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의인창고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집집 마다 2개 이상 있는

네모난 요술상자 냉장고는

의인의 창고다

 

 

 

 

 

 

 

 

 

 


모여있는 재료들이

모두 사람격으로 얼굴을 하고

하루하루를 기다린다

어떤 고기는 냉동된 채 해를 넘기고

어떤 채소는 파랗게 얼어버린 채

신록의 봄을 기다린다

안동에서 온 간고등어는

소금을 머금기 이전의

동해 바다를 생각하며 동면하고 있다

오징어도 작은 플라스틱 그릇에

다리를 구부린 채

주방장의 낙점받을 날을 기다린다

옆방에는 서리태가 온몸을 키워 아침을 맞는다

압력밥솥에 국물을 흘리고

이내 작은 밥공기 위를

건강하게 장식하는 단백질의 보고란다

가끔 보랏빛 팥이 보인다

해독하는 재료이니 자주 먹어야 하는데

냉장고는 얼마전부터 숙성의 방이다

음식은 숙성에서 그 가치가 높아지고

영양분이 고급화된다

된장, 고추장, 청국장, 총각김치, 나박김치

슬로푸드가 우리를 건강하게 한다

일층에서는 조기 12마리가 반냉동 상태로

각각의 기능에 맞는

요리로 탄생하기 위해 때를 기다린다

2층에는 고추장, 된장, 청국장, 과일들이

매일 아침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3층에는 요구르트, 깍두기

그리고 씨레기 방이다

장을 위한 칸이다

4층에는 야채실이다

겨울 야채는 더더욱 소중하다

비타민을 공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통문 안에는 음료수가 매일매일 수없이 드나든다

안쪽 맨 윗칸 4층에는 마른 김이 잠을 잔다

다음 3층에는 치즈와 요구르트가 숙성을 자랑한다

2층 베란다는 소스방이다

다양한 소스들이 기다린다

이 방에서는 생년월일이 중요하다

해가 바뀌면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냉장고는 삶의 축소판이다

살아있는 것으로 즐거워하면서도

언젠가는 선택되어 요리가 되고

넓고 예쁜 접시위에 올려지기를 기다린다

호빵은 따끈하게 익혀지기를 바란다

불고기는 신선할 때 요리고자 하고

언 고기는 좀 더 이곳에서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 냉장고 속의 모든 재료들은

주인님을 위한 것이다

주인과 아내와 아이들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매일매일을

즐겁게 기다린다

사실 이들이 이 냉장고까지 오는 데는

수없이 많은 과정을 거쳤다

채소는 뽑히고 차에 실려서

농산물도매시장에서 경매되고

며칠을 기다려

다시 중간상인에게 넘어가고

어느 날 주부님의 손에 이끌려 왔다

저 고기는 캐나다에서 태어난

암소로 살다가

어느 날 몸이 분리되어 배를 타고

부산항으로 왔다

그리고 냉동차에 실려서

수원까지 왔다

어느 날 백화점 주방직원에게 찜 되어

일주일 동안

매장 전시대에서 놀았다

여러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번쩍 몸이 들여지더니

카트에 실리고

이어서 계산대에서 바코드를 찍히고 나서

이곳 냉장고에서 일주일이 잠잤다

음료수도 그렇고 다른 재료 소스도 조미료도

모두가 아주 먼 곳에서 출발하여

이리저리 돌다가

이곳에 모여 새로운 친구

100여명과 살고 있다

사실 냉장고는 거대한 집단이다

인종도 다양하고 그 개체 수도 많다

우선 냉동 새우가 한 30마리 산다

소고기는 대충 3근 정도

콩 3000개, 팥 600개, 밤 900개 정도가 산다

안동 간고등어는 지금 15마리 정도이고

오징어가 3마리다

풀도 많다

시금치가 15뿌리, 무우 2개

실 고구마는 베란다에 사는데

모두 합치면 90개 정도다

이외에도 많은 가족이 사는 냉장고는

분점을 두고 있다.

1호 냉장고는 옛날 모델이어서

숙성된 간장, 된장, 간장의 집이다

2호 냉장고는 김치냉장고다

여기에는 김장김치와 마른오징어가 산다

3호 냉장고는 하루에 20번 정도 여닫는

가장 바쁜 방이다

여기에 매일매일

가족을 먹여 살리는 재료들이

드나들고 있다

냉장고는 비워야 한다고 배웠다

그래야 냉매가 잘 돌고 필요한 온도로

냉동 냉장이 잘 된다고 한다

냉장은 특히 중요하다

무조건 영하로 보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하 5도, 영도, 영상 5도 등 다양한 온도에서

그 식재료에 맞게 보관하고

적당한 기간 안에 소비해야 하는 것이다

정말로 소중한 냉장고를

우리는 늘 잘 관리하고

그 속의 재고를

머리속에 넣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과감히 버리는 것이

새로운 것을 얻는 일인지도 모른다

정말로 버리는 데서 좋은 글이 나오고

나를 버릴 때 이웃과 화합하고

사회에서 좋은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냉장고, 냉장고는 중요하다

하지만 냉장고를 과신하는 것도 안 된다

냉동은 오래가지만

냉장은 제한이 있다

하지만 냉장도 한계는 있단다

관리에 소홀하면

먹지 못한다

말라 버리는 것은 안될 일이다

제 시간, 품질 좋을 때 출고되어

각각의 기능을 다하게 해야 한다

우선 서리태가 그렇다

자그마한 검정콩은 물에 불려 져서

2배로 커진 후

비닐봉지에 담겨 냉동실로 들어온다

우선 반쯤 얼리면

약간의 성애가 콩 사이에 끼는데

손으로 꾹꾹 눌러주면 각각 흐트러지고

다시 봉지째 냉동에 넣으면

더는 결빙되지 않는다

끼니 마다 한 줌씩 압력밥솥에 넣는다

대파 플라스틱 통에 넣어서 보관하면

공간을 절감한다

미리 잘게 썱어서

비닐 봉지에 넣어 얼리는 것도

좋은 방법

필요할 때 한 줌씩 조리한다

찌게를 끓일 때 맨 나중에

파를 넣으면 됩니다

시금치나물을 무칠 때는

미리 파 한 줌을 꺼내어

10분정도 녹인 후 넣는다

두부는 쉽게 상할 수 있다

우선 냉장하다가 찌게에 넣어 먹는다

찌게가 다 끓은 후에 두부를 넣고

국물이 두부 표면에

살짝 올라갈 정도로 가열한다

2일쯤 냉장에서 시간을 보낸 두부는

8mm 두께로 썱어서 살짝 익힌다

식용유를 두룬 팬에서

초콜릿 전 색깔 정도로 익히면 좋다

시금치는 일단 저정성이 좋다

냉장으로 보관하다가 식재료로 사용하다가

4일 정도 지나면 일단 삶아서 냉장한다

다시 냉장에서 2일 정도 지난 삶은 시금치는

나물보다는 찌개 재료나 시금치 국으로

조리하는 것이 좋다

양파는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다

건냉한 곳에 보관하면서

통째로 반으로 잘라서

찌게에 넣거나 날로 먹어도 좋다

양파 2개를 썰어서 살짝 볶은 후

접시에 담아 식탁에 올린다

소금간과 조미료 약간이 필요하다

실파를 함께하는 것도 쎈스지만

담백하게 올리는 것도 좋다

마늘은 보약이라고 하지만

아이들은 싫어한다

하지만 모든 요리에 마늘이 들어가는 줄

아이들은 모른다

아마도 밥을 빼고는 모두에 가능하다

이제는 마늘 밥도 생각해 보자

마늘 빵은 이미 나왔다

생마늘보다 살짝 구워서 올리자

생마늘을 다지거나 믹서에 갈아서 저장한다

양이 많으면 일부는 냉동에 넣고

반은 냉장에 두고 수시로

음식 사이사이에 넣어서

아이들이 먹는 줄 모르게

먹이도록 하자

생강도 참 좋은 식재료

다듬기가 어렵다

물에 불린 후 복잡한 모양을 인정하면서

적절히 잘라서 다듬으면 의외로 쉽다

채로 썱어서 먹기도 하고 다져서 쓴다

장어를 먹을 때 함께 나오고

물김치 붉은 김치에 아낌없이 사용하자

오래전부터 생강은 보약이다

사실 참깨는 반쯤 다져야 합니다

통깨는 영양소 흡수가 쉽지 않다

고소한 맛도 덜하니

절구에 넣어 반파 수준으로

갈아서 양념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통깨는 계란 후라이에 얹거나

시금치나물 위에 올리기도 한다

잠깐 신혼부부의 살림살이를 보면서

또는 신혼부부에게 개가 쏟아진다

농부가 깨 농사를 지어서 수확하는 모습이

그리도 재미있단다

베어 말린 참깨단을 검정천 위에 거꾸로 하고

부지깽이로 톡톡톡 두드리면

흰 참깨가 쏟아진다

그 모습이 참으로 행복하다

농부에게 있어서 수확의 기쁨은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다

그래서 흰 깨가 솔솔솔 쏟아지는 것

그 맛이라며

신혼 재미를 '깨가 쏟아진다'고 말한다

알타리 무를 다듬는 일이 힘드시다구요

몸통과 잎새 사이를 깎아내는

수고를 하실 필요가 없다

잎새를 잘라내고 머리 부분을

동그랗게 잘라내자

일단 통으로 소금에 저린 다음 씻어내고

양념 버무리기 직전에

통무를 반으로 자르고

굵은 것은 4등분하자

맨 나중에 먹을 생각으로

10개 정도는 통으로 넣어 숙성에 들어가자

무우를 소금으로 저리는 이유는

일단 무속의 물기를 빼낸 후

양념으로 버무려서

그 맛이 속으로 배도록 하기 위한 것

저리는 이유는 배추김치도 마찬가지

배추는 소금기에 팍 사그러들지만

무우는 그대로다

하지만 무속의 수분이 일부는 빠져나왔으므로

버무려 넣으면 양념과 소금기가

무속으로 들어가 숙성된단다

오늘 저녁 메뉴는 청국장

야채 재료를 넣어서 끓인 후

청국장은 먹기 바로 전에 넣은 후

한번 바그르 긇여서 식탁으로 간다

청국장을 길게 끓이면 맛도 덜하고

좋은 성분이 없어진단다

퇴직하여 산기슭에

혼자 사시는 어르신 중에는

청국장을 날로 먹는 분이 많다

가끔 TV에 나오는 귀향 어르신들의 모습

청국장은 냉장으로 보관

제품으로 포장된 것은 특히 냉장이 필요하다

하지만 집에서 청국장을 띄우는 경우에는

꼭 냉장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냉장고 속 식재료와 조리과정을 이야기하다 보니

정확한 표현에 자신감을 잃은 것 같다

어려운 용어는 아닌데

철자법이 맞는지 자신이 없다

많이 송구하다

냉장고에 몇 달째 잠들어 겨울잠 자는

울릉도 명물 호박엿이 있다

본시 엿이라는 것은

녹말을 당분으로 만들어 먹는 음식이니

오래전 조상부터 시작되었을 것

흔히 엿 먹어라 하지만

이는 역설법으로서

좋은 일을 하면서도 이를 감추기 위한

전략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엿 먹인다는 말은 저속해 보이지만

꿀 먹은 벙어리라는 말처럼

좋은 것을 먹음으로써 할 말을 잃었다가 아닐까

아니면 뇌물을 먹었기에

할 말이 없기도 하겠지

그런데 엿은 녹말 성분이 들어있는

쌀, 고구마, 수수 등으로 만든다

우선 이들 재료를 푹 삶고 쪄서 익힌 후

여기에 엿기름을 넣는다

엿기름이라는 것이 보리싹을 틔어서

그 노랑색 싹이 5mm에서 9mm정도

자랐을 때 이를 볕에 말린 후 손으로 비벼서

싹은 버리고 남은 보리알을

맷돌에 갈아서 가루를 낸 다음

체로 쳐서 가루를 얻는다

이것이 녹말 성분을 당분으로 바꾸는 효소가 된다

술을 담그는데 누룩이 들어가는데

누룩은 밀로 만든다

통밀을 대충 갈아 메주처럼 만들어

쑥대와 함께 묶어 서늘한 곳에 매달면

여기에 누룩곰팡이가 생겨나고

이후 이를 말려 가루를 내서

아까 엿기름 넣듯이 재료와 혼합하면

술이 발효되는 것

여하튼 쌀밥에 엿기름을 넣으면 감주가 되고

그 국물을 불로 조리면

조청이 되고 나중에는 엿이 된다

엿을 퍼내고 나서 약간 남은 엿 성분에

물을 부어 불을 땐 후

볶은 콩을 넣으면 콩엿

깨를 넣고 비비면 깨강정 되고

쌀 튀기를 넣으면 쌀강정 된다

엿을 퍼내기 전에 땅콩을 넣으면

엿판속에 송송히 박힌

땅콩의 맛을 동시에 본다

순서가 뒤바뀌기는 했지만

아까 감주가 되는 과정을 지나

엿이 된다 했는데요

감주과정에서 마무리가 중요하다

감주 국물을 한번 끓여서

더 이상의 숙성을 중단시켜야 한다

그냥 두면 발효가 더 진행되면서

맛이 변한다

그전 감주 발효 온도는

어쩌면 그렇게도

보온밥통의 그 온도이라네요

본시 엿은 고동색인데 흰색으로 변한 것은

무수히 반복되는 엿 늘림 작업으로

공기가 끼어 들어간 결과라지

공기구멍이 점점 더 커지기에

사람들은 엿치기를 하지요

서세원 유명프로그램에 출연한

어떤 할머니의

반복되는 게그

엿치기의 생명은 구녕!!!

우리의 냉장고 안에는 인생이 들어있고

삶의 지혜가 살아있다

작은 공간안에서

수많은 生老病死(생노병사)가

진행되고 있다

냉장고를 의인화하면

비어있는 냉장고는 지식이 없고

가득 찬 냉장고는

지혜의 과잉이라 할 것

비어도 안 되고 들어차도

힘이 든 냉장고

의인 창고 냉장고 이야기였습니다.

 

 

[저자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