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살면서 만나는 인연들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인연입니다. 양친이 돌아가시니 고애자가 되었습니다만 중학교 1학년 때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孤子(고자)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만 돌아가신 경우는 哀子(애자)가 되는 것이니 이제는 孤哀子(고애자)가 되었습니다.

 

先親(선친)이란 돌아가신 아버지를 이르는 말이니 인사말에서 고자, 애자, 고애자는 부모님과 관련한 설명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인연을 주신 분이 부모님입니다. 그러니 두 분의 만남이 자식에게는 엄청나게 소중한 인연이 됩니다. 두 분은 부부로 만나는 인연이지만 자식은 태어나는 인연을 맺는 것입니다.

 

태어남도 300,000,000×3×12월로 계산해 봅니다. 3억의 정자와 3개의 난자가 12개월 동안 인연의 끈이 이어져야 10개월 어머니와의 더 깊은 인연으로 세상에 태어난다고 합니다.

 

1겁이라는 세월이 사방팔방 15km가 되는 드넓은 철옹성안에 가득한 종자 중에 작은 것 중 하나인 겨자씨가 가득차 있는데 100년에 1개만 꺼내는 세월이라 했습니다. 부모님이 동시대에 5살 전후의 나이 차이로 태어나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습니다.

 

이 시대 동시대에 잠시 스치듯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도 어러운 인연으로 태어난 아들과 딸입니다. 어떤 이는 대기업의 CEO가 되고 더러는 이사가 되고 사원이 됩니다. 정치권에도 초선의원이 대통령이 되고 7선 의원은 국무총리 재선~5선의원이 장관에 취임합니다.

 

국회의원 3선이면 10년이 넘었는데 장관 후보자 청문회장에서는 옷이 다 벗겨지고 온몸이 흉터투성이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국회의원으로서는 우렁차고 자신만만한 분들이었는데 장관 후보자가 되면 또 다른 얼굴을 한 사람으로 국민 앞에 나타납니다.

 

청문위원의 지적 이전에 언론으로부터, 주변의 지인의 폭로, 이해 관계인의 언론제보 등으로 참으로 ‘유감스럽게’됩니다. 정치인은 ‘유감’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정치인의 遺憾(유감)스럽다는 말은 悚懼(송구)하고 죄송스럽다고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정치인이 유감스럽다고 말하면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정치인이 죄송하다, 송구하다고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합니다. 여론에 밀리고 논리가 약해지만 하는 말이 ‘유감스럽다’정도입니다.

 

그것도 직접 얼굴을 내밀어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서면으로, 대리인을 통해서, 더러는 페이스북에 올리고는 사과했다 합니다.

 

정말로 많은 정치인들이 유권자들과의 깊은 인연으로 표를 받아서 정치일선에 나옵니다만 애시당초의 생각과 마음먹은 바 대로 활동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도당, 중앙당의 정강정책이 있고 정부여당의 입장이 있으니 대부분의 정치적 판단이나 결정은 수뇌부의 지침에 따라야 하는 것이 정치인의 현실입니다.

 

이를 어기면 排斥(배척)을 당하고 공격을 당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니 소신있는 정치인은 롱런하지 못합니다.

 

결국 협상과 타협의 약삭빠른 인물이 되어가거나 현실 타협적인 ‘정치적인’ 인물이 되는가 봅니다. 所信(소신)을 가지고 정치를 하다가 밀려나가거나 자신의 결백을지키기 위해 自殺(자살)에 이른 사례를 당대에도 여러 번 목도하는 바입니다.

 

국회의원이 되면 지역구 도의원, 시의원, 정무직에 정치 잘하는 인물을 쓰기보다는 자신의 심복으로 일할 사람을 쓴다고 합니다.

 

다 그렇게 하지는 못하겠지만 다수의 유권자들이 보기에는 그래서 선택의 폭이 좁다고 말합니다. 인물을 키우기 보다는 자신을 응원하는 용품으로 剝製(박제)시키는 경우를 많이 본다고 합니다.

 

1960년대 화성군에서 발생한 부정선거를 언론에 제보하여 정치인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개표한 투표용지를 화장실에 버렸는데 이를 찾아내어 신문기자가 사진을 찍어 보도하도록 한 공을 세운 청년 이야기가 있습니다.

 

1963년경에는 12개월 날짜들이 한 장의 종이위에 그려진 국회의원 달력이 집집마다 사랑방에 있었습니다. ‘국회의원 ooo 드림’이라 적혀있는 달력입니다. 국회의원 얼굴에 낚서를 했다가 아버지의 꾸중을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지지하는 후보였습니다. 여러 번 국회의원을 한 분으로 야당이었습니다. 어려서는 野黨(야당)이라는 말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어른들은 야당이라고 말하면서 그 상대개념의 與黨(여당)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공직에 들어와서 주무계장이라는 말을 쓰는데 우리 무서에는 ‘주무계장’이라는 직책을 가진 계장님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부서에 가서 찾아보았지만 만든 어느 계장도 “주무계장”이라는 찬란하게 빛나는 자개로 만든 名牌(명패)를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나이들어 이해한 바로는 정부와 함께하는 정당이니 더불어 일 한다고 與黨(여당)이라 하고 정권을 잡지 못한 정파는 들판을 돌아다니며 다음번 정권쟁취를 노린다 해서 野堂(야당)이라 한다고 하는군요.

 

정치에서 현재 정권을 잡고 있지 않은 정당이라고 사전에서 풀어주네요. 여당은 정당정치에서 현재 정권을 잡고있는 정당이라 해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당은 하나요 야당은 하나 이상인 것입니다.

 

공직에서의 주무계장은 여러 명의 계장 중 선임을 지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조례와 규칙에 따라서 당연직으로 인사, 회계, 물품관리의 담당 계장으로 일했습니다. 주무계의 직원중 庶務(서무)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과의 업무를 담당해야 했습니다.

 

庶務(서무)라는 말은 ‘별로 중요하지 않으나 처리하기 귀찮은 업무’라고 풀이됩니다. 공직 초기에 서무를 담당했는데 庶務(서무)를 書務(서무)로 해석하여 ‘모든 문서는 서무로 통한다’는 신념으로 사무실에 큰 혼란을 준 바가 있습니다.

 

군청에서 면사무소로 보내오는 문서를 보름동안 홀딩하는 바람에 군청에 보내야 할 보고서가 늦어지고 독촉장이 오고 부면장님이 도장을 찍어서 사과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래서 총무계장님이 면사무소내 인사배치에서 산업부서로 전출하라 하였고 이에 반발하여 ‘사표서’를 제출한 바가 있었습니다.

 

공직에서나 일반 회사에서도 퇴사하겠다는 뜻을 서면으로 제출하는 경우 ‘사직원’이라 합니다. 辭職(사직)을 願(원)한다는 문서표현입니다. 구두로 표현하는 것은 절차상 애매하고 自筆(자필)로 백지에 辭職願(사직원)이라고 써내야 합니다.

 

사직하는 이유는 100% ‘일신상의 理由(이유), 事由(사유)’이어야 합니다. 월급이 적어서 사직한다, 상사의 갑질로 사직한다, 동료와의 충돌로 그만둔다는 표현을 한 사표는 총무·인사부서에서 받아주지 않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낼 곳조차 없는 辭職願(사직원)이지만 현직에서는 늘 사직을 하겠다는 불필요한 용기가 들끓을 때가 몇 번 있었습니다. 발전적인 사직원은 내야 하겠지만 기분에 흔들려서 쓰는 사직원은 내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을 切磋琢磨(절차탁마)하는 마음으로 쓰는 사직원은 권장할 수도 있지만 업무가 어렵다고, 조직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풀지 못하겠다며 내는 사직원은 반대합니다.

 

1970년대 행정조직에서는 일괄사표를 내고 통일벼를 심으러 다녔습니다. 白紙(백지)신탁처럼 사표를 써내고 통일벼 실적이 부진하면 수리하겠다고 했습니다. 내지 않을 수 없는 사직원이었지만 이것을 수리한 기관장도 없었습니다.

 

살아가면서 만났던 수 많은 인연들의 도움으로 오늘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제 70, 80세에 이르신 선배님들을 뵙곤 합니다. 지난번 모임에서 큰 돈을 내서 15명 선배들께 점심을 대접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선배들이 뒤에서 옆에서 보살피고 마음을 조렸음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깊은 인연의 끈으로 연결된 채 함께 근무한 나날들이 있었음을 마음에 새겨봅니다. 그런 인연의 끈은 세월이 갈수록 더 질겨지는 것 같습니다.

 

 

[저자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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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