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제주도
<2007. 11. 12- 11. 14>
삼다도 제주에는 돌과 바람과 여자가 많다고 했는데 바람은 심했고 돌은 많았다. 여자는 많이 보이지 않는다. 산은 원만한 곡선을 그리는 것이 여성스럽고 들은 11월인지라 억새풀이 무성하다. 갈대와 다른 억새풀의 흰 꽃이 때마침 풍부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만나 평화스럽게 일렁이고 있다.
말은 제주로 보내라 했지만, 뉴질랜드 양처럼 제주도 말이 흔하게 보이지는 않고 한번 차창으로 몇 마리의 방목된 말을 보았을 뿐이다. 경마장도 있다하고 승마시설도 보인다.
길가에 검은색 돌로 쌓인 성곽안의 감귤이 풍성하다. 감귤의 계절은 모르되 수확이 안 되는 것인지. 듣기로는 감귤이 과잉 생산되어 수확하는 인건비도 건지지 못할 상황이라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것인지.
그래도 길가를 장식한 풍성한 결실이 보기에 좋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고 우리도 교육의 마무리를 위해 제주도에 온 것 아닌가.
제주시 연동의 황가네 뚝배기(064-713-8887)의 오븐자기뚝배기는 풍성한 주방장의 정성이 가득담긴 별미였다. 뜨거운 국물이 시원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패류의 맛을 즐겼다. 성게알을 뜨거운 밥안에 어린시절 계란 비벼먹듯이 굴을 파고 살짝 데쳐서 먹는 것 또한 일미다. 오븐자기는 전복의 이종사촌이나 고종사촌이라고 하는데 다시마를 먹고 컷을 것으로 보이고 체력증진에도 좋을 것으로 느껴진다.
제주시와 도에서 홍보 팜플렛을 가져와 나누어 주었는데 이는 어느 자치단체나 유사한 홍보전략이다. 새로운 전략이 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직 묘책을 제시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실전에 들어가면 그 때에 좋은 작품 하나 구상하고자 한다.
맛있는 점심을 마친 후 돌문화공원을 방문했다. 개인 사업가가 새마을 사업으로 사라져가는 제주도내 돌관련 자료들을 모아왔는데 IMF로 사업이 어려워 돌 자료들을 방치하고 있던 중 관계 공무원과 시당국자의 지원으로 적지를 선택하여 전시하고 있다. 참으로 다양한 민속자료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더구나 제주도 형성과정에서 또는 이후 세월과 파도가 만들어낸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물과 돌의 만남도 이채롭다.
용암이 점점히 흘러내려 쌓인 작은 예술품도 보이고 파도가 만들어낸 불상모습의 실물크기 반가사유상 모습도 있다. 이 작품은 일본 반출 위기를 넘기고 이 자리에 서 있다고 했다. 사람 얼굴형상을 한 돌들의 열병식도 있었고 석물들의 동물농장도 있다.
묘지를 지키는 석물들도 모여있고 대문을 지키던 구멍이 3개, 4개, 가끔은 5개짜리 돌기둥도 보인다.
교육생 모씨는 이 돌문화 공원을 야간 개장하여 청소년들의 호연지기를 키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돌담도 있고 석물도 많고 개인 묘도 생생하고 현장을 지키고 있기에 성공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아이템이라는데 동감이다.
삼다수 공장은 100% 가동율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100대 브랜드 안에 들어갈 정도로 국민의 인식이 높고 수출에도 큰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쥬스 등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있어 매년 흑자를 보이고 있단다.
저녁식사로 말고기 요리 씨리즈를 만났다. 회, 찜, 불고기 등 다양한 음식이 나왔는데 담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2일차 아침이 밝았다. 6시 기상, 7시 식사, 8시 출발. 이른바 유럽여행에서 나온 678 일정이다. 1시간 버스가 달려 도착한 곳이 성판악이다. 여기서 사라대피소, 진달래 대피소, 백록담을 올라 다시 되 돌아오는 코스다. 일정표에는 9시간으로 잡혀있다. 70명중 40명 정도가 풀코스를 선택했고 일부는 반코스로 영실, 윗새오름, 어리목으로 간단다.
출발은 평지였다. 굵직한 돌과 나무가 조화를 이루면서 키 작고 가는 허리의 대나무 숲이 보였다. 간간히 나무마루를 놓아서 발목을 편안히 해주고 약수터도 3곳 정도 보였다. 등산길 옆에는 외길로 물건을 나르는 레일이 보인다. 중간쯤 올랐을 때 물건을 실은 객차를 4개정도 매달고 힘차게 올라가는 장면을 보았다. 부러웠다.
일단 한라산 등반은 통과시점을 지정해 준다. 이곳을 12시 이전에 통과해야 백록담을 만나보고 다시 하산하는데 충분한 여정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고마운 이정표다.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고사목이 흰 몸매를 드러내고 있다. 세월의 흐름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희기만 한 모습이다. 고목속에서 새싹이 자라는 母子목도 보인다. 캥거루 모녀, 모자가 연상되는 장면이다.
백록담을 보기위해 출발한지 2시간 경부터 몸이 힘든다고 버틴다. 다리가 힘들다 하고 어깨가 무겁다 한다. 발목이 시큰하다고 한다. 그래도 가야 한다. 내생에 처음이고, 어쩌면 다시 못 올 것만 같은 한라산이기에 이번에 꼭 가야하는 것이다. 어제 먹은 말고기의 힘을 빌려서라도 오르고 올라야 하는 것이다.
배낭에서 꺼내먹은 귤이 10개가 넘고 물병도 반을 비우고 비상식량으로 준비한 오이며, 음료수 캔이며 참 많이도 먹고 마시고 비웠는데 배낭의 무게가 그대로 인 것은 몸이 무거워 작은 무게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인가 보다. 오를수록 귤 한 개가 소중해 보이고 물병의 눈금 내려가는 것이 약간은 걱정도 되는 뭐 그런 상황이다.
숲속을 지나는 지루한 여정이 마무리된 것은 갑자기 흰색 동양화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사진이나 드라마에서 많이 본 나무계단이 나타난 것이다. 길가에는 서릿발이 3㎝정도 키를 세우고 있다. 그리고 구멍 숭숭 돌덩이는 여전하다. 이제 1800m의 해발이란다. 1950m까지 150m를 올라가는데 30분정도가 소요되나 보다. 만보기는 1만7천보정도인가. 중간에 허리춤에서 몇 번 흘러내렸으니 정확한 발자국은 아니지만 보태진 숫자는 아닐 것이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수는 없다. 이은상 선생의 시가 맘대로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평소 조용히 지내려 애쓰고 있지만 용기를 내려 스스로 체면을 걸려고 괴성을 질러본다. 이거 정말로 산소가 부족한 것은 아닐까?
정말로 나무계단 하나를 오르기 위해 어금니를 물었다. 세 걸음 옮기고 두거름 갈만큼 쉬었다. 찬바람이 불어온다. 작은 떨기나무들이 돌틈으로 고개를 숙인다. 바위도 바람을 피하는 듯 둥글게 앉아있다.
이곳이 민족의 영산 한라산 정상이고 저 아래 계곡이 백록담이다. 그런데 초등학교 교과서에 담겨있던 푸른 물은 보이지 않는다. 돌과 자갈과 흙이 보인다. 백록담[白鹿潭]이 담이 아니고 분화구이다. 자료사진에는 물이 보이지만 오늘 백록담에는 물의 흔적이 조금 있을 뿐이어서 아쉬웠다.
<백록담 : 총 둘레 약 3㎞, 동서길이 600m, 남북길이 500m인 타원형 화구이다. 신생대 제3·4기의 화산작용으로 생긴 분화구에 물이 고여 형성되었으며, 높이 약 140m의 분화벽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있다. 다음 백과사전에서>
수백명의 등산객들이 한라산 신령님의 등반 영수증을 받기 위해 사진을 찍고 있다. 자신의 모습이 들어간 사진을 많이 찍는다. 그냥 백록담만, 한라산만 찍는 이는 적어 보인다. 내 사진기에 한라산 모습을 담아가면 내가 이곳까지 등반한 것을 알 수 있으련만 이 사회는 그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라야 한라산 등반을 인정하는가 보다.
한라산 자락의 끝부분은 모두가 바다로 연결된다. 그렇다. 제주도는 섬이니 어느 방향이나 바다가 보인다. 한라산이 백록담이 바다를 자랑하기 위해 우리를 불러들였나 보다. 자신은 산이지만 크게 보면 바다의 한가운데 있음을 알려주려고 등산객을 불러 모으나 보다.
하산 길은 지루했다. 힘들게 올라온 길을 되 돌아 가는 것이다. 하지만 보는 각도가 180도 반대이니 그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면 될 일이다. 오르는 근육과 내려가는 힘줄이 다르다고 했던가. 힘든 것은 같은데 하산 길은 그래도 여유가 있어서 좋고 성취의 자신감이 피로를 덜어주어 행복하다.
옥의 티 하나가 있다면 한라산 정상에서 등산객의 안전을 위해 하산시간이 임박했음을 알려주는 관리인이 있었는데 그 말투가 사투리여서 그리 들렸겠지만, 좀 퉁명스러운 것이 거슬린 점이다. 티라기 보다는 작은 점 정도랄까. ‘여러분 안전을 위해 지금 하산을 시작하시면 참 좋습니다.’ 뭐 이정도의 멘트면 어떨까?
일행이 합류한 곳은 어가횟집(064-732-9339). 황돔으로 식사를 하는데 별미중 별미다. 싱싱함과 함께 좋은 분들의 정성이 느껴진다. 모두가 하나 되는 행복한 시간이 어둠속에서 밝아온다.
3일째 아침에는 우선 가족을 생각한다. 제주도 농산물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감귤을 집으로 보낸다. 택배회사 아주머니의 노련함을 배운다. 택배 표지에는 그 아주머니만의 비표가 있었던 것이다.
감귤따기 봉사와 체험도 행복한 사건이었다. 나무의 중간부분에 열린 귤이 맛있다고 한다. 보고 따고 먹고. 시청각 입맛이다. 정말로 나무에 열린 귤을 따면서 귤의 <한라일보↑>
소리를 듣는 것 같다. 어린 시절 가족이 모두 모여야 귤 1개를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요즘은 참 많이 생산되어 풍족하게 먹고 있어 행복한 일이다.
다시 1시간을 달려 태왕사신기 세트장에 도착했다. 한류스타 배용준이 출연중이어서 일본 한류팬들이 촬영이 있는 날에는 망루에 올라가 하염없이 촬영 장면을 바라본다고 한다. 돈 내고 올라간다고 한다. 그 속에 배용준이 있기에 그런다고 한다. 우리 일행들은 셋트의 크기에는 감탄했지만 모조품 티가 너무나 많이 나는 시설물에는 실망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한국 영상산업의 조명술과 편집기술에 다시 놀라게 되는 것이다.
바닷가에 자리 잡은 대풍미락 식당(제주시 함덕리 064-784-8100)은 계속되는 별미의 행진을 마무리한 압권이었다. 미역과 무와 돔이 어우러진 국인데 시원하고 깔끔하고 맛있다. 영양도 많은 느낌이다.
버스는 40분을 이동해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오는 길에 도심을 지나는데 이곳 제주도에도 교통체증이 있다. 낮 시간에 버스가 지나기 어려운 구간이 더러 있다.
공항에서의 여유는 즐길 필요가 있다. 해외 갈 때 짐 보내고 나면 1시간 이상 남게되어 일찍 오라고 한 여행사가 원망스러웠지만 가끔 짐에 에러가 걸리면 비행기 타는 시간이 촉발할 수도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면세점을 돌면서 ‘과공은 缺禮’라는 말이 떠올랐다. 코미디 ‘회장님의 방침’처럼 이곳 면세점의 CEO 지시가 있었는지 종업원들은 지나는 손님들에게 ‘어서오십쑈, 시계점임다. 안녕히 가십쑈’ 한다. 마치 철도건널목을 건너는 기분이다. 그냥 빨리 지나가야지 머물면 무슨 일이 날 것 만 같은 불안한 분위기를 준다.
공항에서의 2시간 여유는 이번 여행을 편안하게 정리정돈하여 머릿속의 한켠에 저장하는 기회를 주었다. 아내에게 줄 작은 선물을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요즘에는 비행기만 타면 아내에게 줄 선물을 사곤 했는데 아내도 마취된 것인지, ‘어린왕자’에서 본 글처럼 ‘길들여 진 것’인지 아니면 그것이 살아가는 일들인지 뭐 그런 생각이 든다.
비행기는 대략 400명 이상을 태우고 가뿐히 나라 오르더니 50분 만에 김포국제공항의 활주로에 상쾌한 마찰음을 낸다. 누구는 그러더라. 우리나라 조종사들은 승용차를 과격하게 운전하는 습관이 있어 비행기가 뜨고 내릴 때 진동이 심하다고.
개발원 관계자들이 세심히 배려하여 김포공항에서 개발원까지 버스를 타고 동료들과 2박3일 제주여정을 회고면서 돌아왔다. 2시간 가까이 걸렸으니 제주도를 비행기로는 2번 왕복할 시간이다. 거참, 세상일이란 다 그런가. 식사준비에 2시간이 걸렸는데 20분 안에 먹고 치우면 아까운 것 아닌가.
이번 여행이 행복한 것은 생에 처음으로 한라산을 올라 백록담을 보고 제주도 주변의 바라와 산과 들을 바라본 때문이다. 좋은 분들의 보이지 않지만 마음에 느껴지고 가슴에 전달되는 포근한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누구하나 여행일정에 불평이 없고 식당, 숙소, 버스, 방문지에 대해 불만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모두가 만족했으랴 만은 굳이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가슴으로 삭히면서 동료들의 행복한 미소에 힘들 더해주는 애틋한 동료애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잠든 사이에, 버스에서 졸고 있는 그 시각에도 일정을 챙기고 예약을 점검하는 진행팀과 제주도의 두 분 주역이 있었기에 이번 여행이 더더욱 행복한 것이다.
어쩌면 강의실에서 4박5일 동안 강의를 듣고 분임토의를 하는 것보다 2박3일 현장에서 함께 움직이고 체험하고 느끼는 것이 더 큰 교육인 것을 이제야 느끼는 우둔함을 걱정하고 이야기해야 하는가 보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