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구멍가게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작은 상점을 구멍가게라 하고 조금 넓어진 현대식 건물에 가게를 차리고는 ‘슈퍼마켓’이라 합니다. 한때는 공무원중 동사무소, 면사무소 직원을 일러 ‘슈퍼맨’이라 했습니다.

 

일선 공무원들이 중앙, 도, 시청, 군청에서 매일 쏫아지는 공문을 다 처리하고 지역의 주민이 요구하는 복지, 수도, 위생 등 수많은 업무를 잘 처리하기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동네가게 슈퍼마켓의 슈퍼라는 의미는 ‘박물장수’에서 연유된 것 같습니다. 박물이란 博物館(박물관)과 한자를 같이 씁니다. 그래서 博物(박물)이란 많은 것을 안다는 의미이고 博士(박사)란 깊이있는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博學多識(박학다식)이란 넓게 배우고 많이 안다는 의미입니다. 박학다식하고 인품에 깊이가 있으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君子不器(군자불기)를 실천하는 분이라면 더더욱 존경받을 것입니다.

 

1960년대 구멍가게를 열기 위해서는 박학다식까지는 아니어도 숫자와 문자를 알아야 했습니다. 숫자는 문자속에 포함될 것 입이다만 숫자속에 문자가 들어간다고 보기는 어렵겠습니다.

 

문맹은 벗어나야 구멍가게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부좀 한 초졸의 며느리들이 구멍가게를 열었습니다.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적어준 대로 우마차를 끌고 읍내에 나가서 건을 실어왔습니다.

 

당시 주요물품은 국수, 라면, 밀가루, 식용유, 조미료, 세제, 소주, 알사탕 등이었습니다. 필수적인 식재료와 세탁용품, 그리고 약간은 사치스러운 과자와 사탕, 소주 등이었습니다. 더러는 소형 약국이 운영되기도 했습니다. 소화제, 설사를 멈추는 약, 두통약 등입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두통약으로 ‘명랑’이라는 제품이 있습니다. 이 약을 먹으면 심신이 명랑해진다는 의미로 생각했습니다. 활명수, 까스명수, 신신파스 등 고유명사가 된 공산품을 떼어다가 팔았습니다.

 

간판도 없는 구멍가게에 가면 라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당시에 라면 한 개를 통으로 끓여 먹는 이는 없었습니다. 어느 집이나 국수를 삶아 먹을 때 라면을 한봉지 넣었습니다. 4인 1면. 4명당 1개의 라면이 들어갔습니다.

 

독일 국민들은 7명이 모여야 성냥개피 하나를 켜서 담배를 피웠다는 농담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성냥을 아끼는 절약정신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라면이 아니라 국수를 끓이는데 라면이 들어간 것이고 큰 그릇에 국물 가득 국수를 퍼 주면서 라면 가닥 서너개를 올려주는 것입니다. 국수를 퍼담은 후 집게로 잡아서 국수위에 올려주었습니다.

 

그 라면발을 아껴서 먹었습니다. 꼬불한 식감을 입술로 혀로 느끼면서 먹었습니다. 전에 먹던 텁텁한 국수국물에 신기한 마술을 부리는 라면스프의 국물맛에 반했습니다. 가히 마약 수준의 조미료입니다.

 

이후 50년 넘게 우리의 입맛을 잡고 다니는 라면은 그 종류가 100개가 넘겠습니다. 요즘의 대형마트에 가면 라면 山(산)을 만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 다른 종류의 디자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신기한 것은 고무장갑입니다. 모든 가정의 필수품이 되었습니다만 사람 손 모양의 고무장갑은 신기했습니다. 부드러워서 장갑인데 물이 스미지 않는 장갑입니다. 손가락 부분에 지문처럼 돌기가 있으니 비눗물이 묻은 그릇도 미끌어지지 않습니다.

 

고무나무에서 채취한 재질로 만들었다고 하니 세상에 고무가 나오는 나무가 있답니다. 서울에 태어난 또래의 아이들이 ‘시골에 가면 쌀나무를 보고 싶다’했다는 말에 황당했던 기억이 납니다. 벼를 심고 수확해서 방아를 찧어야 쌀이 나오는데 처음부터 쌀 나무라니. 더구나 벼는 풀 종류인데 쌀 나무라니요.

 

최근 오산시에서 이팝나무를 가로수로 많이 심어서 봄날에 풍성한 꽃을 자랑합니다. 그 꽃의 흔들림을 보면 풍성한 쌀알이 매달린 것 같으니, 과거 쌀나무를 이야기한 이들에게 이팝나무를 보여주고 싶어집니다.

 

 

[저자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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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