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태행산 치바위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태어난 고향 동네는 큰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뒷산은 태행산이라고 하는데 청요리 쪽에서는 태항산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저의 첫 번째 책 ‘공무원의 길 차마고도’를 발간해준 청요리가 고향인 한누리미디어 김재엽 사장이 태행산이라 쓴 원고를 ‘태항산’이라 교정했습니다.

 

검색해보니 294.8m 높이의 ‘태행산’이 맞습니다. 청요리에서는 ‘태항산’으로 부르고 자안리에서는 태행산으로 칭하겠습니다. 이 산속에는 아버지의 추억이 있습니다.

 

태행산에 토막집이 있었고 6살 전후에 쌀이나 부식을 들고 심부름 다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 산 태행산에서 장작불에 밥을 하였고 나무 주걱으로 퍼준 밥에서 느끼는 보리밥 냄새가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쌀이 귀했던 1963년경으로 생각합니다. 5살이면 냄새는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그 산속은 10대에도 여러 번 갔던 곳입니다만 어느 날 나무가 빼곡히 자라나서 그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이후에 태행산 치바위에 인삼을 캐겠다고 가보았지만 발견한 것은 자갈과 잡풀, 떨기나무의 허리 굽은 뿌리였습니다.

 

어려서 先親(선친)께서 인삼씨를 3되 정도 치바위 인근에 뿌렸다는 말씀을 보물섬 지도처럼 머리속에 간직하였던 터이고 10년이 지난 어느 날에 기억을 살렸던 것인데 실패로 마감되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들어가던 1965년에 아버지께서 어쩌면 마지막으로 입학식에 오신 모습이 기억납니다. 지꾸 머리 빗어넘기고 폭 좁은 넥타이를 맨 학부모 몇 명이 앞줄에 앉았습니다.

 

이분들로 말씀드리면 학교측에서도 약간은 모셔야 하는 유지급이거나, 발전기금 30원정 도를 내신 분들인 듯 기억합니다.

 

이후 초등학교 국민학교 2학년 3학년 때 운동회날이면 소사 아저씨는 필요치 않은 곳에 빨랫줄을 매두었고 오전 10시부터 동네 유지, 학부모들이 모이시면 한분 두분 기금을 내시고 그 금액과 내신 분 존함을 먹물로 크게 써서 공고하였습니다.

 

 

자안리 이길동 선생 20원. 貳拾(이십)원이라 적으시니 한자가 참 어려운데 이제는 알 수 있는 20원이었던 것입니다. 초등학교 기성회비 50원, 연구회비 20원을 선생님 선창에 따라 복창한 기억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해인 1964년 가을에 집 앞 논에 쌓아둔 한해 농사 볏집 근처에서 불장난하다가 바싹 마른 봄날에 불이 번져서 모두 태워 먹은 기억도 생생한지라 여기 기록하고자 합니다.

 

불을 끄지 못하고 무서워서 뒷산으로 도망갔고 점심도 굶은 채 저녁까지 기다려 어둠을 틈타 집으로 돌아오니 누구도 야단치지 않았습니다.

 

앞 논은 그냥 검은 바다가 되었고 그나마 동네 청년들이 건져낸 20개 정도의 타다 남은 짚단이 덩그라니 누워있었습니다.

 

나중에 안일인데 그해 우리 집 지붕을 수리하지 못하였고 봄내 여름 동안의 각종 농사일에 필요한 집단을 얻어 쓰는 불편과 아픔이 있었다고 합니다.

 

모든 사물이 순환을 하는데 짚이라는 중요한 소품을 몽땅 태워 먹은 터라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고모님, 머슴 아저씨의 불편이 많았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스라한 기억은 이른바 '경기'라는 것입니다. 갑자기 눈을 감고 숨을 쉬지 못하는 증상을 경기, 경끼라 합니다.

 

딱 한번 경기라는 것을 만난 것 같은데 기억은 나리마리 하는데 그 당시 함께 사셨던 고모님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 경기라는 것을 하였고 코를 비틀고 찬물로 진정을 시켜서 잘 넘어갔다고 전하는 바입니다.

 

한 사람의 기억의 양은 참으로 많을 것이지만 그냥 현재의 이야기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생각 이전의 기억들, 기억 이전의 생각들이 많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늘 고민하고 번뇌하고 상상하고 추억 할 것이라 생각하는 바입니다.

 

다른 추억이나 기억이 날 때마다 적어두고 정리하는 것은 새 삶을 창조하는 것이라 자부하면서 항상 생각하곤 합니다.

 

그리고 顯著(현저)하게 떠오르는 생각의 片鱗(편린)들을 모으고 수집해서 한편의 글로 올리고 관리하고 끊임없이 보강하는 개미와 같은 熱情(열정)을 닮아가고자 합니다.

 

 

[저자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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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