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물꼬순경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일제 강점기부터 경찰 제일주의가 있었나 봅니다. 주재소 순경이 모든 민사, 형사사건을 처리하였답니다. 그러니 평소에 주재소 주임과 친밀한 인사는 주변의 사건사고 발생시에 유리한 입장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모든 일에 연결되면서 ‘물고 순경이냐?’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물고란 논에 물을 대는 수로의 문을 말하는데 물이 부족하면 닫고 물이 넘치면 열어서 물을 아래로 흘려보내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가뭄이 심해지자 서로 문을 잠그게 되었고 다른 이의 논을 통해 물을 공급하는 입장에서 남의 집 논 물고를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른바 ‘물고싸움’이 생겨나게 됩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물고관리를 하려하기 때문입니다.

 

我田引水(아전인수)라는 말과도 통할 것입니다. 내 밭에 물을 대고자 하는 것이지요. 물고 역시 자신의 논과 밭에 유리하게 운영하다 보니 다툼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싸움에서 불리해진 어르신이 평소 알고 지내는 순경에게 이 싸움을 중재해달라 부탁을 하였습니다. 순경이 오면 상황이 유리해 질 것이라 생각한 것이기도 합니다.

 

순경이 와서 물고 관리에 대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상대편 어르신은 다짜고짜 물었습니다.

 

“당신이 ‘물고’ 순경이요?”

 

오래전부터 전통방식과 관습법에 따라서 운영되는 농사의 중요 절차인 물고 관리 마저 순경의 도움을 받으려 했지만 간명하게 ‘물고 순경’이냐라는 한마디에 어르신도 순경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고 합니다.

 

농사짓기를 평생의 업으로 삼고 살았던 당대의 어르신들은 음력으로 이어지는 절기에 맞춰서 순서를 지켜 영농을 진행하였습니다. 浸種(침종)하고 播種(파종)하고 이식하는 과정은 음력의 절기에 따랐습니다.

 

망종 전에는 씨앗을 심어야 하고 씨앗의 3배 이내 깊이로 파종을 조절하였습니다. 할머니들은 입춘이 오면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고 ‘맞이’를 들이러 갔습니다. 그해의 운수와 조심할 바에 대해 점술가의 말을 듣고 그 처방에 따랐습니다.

 

 

물을 조심하라, 불을 조심하라는 등 대부분 추상적인 주문이지만 가족 모두에게 하나하나 지켜야 할 올해의 삶의 방향을 알려주었습니다.

 

문맹의 할머니들은 이 모든 이야기를 기억으로 전했습니다. 메모를 할 수 없으니 다 머릿속에 입력했습니다.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스토리텔링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할머니들의 기억력은 박물장수의 외상장부와도 같습니다. 박물장수는 집집마다 문설주에 외상장부 상형문자를 적어둡니다. 쌀 한 말, 보리 닷되를 나름의 방식으로 표기해 둡니다.

 

3개월에 한번 순회하는 날 집집마다 자신만의 표시를 확인하고 들어가서 지난번에 며느리가 주문한 동동구르무, 할머니가 가져오라는 참빗을 내놓습니다. 그리고 다른 新商品(신상품)도 소개합니다.

 

가족들이 달려들어서 여러 가지 물건을 고르고 최종 가격을 확정합니다. 이때 박물장수는 지난번 외상값으로 떨어진 쌀 한 말을 이야기 합니다. 오늘 고른 쌀 한 말어치를 합해서 두말을 받아갑니다. 그리고 추가주문 내역을 문설주에 표기해 두는 방식으로 이어왔습니다.

 

경기도새마을운동 50년사 제작에 참여한 바 있습니다. 그 자료 부록 643쪽에 새마을운동 기획 초고 사진이 있습니다. 1972년4월26일 광주에서 열린 ‘새마을 운동’이라는 제목의 메모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지금 전국 방방곡곡에서 새마을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나도 그동안 여러 부락을 찾아가 보고 보고를 통하여 듣고, 우리 농민들이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겠다고 몸부림 치는 그 모습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훈시가 이어집니다.

 

도지사 이하 시장 군수 기타 모든 일선 공무원들이 토요일도 일요일도 없이 잠바 바람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어다니면서 이들을 지도하고 격려하면서도 지칠 줄 모르고 보람을 느끼는 것도 우리 농민들의 그 부지런한 모습에 감동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확실히 이 운동은 우리 농촌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바람이요 희망이라고 본다. 우리 역사상 과거에도 이런 일은 찾아 볼 수 없던 일이다. <이하 생략>

 

새마을운동을 제창하신 박정희 대통령의 메모 내용은 대한민국 새마을운동에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부녀회를 활성화하였고 공무원들이 밤낮없이 현장을 뛰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새마을 쥐잡기라는 사업명으로 이를 내무부가 주관하였습니다. 쥐는 위생문제, 식량문제 등이 주관일 것인데 이를 통합하여 ‘새마을 쥐잡기’라 정하고 그 업무를 내무부가 추진하도록 한 것입니다.

 

아마도 국민들을 단합된 한자리로 끌어내는 데는 새마을운동 만한 행정시책이 없었던 것입니다. 모든 것을 새마을로 통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경기도청 새마을지도과장의 위상도 높았습니다. 새마을계에서 2년간 근무하고 세정과로 자체승진하였습니다. 자체승진이란 외청이나 사업소 등 밖으로 나가지 않고 도본청 안에서 승진한 것으로 세정과에 전무후무한 기록이 되었드랍니다.

 

지금도 전설이 된 물고순경 이야기는 그만큼 공직, 경찰, 사법부의 권력이 막강했음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다만 권력은 그 칼날의 예리함과 칼의 크게에 맞게 잘 써야하며, 가급적이면 칼집에서 칼을 꺼내지 말아야 합니다.

 

권위는 칼 속에서 멋진 것이고 칼을 뽑으면 무라도 잘라야 하니까요. 더구나 칼집에서 뽑힌 권위는 더 이상 권위로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권한을 숨겨야 權威(권위)가 보이게 됩니다.

 

 

[저자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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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