 경기도를 떠올릴 것이다.

 

복구에 참여했던 일행들도 매년 한 두 번은 그곳을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 “4가구 중 혼자만 수해를 입지 않아 미안하다”며 물과 막걸리를 들고 우리를 따라다니시던 할머니 말씀이 생각난다.

 

“내가 보니까 열심히는 하는데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아. 펜대여!” 

 

 

[저자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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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