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봉산#석굴암#번뇌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백팔배를 두번 올리고 보이차를 여러 잔 받아 마신 다음날 새벽 2시반에 기상하였습니다.

이 시각은 숙면에 들어야 한다는데 잠에서 나왔지만 몸이 개운한 것으로 보아 어제의 산행이나 만남이 마음에 족하였다는 판단을 해 봅니다.

 

 

몸이 무겁다는 것은 일상의 리듬이 맞아 떨어지지 못함을 알려주는 시그널인데 이 새벽에도 몸이 가볍고 글을 쓰자는 생각이 드는 것으로 보아 쾌적한 조건에 있음을 알겠습니다.

삶은 운명이고 운명적 만남이며 그 운명속에서의 교류를 이어가는 아름다운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함께 하는 가족이 있고 가끔 만나는 지인이 있으며 평생에 한 번이나 두 번 만나는 안타까운 인연도 있습니다.

물론 세상에 왔다가 이름없이 사라지는 생명이 많을 것을 생각해 보면 이처럼 산사에서 한번, 길가에서 두번 만나는 인연도 보통은 넘는 질긴 연이라는 판단도 붙여봅니다.

그런 마음으로 이 새벽을 빌려서 그간의 마음속 이야기를 적어두고 한두달 안에 그 다음번 책을 내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도 행복이구나 생각합니다.

 

아마도 인간에게는 무한의 도전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라 봅니다. 무턱대고 들이대는 도전도 있고 어느정도 각을 맞춰가면서 격을 높이는 노력도 포함된다고 봅니다.

더러 가끔, 글을 쓰면서 조금 더 다듬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영 못된 마음이 들면 원고량만 채워서 270쪽 정도이면 책의 형태는 갖추는 것이니 그냥 진행하자 합니다.

누구도 읽어줄 사람이 없는 책인데 고민할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 판단해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두번째 책에서 일천이라는 말을 틀리게 적은 것을 이제야 발견했습니다.

요즘에 수년전 출간한 책의 파일을 한두 페이지씩 페이스북에 올리는 일을 재미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오타를 발견한 것입니다. 본래에는 일천(一喘)하다는 표현을 하고자 했습니다. 한 번 숨을 쉰다는 뜻으로, 매우 짧은 시간을 이르는 말을 말하고자 한 것인데 두 번째 책에서 一天(일천)이라 적었습니다.

 

네이버, 다음의 어학사전을 빌려온 것입니다만 실수로 ‘과거나 백일장 따위에서 또는 여럿이 모여 한시 따위를 지을 때 첫 번째로 글을 지어서 바치던 일이나 글’이라는 의미의 일천(一天)으로 표기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같은 誤打(오타), 誤記(오기)를 발견했을 몇 분 안 되는, 없을 수도 있는 제가 쓴 책의 독자님께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다음은 깊은 인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느날에 부부가 집을 나서서 오봉산 석굴암을 향해 가는데 고속도로가 아닌 서울 한복판으로 안내를 하는 네비양을 따라 서울구경을 공짜로 하면서 달렸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달리다가 아내와 피타고라스정리를 이야기하다가 네비게이션을 잠시 스톱하는 순간에 의정부 IC로 갈 길을 지나치는 바람에 의정부시청 인근까지 다녀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의정부시를 돌아다닌 끝에 오봉산 석굴암에 도착하여 초를 사려하는데 기도스님이 오셨습니다.

어쩌면 약속을 해도 시간을 맞추기 어려울 것인데 길을 잘못들고 빙빙 돌아서 석굴암에 도착하는 순간에, 그리고 차에서 내려 대웅전으로 걸어가는 그 순간에 20초 차이도 나지 않고 불공을 드리러 가시는 스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래서 스님을 따라 올라가서 정말로 석굴암에서 108배를 올리고 내려와서 적멸보궁에 들러서 9배를 올리고 이리저리 돌다가 오늘 만나뵐 주지스님께서 별도의 불공행사를 진행하시므로 잠시 산사를 산책한 후 12시 점심공양에 맞춰서 공양간으로 들어갔습니다.

다른 손님들이 식사하시기를 기다린 후에 차분히 공양을 챙겨서 맛있게 먹고 추가로 주신 떡도 먹었습니다.

식사 중간에 오신 주지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식사후에 방으로 올라가서 업무를 하고 다시 이런저런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서두름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방도에 대해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중간에 불교관련 전문 연구기관의 대표님이 오셔서 말씀을 나누시므로 잠시 보이차를 마시면서 두분 대화에 집중했습니다.

두 분 말씀 중에 30세부터 붓글씨를 쓰시고 경기도는 물론 전국에도 명필을 널리 알리신 바를 알았고 지금도 힘차게 글을 쓰시는 흔하지 않은 스님이고 주지스님이라는 점을 다시한번 알게 되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산사에서의 하루가 그렇게 마무리되는 중에 불교 연구소장님이 녹음기를 두고 내려가신 것을 알았습니다.

 

연락처가 따로 없지만 곧바로 주지스님께서 국립공원 입구의 관리사무실에 전화를 해서 지금 내려가시는 연구소장님을 멈춰 세우고 다음 불자가 녹음기를 가져갈 것이니 기다리시도록 조처했습니다.

스님이 주신 떡과 대추빵을 받아들고 서둘러 내려오니 승용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얼른 내려서 녹음기를 전해드리고 인사하고 다시 집으로 향했습니다.

인생에, 삶에 인연이라는 것이 정말로 존재함을 알아차린 것 같고 서두를 필요없이 차분하게 살아가면 다 좋은 일이 가득한 세상임을 부처님을 통해 알게될 것이라는 점을 알아차린 가피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깊은 인연을 실증하면서 오늘 하루를 보람차게 보내고 저녁은 역시 스님의 떡으로 마무리하고 보살님이 주신 햇배를 맛나게 디저트로 마무리하였습니다.

 

108배 절을 마친 후에 잠시 명상의 시간을 갖습니다. 절을 하면서 만난 과거의 영상을 다시한번 회상해 보면서 자신이 살아온 지난날을 살피고 앞으로 살아갈 미래에 대한 기대를 해 봅니다.

이 때에 손에 쥐고 있는 염주를 8자로 교차한 후 양손으로 염주알을 하나씩 돌리면서 시간의 정상부근을 넘나들어 봅니다.

두 손에 8자로 겹친 염주를 쥐고 한 알씩 이동하면 서로 뱅글뱅글 돌면서 마치 탱크의 무한궤도처럼 쉽없이 무궁무진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이렇게 염주를 잡고 명상을 하면 100년 지나서 양손의 실수로 밀리거나 빨리가는 관계로 두 손이 한자리에 붙을 것으로 예상하게 되지만 그냥 한번 양손으로 밀면 또다시 8자형의 무한궤도로 돌아갈 것이라는 상상을 합니다.

 

아마도 이렇게 시작한 참선을 아들에게 물리고 손자에게 이어져도 염주를 꿴 줄이 끊어지기까지 계속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간이란 각자가 느끼는 흐름입니다. 지구는 태양과 함께 태양계를 형성하고 우주의 어느 공간을 받아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주의 크기는 인간의 머리로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아주 크고 넓고 무궁무진하기에 그 넓이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아주 넓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속 우주는 더 넓을 수도 있습니다. 우주는 그대로인 채 시간속에서 무한의 공간으로 여행을 하지만 우리의 두뇌는 무한의 상상을 합니다.

태양계가 있고 은하계가 있으며 그 밖으로 더 많은 별이 커다란 우주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상상해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에서 보는 삼태성은 서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기에 3개의 별은 서로의 존재를 모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구에서 삼태성을 보고 어느 별이 더 밝고 다른 별은 조금 어두운 것을 보면 세 형제가 싸워서 냉전기간인가 상상해 보기도 하고 유난히 밝은 밤을 밝히는 별을 보면서 삼형제 별이 화해를 했구나 상상을 합니다.

우주의 넓이보다 더 큰 폭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두뇌역시 하나의 우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의 머리가 상상하고 구상하는 모든 형상이 실존할 수도 있고 도저히 실현할 수 없는 기대일지라도 우리에게 그런 상상력이 있고 그런 이야기를 다른이에게 전할 수 있다는 것이 고마눈 일입니다.

우주는 작은 제비집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3개의 알에서 깨어난 제비 병아리들이 하루종일 하는 일은 먹이달라고 입을 벌리기와 배변입니다. 똥을 싸면 어미가 물어서 멀리 내다버립니다.

 

조류학자의 말씀에 의하면 천적을 피하기 위해 그리 한다고 합니다. 주변에 제비똥이 떨어지면 천적이 냄새를 맡고 새끼를 잡아먹으러 드리닥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미가 먹이를 물어오면 세마리 새끼 모두가 입을 크게 벌립니다. 먹이를 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미와 아비 제비는 그 입을 벌리는 싸이즈를 보고 배고픔을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한 달 정도 지나고 보면 세마리가 균일하게 성장해 있습니다. 어미#아비가 정확하게 배분해서 먹이를 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포유동물의 세계에도 우주가 있습니다. 어려서 할아버지가 관리하시던 돼지가 새끼를 낳게 되었습니다. 아주 추운 겨울날 한밤중에 새끼를 낳기 시작하여 11마리를 받아냈고, 온 가족이 동원되어 갓태어난 새끼를 방으로 데려왔습니다.

세수한 손이 문고리에 쫙하고 들러붙을 정도의 강추위, 동장군의 기세가 대단했으므로 특별히 방으로 데려와서 따스하게 한 후에 다시 어미돼지에게 데려갔습니다.

 

그런데 어린시절에 어르신들로부터 배운 우주적 진리는 돼지 새끼가 항상 하나의 그 젖꼭지만을 문다는 사실입니다. 머리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는 몰라도 사실인 것으로 이해합니다.

더러 바뀌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 봅니다만 일단은 첫번 젖꼭지를 고수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문열이 돼지새끼에게 큰 젖을 배당한다고 합니다.

문열이란 아이들끼리 놀면서 누군가를 비하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조금 작고 부족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어미돼지는 11마리 새끼를 몸속에서 키울때 딱 한마리를 조금 작게하는 유전적 기술이 있답니다. 몸속에서 성장한 새끼를 낳을 때 이 작게 키운 새끼를 가장 먼저 내보냅니다.

문을 연다는 의미일까요? 문열이는 11마리 형제중 가장 먼저 태어난 맏이입니다. 첫아들은 자랑이고 첫딸은 살림의 기본이 된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비록 몸이 작아도 큰형이거나 큰 누나입니다.

 

할아버지는 문열이 돼지새끼에게는 특별히 튼실한 젖꼭지를 물려줍니다. 젖을 많이 먹고 자라서 나중에는 튼실한 씨돼지가 되라는 의미입니다.

김홍신 소설가가 스스로 밝히신 바에 의하면 조직속에서 생활하다가 공부를 하고 글을 쓰겠다는 다짐을 하고 조직을 나오려 합니다.

본인 말씀으로 몸은 왜소하지만 머리가 앞서므로 정신적 지주라 합니다. 호수의 물을 가르며 달리는 조정이라는 스포츠에 노를 젓지 않는 왜소한 선수가 있습니다. 콕스라고 합니다.

콕스는 선수들의 호흡을 맞추는 리더입니다. COX는 키잡이, 타수(coxswain)라고 하는데 조정경기, 경주용 배의 키잡이라 해석합니다.

 

이 콕스를 담당하는 선수는 노를 젓지 않고 船首(선수)에서 4명 또는 여러 명 선수의 노젓기를 지휘합니다. 방향을 잡고 속도를 높이는 지휘자 역할을 합니다.

노를 젓지 않으므로 큰 덩치일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체중이 나가는 선수가 콕스를 담당한다면 배를 더 가라앉게 해서 저항을 높힐 뿐입니다.

작은 것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용처가 다 있는 것이지요. 유전에서 말하는 用不用說(용불용설)입니다. 쓰면 쓰는만큼 예민해지고 능력이 출중해지는 것입니다. 청년시절 학원을 다녀서 배운 타자실력을 지금은 워드프로세서 키보드에서 잘 활용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피아노 연주자가 악보를 보는 순간은 길지 않습니다. 마음속 악보를 손가락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악기 연주자들은 악보를 보기보다는 마음속 음율을 악기를 통해서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각자의 우주가 있습니다. 오늘아침 나의 우주가 담긴 머리속에서 또 다른 작은 우주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자신의 우주를 만들어 냅니다. 오늘의 우주는 또 다른 하늘 위 별입니다. 어제는 생각조차 못한 우주를 오늘아침에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 가능성을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 우리에게 그러한 우주가 있음을 알지 못하는 이가 많은 것 같습니다. 모든 중생이 자신의 머리속, 마음 한가운데 자리한 우주를 발견하시고 그 안에서 새로운 삶을 이어 가시기 바랍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