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컴퓨터 이야기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콤퓨터’라고 워딩을 하면 프로그램이 스스로 ‘컴퓨터’라고 수정해 줍니다. 그래서 ‘콤퓨터’라고 모자를 씌우니 자체수정에 걸리지 않습니다.

 

요즘에야 모든 공무원과 회사원이 책상 위에 마우스와 키보드를 겸비한 깔끔한 PC를 한 대 이상 보유하고 있고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태블릿 피씨 등 첨단 장비로 무장하고 있습니다만 과거의 공직사회의 IT 상황은 많이 다릅니다.

 

1984경, 37년 전으로 돌아가 보면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계장님 양수책상을 중심으로 次席(차석)과 三席(삼석)이 비행기 대형으로 양 날개를 달고 있고 7급 8급의 책상이 도열해 있습니다. 천정에서 내려다보면 항공모함이 동해 바다를 항해하는 형상입니다.

 

그리고 책상에는 검은색 전화기가 2대1조로 배치되어 총 8대가 있지만 전화번호는 2개입니다. 대개 행정전화 번호는 2121, 4121입니다. 이 전화기는 계장님 책상위에서 시작되어 서무담당에게 연결되어 있어서 흔히 앞 번호로 2번 전화, 4번 전화로 칭합니다.

 

그리고 책상위에 서류가 몇 장 쌓여있습니다. 결재판과 고무명판이 보입니다. 계장님의 명패와 이름 석자, 그리고 旣決(기결), 未決(미결), 保留(보류)함이 있습니다.

 

특히 당시에는 당당하게 자리한 대형 재떨이가 있습니다. 오전에 한번 수북, 오후에 두번 수북, 담배꽁초가 쌓입니다. 컴퓨터는 없습니다. 컴퓨터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타자를 치면서 열심히 행정업무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1980년대 초 어느 날 경기도청 문서계에 중앙부처 과학기술처로 추정되는 기관에서 택배를 보내왔습니다. 종이박스 속 스티로폼으로 곱게 포장된 물건의 정체는 다름 아닌 ‘컴퓨터’라는 것입니다. 텔레비전 화면도 있고 타자기 자판도 있고 네모난 도트프린터가 들어 있습니다.

 

이 처음 보는 물건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어느 부서에 주어야 하는 택배인가? 이 해괴한 기계, 컴퓨터를 어느 부서에 주어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컴퓨터라는 말을 영어사전에서 찾아보니 [다음영어사전]에 전자 회로를 이용한 고속의 자동 계산기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숫자 계산, 자동 제어, 데이터 처리, 사무 관리, 언어나 영상 정보 처리 따위에 광범위하게 이용된다고 설명되는데 자동 계산기라는 말이 크게 보였습니다.

 

그리하여 영화 ‘부시맨’에서의 콜라병처럼 어느 날 번뜻 공무원 앞에 나타난 UFO와도 같은 이 컴퓨터는 통계부서에 배정되었습니다.

 

어느 날 기획관리실장이 문서결재를 하던 중 문서 요지가 인쇄된 것을 발견합니다.

 

“아니 이 사람아! 얼마나 수용비 예산이 많다고 해도 결재문서 요지를 인쇄해서 붙이는가?”

 

“아닙니다. 실장님!!!, 저희 과에 컴퓨터라는 물건이 있는데 이 기계에 단어를 치고 한자로 바꾸면 이렇게 인쇄되어 나옵니다.”

 

“그런 장비가 있어? 그러하다면, 이 기계는 보고서를 많이 만드는 기획부서에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후 실장님의 지시에 따라 장비가 옮겨지고 기획부서에 이 컴퓨터를 전문으로 담당하는 직원이 배치되고 이 직원이 서울에 있는 컴퓨터를 납품하는 본사에 가서 4주 교육을 받았습니다.

 

특히 이 장비는 기획계장님이 직할로 관리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업무와 관련한 중요문서는 이 기계를 통하도록 합니다.

 

어느 날 기획계장이 중요 보고서 초안을 기안하여 워딩을 부탁하니 50분이 조금 더 걸렸습니다. 인쇄된 개조식 보고 문서를 다시 검토합니다.

 

기획문서란 보고자와 보고를 받는 분의 마음에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관장에 따라 기획부서의 보고서 작성 틀이 변합니다.

 

하지만 기본은 변하지 않습니다. 문장이 길면 줄이고 짧은 문장은 늘려서 다시 워딩을 부탁합니다. 워딩 담당자는 5분 만에 문서수정을 완료하여 다시 계장님께 넘겨줍니다.

 

밖에 나가서 저녁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와 보고서를 다시 검토한 후 최종 보고하겠다는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선 기획계장과 차석은 5분 만에 다시 가져온 인쇄된 보고서를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처음에는 1시간 가까이 걸렸는데 이번에는 5분도 안 걸리나?”

 

“아~ 예, 이 기계 속에는 문서를 저장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한번 작성한 문서를 기계가 기억한답니다. 기계가 문서를 기억한다는 말입니다. 부르면 愛玩犬(애완견) 강아지처럼 쪼르르 문서가 달려온다는 말이지?

 

 

그 기계 속에 무슨 조화가 들어있기에 종이에 인쇄할 글이 들어있다가 부르면 나오고 들어가라면 애완견처럼 말을 잘 듣는다는 말인가요.

 

이후 모든 부서의 예산편성 시 1순위 사업은 이 워드프로세서 구입요청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준을 세운 바 컴퓨터는 1988년에 국에 1대, 1990년경 과에 1대를 거쳐서 나중에는 계에 1대의 시대를 맞이합니다.

 

결국 1994년 전후에 드디어 공직사회에 ‘1인1PC 시대’를 맞이하고 동시에 찾아온 ‘1인1전화기 시대’와 함께 행정의 혁신시대를 맞이합니다.

 

그리하여 각종 장비의 열을 식히는 장비 속 환풍기 때문인지 칸막이사무실이 생겨났습니다. 칸막이를 하니 조용한 사무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열심히 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 공간적 단절이 불통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동료직원의 얼굴을 못 보고, 결재하시는 팀장, 과장의 표정을 읽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칸막이를 다시 철거하고 소통하는 행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른 팀과의 공간은 장비의 소음이나 열을 식히는 환풍구를 설치하고, 같은 팀 동료간의 칸막이는 철거했습니다.

 

요즘 코로나19로 인해 아크릴 투명 칸막이를 설치한 것을 보면서 그 당시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1인1PC 시대를 맞이하면서 정보와 자료는 플로피 디스켓에 담아 보내면 상대편 PC에 저장하고 다시 꺼내서 수정하고 합산하는 작업을 통해 행정을 발전시켰습니다. IT는 더 발전하여 작고 견고해진 USB시대를 맞이하여 간단한 선물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고급 장비의 보급으로 글씨를 못 써서 고민이 많았던 공무원들은 PC를 잘 다루고 문서를 멋지게 편집하면 일 잘하는 것으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사실 아무리 글씨를 잘 써도 인쇄된 문서를 따라가지는 못합니다.

 

더구나 펜글씨는 1글자가 틀리면 1쪽을 다시 작성해야 하지만 워드프로세서는 저장기능을 활용하여 다시 불러들여 한 두자 수정하면 또 하나의 원본을 출력할 수 있습니다. 행정의 혁명 시대를 맞이한 것입니다.

 

하지만 잃은 것이 많습니다. 전화기 2대 놓고 순서를 기다려 전화를 걸고 걸려온 전화기를 선배와 계장님께 바꿔주던 시대의 낭만은 사라졌습니다.

 

워드프로세서가 아니라 펜으로 타자기로 열심히 기안하던 시대의 동료 간 소통, 차석의 권위, 계장님의 멋진 모습은 사라졌습니다. 각자가 칸막이 속에 숨어서 각자의 일에만 열중한 나머지 ‘칸막이 행정’이라는 지적을 받는 시대입니다.

 

이럴 즈음에 마이카(my car) 시대를 맞이하면서 공직사회를 또 한 번 바꿔놓았습니다. 이른바 ‘夕陽酒(석양주)’가 사라진 것입니다. 소주잔을 들고 두부찌게 짭조름하게 조려가며 선배의 힘들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후배에게 토로하며 이른바 현장교육을 하던 모습도 없어졌습니다.

 

회식은 업무의 연장이라면서, 술에 취해 동료의 신혼집에서 소주 한 잔 더하고 다시 술에 취한 선배를 모시고 집에 가서 “형수님! 형수님!”을 연호하며 소맥을 들이키던 그 시절의 낭만과 10년 나이 차이를 통합하던 友情(우정)은 사라졌습니다.

 

선배들은 후배와의 소통과 화합을 위해서 ‘관벗 10년이니, 계급장을 내리느니 하다가도 어느순간 돌변하는 큰 사건을 치르기도 하면서 후배를 가르치려 했습니다.

 

어느 후배가 아침에 깨어보니 보니 아이들이 검정 봉지에 들어있는 쌤뱅이 과자를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醉中(취중)의 비디오로 돌려보니 어젯밤 10시경에 과일가게에서 계장님이 과자를 사서 손에 들려주던 장면이 어렴풋이 떠올라 가슴 먹먹하던 그 추억을 더 이상 만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溫故而知新(온고이지신), 他山之石(타산지석). 지난날을 돌아보고 오늘을 새롭게 해야 하는 시대인가 생각합니다.

정보를 독점하여 경쟁력을 확보하는 시대가 아니라 자료를 공개하고 공유하면서 함께 발전을 도모하는 새 시대를 맞아야 할 것입니다. 1인1PC는 그냥 맞이한 文明(문명)이 아니었습니다.

 

요즘 젊은이의 조크를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태어나 보니 TV가 있었고 PC가 보였고 노트북을 펼쳤으며 스마트폰을 문지르며 돌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부럽습니다 여러분!!!

 

어느 사장님이 컴퓨터를 열심히 치다가 비서를 불렀습니다.

 

사장 : 김 비서!!! 지금부터 당신 알고 있는 새 이름을 말해 보아라.

 

비서 : 예 사장님, 비둘기, 까치, 참새가 있습니다.

 

사장 : 야 그것들 말고 흔하지 않은 새 이름을 더 좀 알아봐라.

 

비서 : 왜 그러십니까? 사장님.

 

사장 : 글쎄 내가 새로운 문서를 저장할 때마다 '새 이름'으로 저장하라고 하는데 내가 아는 새 이름은 다 쓰고 없다. 어찌하면 좋은가?

 

PC가 행정에 보급되고 밤새워 자료를 만들고 워딩해서 보고하던 시절에는 업무도 힘든 일이지만 워딩을 할 줄 아는 직원이 소중했습니다.

 

그래서 중간의 남성 7급 공무원은 흔하지 않은 자가용 차를 확보하고 작업을 마친 여성 공무원을 시골동네 집까지 퇴근시켜주었습니다.

 

그러니 밤 12시, 새벽 1시에 퇴근하고 다음 날 새벽에 출근해서 보고서를 들고 도지사, 시장님 공관으로 달려갔습니다.

 

당시 기관장님은 메모보고, 문자나 서면보고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기획계장, 행정계장이 직접 대면보고를 해야 행정이 완성되는 시대였지요.

 

열정적으로 道知事(도지사) 公館(공관)보고에 고생을 하신 선배들을 지방행정동우회 사무실에서 만납니다. 소파 중앙에 준비된 자리에서 바둑을 두십니다.

 

연세 70, 80줄에 드신 어르신을 만나게 되면 카톡 한방이면 해결될 일을 차를 타고 서울로 여주로 안성으로 보고서를 들고 달렸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저자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