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태극기 다는 날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어느 해부터 국기법이 개정되어서 비가와도 눈이 내려도 太極旗(태극기)와 기관의 기를 게양합니다. 이전에는 태극기를 비 맞출 수 없다며 비 내리는 즉시 기를 내려서 실내에 보관했습니다. 다시 비가 그치면 태극기를 달았는데 이번에는 미숙한 학생이 거꾸로 달아서 교장 선생님의 지적을 받은 기억도 있습니다.

 

변방의 기관에서 숙직을 하면 새벽에 일어나 太極旗(태극기) 다는 임무가 큰 일이고 특히 소한, 대한 추위 속에서는 손등이 오돌거릴 정도로 태극기 게양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국기줄에 열쇠고리를 잡아매고 태극기에는 물음표 갈구리를 매달았습니다.

 

아침에 게양대에 가서 척척척 3번 걸면 끝이고 저녁 국가 降下(강하)시에도 물음표 세 번 누르면 끝이니 선배들이 편안하여 고맙다 했습니다. 1982년경의 일이니 이때부터 저에게는 혁신의 정신이 조금 있었나 봅니다.

 

이후에는 기관이 커졌으므로 국기를 달고 내리는 어려운 일을 감당하지는 않았지만 바람이 불지 않으면 깃봉에 늘어져 있는 태극기는 물론 기관 旗(기), 새마을기도 보이지 않으므로 미국식으로 태극기 윗부분에 봉을 끼워서 팽팽하게 매달자는 의견을 내게 되었습니다.

 

사실 태극기를 매일 볼 수 있으니 태극기의 소중함을 깊이있게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데 가끔 해외여행을 갔을 때 공관이나 호텔에 게양된 우리의 태극기를 보면 가슴이 뭉쿨 합니다.

 

저 깃발이 나를 지켜줄 것이고 만약의 사태가 발생하면 저 깃발 아래로 깃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해외에서 보는 삼성, 현대, 대우, LG 등 우리나라 대기업의 로고는 태극기 만큼의 감흥을 줍니다.

 

흔히 평소 연습에서의 땀 한 방울이 실전에서의 피 한방울이라고 말합니다. 훈련을 열심히 하면 결전에서 이긴다는 말입니다. 평소에 쉽게 보던 태극기를 외국에서 만나면 반가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이라는 깃발 아래 가족이 모여 삽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 위치를 지키고 아들딸이 살면서 결혼하여 며느리와 사위가 포진합니다. 그리고 손자·손녀가 태어나지요.

 

 

가정·가족이라는 깃발이 크게 펄럭이면 아이들은 힘을 얻습니다. 여러 개의 깃봉과 깃대가 한곳에 모이면 시너지효과가 나옵니다. 외로운 깃대는 게양된 깃발의 천의 올이 풀어지고 찢겨나가도 살피거나 바꾸지 못합니다.

 

본인 의사나 잘하고 잘못함에 무관하게 외로운 깃대가 있고 풍성한 깃발 마을이 있습니다. 생노병사의 과정에서 깃발의 숫자는 변합니다.

 

잔다르크(Jeanne d'Arc)의 깃발은 아름답습니다. 이순신(李舜臣,1545~1598) 장군의 깃발은 숭고했습니다. 계백장군의 깃발은 강인했지만 크게 펄럭인 후 사라졌습니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는 물론 아군에게도 알리지 말라는 이순신 장군의 깃발은 지금도 우리의 가슴속에서 펄럭입니다. 고등학교 교련시간에 의무적으로 들고 다녔던 깃발에 이런 큰 의미가 있음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등산 단체의 표식도 깃발입니다. 그 깃발을 따라가면 안전한 길로 목표지점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등산회장과 총무를 신뢰하기에 무거운 배낭을 지고도 그 깃발을 따라서 열심히 힘내어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가족이라는 깃발을 펄럭여야 합니다. 나에게는 부모가 있고 자녀가 있고 주변에 지인들의 우리 가족 잘되기를 바라는 응원이 있음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그 응원의 깃발을 늘 가슴속에 펄럭이게 해야 합니다.

 

 

[저자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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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