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電氣(전기)와의 만남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1968년 초등학교 3학년 때입니다. 시골에서 면사무소 소재지까지 5km를 걸어 나와서 중형 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안 전기불이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버스가 달리는 것 같은데 길가의 가로수가 뒤로 밀려가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차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병풍처럼 양쪽에 설치된 가로수 그림이 뒤편으로 밀려가는 느낌을 받은 것입니다.

 

이 같은 느낌은 3번 정도 버스를 탈 때 반복되더니 어느덧 버스의 움직임이 몸에 배고 시선에 잡힐 즈음에 가로수는 서 있고 버스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가끔 버스터미널에서 옆 차가 움직이는데 우리버스가 이동하는 착시현상을 느끼는 경우는 최근에도 여러 번 느낀 바가 있습니다.

 

초보운전 승용차 안에서도 옆 차가 움직이는데 내 차가 움직이는 것으로 느끼고 브레이크 발에 힘을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의 감각은 사실대로 느끼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더러는 주변의 환경에 따라서 뜨겁게, 차갑게, 더러는 미지근하게 느끼는 것입니다.

 

찬물에서 나와 미지근한 물에 들어가면 뜨겁게 느껴지고 뜨거운 물에서 나와 찬물에 들어가면 더 차가운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2021년 오늘 우리는 이른바 사우나탕이나 목욕탕에 가지 못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서 2020년 대중탕이 문을 닫았습니다. 그 틈새에서 목욕통 사업이 번창합니다. 10만원대의 이동식 목욕통에 물을 받아서 ‘청산리~ 벽계수야~’ 하면서 찜질을 합니다.

 

집 목욕통은 지난번 리모델링에서 철거하여 넓은 공간에서 편안하게 시원하게 샤워를 합니다만 뜨거운 물에 온몸을 담그는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목욕통을 구매했습니다.

 

처음에는 책상다리로 앉아서 뜨거운 맛을 보는 간이용 천으로 만든 통을 검토하다가 물 많이 받은 후 발 펴고 싸우나를 즐기는 목욕통으로 바꿔서 조금 더 투자를 했습니다.

 

47,000원짜리로 시작했는데 95,000원으로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통이 크니 들어 앉아서 쉬기에 편안하고, 그래서 두 번이나 깜빡 졸면서 피로를 푸는 기회를 얻기도 했습니다.

 

이 버스를 타고 비포장을 달리고 달렸습니다. 대략 고향마을에서 15km는 비포장이고 시내로 들어가면 포장도로를 만났습니다. 경부선철도 수원역 부근에서 여러 번 꿀렁거리며 철길을 지나서 시내로 들어갔습니다.

 

상가와 건물의 돌출간판이 벌통 속의 무늬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간판 아래 상가의 불빛은 전에 본 삼광영화사의 전기불과는 비교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빛이었습니다. 그 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자본주의 물건들은 더더욱 시골 아이를 놀라게 했습니다.

 

저리도 많은 물건을 살 사람이 저만큼 있다는 말인가. 버스에서 내려 시내를 지나가면서 이처럼 많은 인파를 본 일이 없으니 입을 다물지 못하고 아~하고 벌려집니다.

 

태어나서 10살 되도록 이처럼 많은 인파는 초등학교 운동회나 봄 소풍, 가을 遠足(원족)에서 만날 일입니다. 그런데 구름같은 인파가 수 시간을 유지하면서 드넓은 동해안의 파도처럼 몰려듭니다. 가고 오는 인파속에서 이 많은 사람들이 저녁에 어디가서 자고 무슨 일을 할까 걱정을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집 밖으로 나와보니 온통 집만 보입니다. 지금 수원의 영화동 어느 곳인데 무너진 장안문 터 앞뒤로 수많은 주택이 보입니다. 영화동 동사무소 인근에는 무와 배추밭이 많았습니다.

 

시골에서 살았던 추억대로 고무 신발로 벌을 잡았습니다. 파꽃 위에서 꿀을 따는 벌을 고무신으로 낚아챈 후에 뱅뱅 돌려서 어지럽게 한 후에 바닥에 팽개치는 것입니다.

 

수원시에 이처럼 집이 많고 차량도 흔하다는 것을 알았고, 특히 전기라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스위치를 켜면 불이 들어와 환하고 끄면 어둠입니다. 이 불빛이 저 가느다란 전선을 타고 온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시내에 나가서 가로등이 켜지는 것을 보겠다고 1시간 이상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렸습니다. 가로등 형광불이 하나 둘 순서대로 켜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길가에 서서 무한정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바퀴가 40개는 달렸을 것 같은 큰 트럭이 지나갑니다. 지금 설명하면 컨테이너를 싣고가는 굴절되는 트럭입니다. 앞부분 기관차 같은 부분에 바퀴가 양쪽을 합해서 10개이고 뒷부분 짐을 싣는 부분에도 8개에 양쪽이면 16개이니 총 26개의 바퀴가 달린 트럭에 넋이 빠진 사이에 가로등은 모조리 켜지고 말았습니다.

 

전기라는 물질이 이처럼 빠른 줄 몰랐기에 하나 둘 셋 켜지는 것을 보겠다고 기다린 것인데 일순간에 땅거미는 사라지고 휘황찬란한 도심의 초저녁 거리에 시골 소년이 외롭게 서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전기가 우리의 삶에 이처럼 밀접한 것인 줄 알지 못했습니다. 반도체를 통해서 컴퓨터를 연결하고 스마트폰을 충전하여 정보를 검색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그냥 전기는 불을 켜는 정도로만 알았던 것입니다.

 

어느 날 수원 화성의 구시가지에서 정전이 발생하였습니다. 인근의 모든 주택의 전기가 끊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도로 위를 달리는 버스와 택시는 정전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더 밝은 불을 켜고 시내를 달리고 있는 차량을 보면서 저쪽은 停電(정전)이 안되고 주택가에만 정전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기가 차별을 하는가도 생각했습니다.

 

해서 당시의 만화만평에 보면 斷電(단전)되어서 注射(주사)를 제대로 맞지 못하고 돌아가시는 할아버지에게 마지막 한 말씀 하시라고 유언을 청하자 “특선을 끌어다오~!”하면서 운명하셨다는 글이 있었습니다.

 

특선이란 전기를 공급하는 전선 중 일반선과 구분되는 것인데 잦은 정전이 오는 일반선에 비해 특선은 가급적 전기를 공급받는 혜택을 누렸다고 합니다. 그러니 특선전기는 일반전선보다 요금이 비싼 것은 당연한 일어었답니다.

 

특선, 일반선 전기는 모르겠고 시골 동네 아랫마을의 방앗간 동력선에서 따온 전기로 불을 켜고 영사기를 돌리던 삼광영화사의 영화를 보는 날에만 휘황찬란한 전깃불을 보았던 세대로서는 오늘날 전기로 시작되는 문명의 혜택이 마냥 신기할 뿐입니다.

 

태어나 보니 병원 수술실이고 집으로 돌아오니 각종 전기관련 장비와 살림이 가득한 곳에서 자란 젊은이들이 전기 없던 시절에 태어나 10살을 전후해 처음 전기불 만난 이야기에 관심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혹시 불랙아웃이 되어서 전기가 끊기면 집안의 모든 제품이 그냥 서 있는 가구이고 TV가 안나오고 인터넷이 끊기고 핸드폰도 무용지물이 된다는 가정을 가지고 현실을 파악해 보라는 권고는 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휴대전화 수리를 위해 한나절 임시폰을 받아야 하는 젊은이들로서는 블랙아웃이라는 사건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머릿속이 그냥 텅 비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저자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