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에서 만난 KBS소속 언론인에게 '악어와 악어새'라는 소재를 가지고 글을 쓰고 있다는 자랑을 하였더니 기자정신으로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책으로 최종 정리하기 전에 취재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 내용을 추가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요즘에는 여러가지 취재방식이나 운용방식이 다르다는 설명도 첨가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기관에서 준비한 보도자료를 복사해서 기자실에 빼곡하게 배치된 각 언론사별 책상위에 올려주는 것으로 우리의 할 바를 다했다는 생각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자만심이라 할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각 기관에 출입하는 기자가 취재의 중심축에 있는 것은 맞지만 그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취재하고 보도하는 다양한 매체가 있고 그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1970년대 경기도청 출입기자님 명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군대 차트병 출신인듯 각지게 쓴 이 자료를 보면 경기신문, 경향신문, 동아일보, 신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매일경제, 서울경제, 현대경제, 경제통신, 산업통신, 시사통신, 문화방송, 한국방송공사, 기독교방송 등 18개사 회사명, 기자 이름, 사무실 전화, 집
아마도 이솝우화이지요. 국민학생때 도덕시간에 공부한 내용으로 부자가 당나귀를 팔러가고 있습니다. 당나귀를 끌고 아버지와 아들이 걸어가고 있는데 주변사람들이 누군가 타고가면 편할 것인데 당나귀를 그냥 데리고 가는 것을 지적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당나귀를 타고 마을을 지나가니 동네 아낙들이 걸어가는 아들이 불쌍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내리고 아들을 태워가는데 이번에는 노인정 앞의 노인들이 불효자라 비판을 합니다. 아버지를 태우고 가야지 아들이 당나귀를 타고 가는 것은 어른을 모시는 자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에 부자 두명이 당나귀에 등에 올랐습니다. 당나귀는 부자의 체중을 견디지 못해 흔들리는 모습을 본 청년들이 동물을 학대한다고 지적합니다. 결국 부자는 당나귀 네다리를 묶어서 장대에 메고 가다가 외나무다리를 만나게 됩니다. 당나귀를 메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모습을 본 아이들이 큰 소리를 치면서 흥미로워합니다. 아이들의 소란에 놀란 당나귀가 크게 몸부림을 치자 부자와 당나귀는 개울로 빠졌습니다. 옷이 흠뻑 젖었고 더이상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습을 이솝의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초등학생, 국민학생으로서는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로 기억되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다가 언론에 지적기사가 나면 담당 공무원의 마음은 심히 아픕니다. 나름 고민하고 공직자로서의 기본인 창의적인 업무추진을 위해 새로운 시책을 만들어 상사를 설득하고 예산 등 관련 부서를 설득하여 어렵게 추진하는 사업에 대하여 추진실적이 70%에 머물렀다는 비판적 기사를 접하게 되면 힘이 쑥 빠지면서 더 이상의 창의력 충전은 스톱됩니다. 주변에 보면 관계규정에 의해 당연히 추진하여야 하는 업무가 있지만 예산부족, 인력부족, 기타 복지부동의 사유로 아예 업무추진을 중단한 사례가 있다면 이를 찾아내어 권장하고 미진한 부분은 지적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추진하면서 여기에 더하여 새로운 업무를 창의적으로 운영하는 부서에 대하여 실적부진이나 부작용 등을 지적하면 이를 얻어 맞는 공무원은 언론이 針小棒大(침소봉대)하였다거나 공정성의 길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언론의 표현이 편집부 기자들의 제목에서 크게 좌우되어 긍정기사로 올라온 기사가 부정적인 쪽으로 기우는가 하면 비판성 기사를 올렸지만 제목에서 약하게 다루면 그런대로 반타작 기사가 될 수 있는 경우는 아주 흔하다 할 것입니다. 즉, 소주가 반병이나 남았다고 말하는 것은 술에
출입처에서 제공하는 자료만으로 멋진 기사를 만들어 내는 기자가 있고 기관에서 예상하지 못한 파트에서 기사를 발굴하여 독자와 타 언론사 출입 기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기자가 있습니다. 기관의 보도자료를 제공한 후 기사가 나오는 행태를 보면 이것이 기사가 되겠다 하는 것은 작게 써지거나 무시당하고, 보도자료를 내면서도 약간 쑥스러운 생각까지 들었던 연약해 보이는 자료가 아주 큰 활자로 지면을 장식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입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모든 언론은 가까이에서 자신들을 바라보는 독자와 시청자를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경기도청 기사실에 원고지와 노트북을 보관하고 있지만 이 중앙지 기자의 '나오바리(취재구역)'는 교육청, 진흥청, 시군 등 아주 넓은 영역을 수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모든 언론사가 쓸 것으로 생각되는 자료는 작게 쓰고 혼자만 취재한 사건은 크게 내도록 데스크에 부탁하는가 봅니다. 아직은 공직생활이 一天(일천)한(한 번 숨을 쉰다는 뜻으로, 매우 짧은 시간을 이르는 말) 하룻강아지 7급 주무관의 생각이었으니 행정과 언론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소상히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변에서도 참 좋은 자료라는 평을 해주는 자료
조선시대 착한 농부가 풍년을 맞아서 임금께 감사 인사를 드리기 위해 수수엿을 준비하여 한양길에 올랐습니다. 며칠을 걸어서 도착한 궁궐에는 창과 칼을 든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고 남루한 옷차림과 시골스러운 행색으로 인해 쉽게 궁궐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하루 이틀을 방황하던 농부는 성벽 한구석에 앉아서 슬피 울었습니다. 마침 이곳을 지나던 임금이 농민을 발견했습니다. 임금은 아마도 정조대왕으로 생각됩니다. 선비차림의 正祖(정조)는 농부에게 다가가 울고있는 사연을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이곳에서 울고 있나요?" "네, 저는 시골에서 농사짓는 농부인데요, 임금님 덕분에 농사가 잘 되어서 조금이라도 은혜를 갚기 위해 수수엿을 고아서 임금께 드리러 왔지만 만나뵐 길이 없어서 슬퍼하고 있습니다." 선비가 가까이 다다가서 말했습니다. "만약 임금께 이 엿을 드리면 상을 내리실 수도 있을 것인데, 고을의 원님 벼슬을 내리면 받으시겠습니까?" "예, 고을벼슬을 주시면 제가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다음으로 관찰사 벼슬도 하겠습니까?" "제가 부족하지만, 觀察使(관찰사)도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평복 선비차림의 정조와 농부의 대화가 무르익었고 참판을 지나 이조판서를 거쳐서
1990년대에 언론홍보를 하면서 자료를 E-Mail로 송고한다는 소문을 들은 인근의 광역자치단체 홍보팀장이 벤치마킹을 하러 오셨으므로 상세하게 그 과정과 내용을 설명드렸습니다. E-Mail이라는 것은 당시를 시점으로 보아도 이미 10수년 전에 시작된 것이고 1996년경에 하이텔, 천리안이라는 인터넷 연결 이메일을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전산 전문가인 선배 공무원이 전화기 코드를 뽑아서 컴퓨터 뒷면에 연결하고 인터넷망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보고 참으로 신기하다 생각했습니다. 소련에 업무차 가신 교수님이 소련 땅에서 E-Mail로 교안자료를 보내시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쯤 보낸다 했으므로 천리안이나 하이텔로 메일을 연결해서 교안 자료를 받아 교육교재를 편집한다 했습니다. 여기서 상황정리가 필요합니다. 소련 공산국가에 교수님이 여행을 간다는 것도 황당한 일인데 거기가서 이메일로 파일을 보내면 전선을 타고 이곳에 도착할 것이고 그 내용을 따운받아 자료로 쓰겠다는 것은 더더욱 荒唐無稽(황당무계)한 일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메일이 왔다하고 한글파일을 받아 교재를 편집해서 교육에 활용했습니다. 이렇게 만난 이메일을 언론홍보에 활용하고 있으니 다른 기관에서 찾아올 만한
언론중재법은 언론사 등의 언론보도 또는 그 매개(媒介)로 인하여 침해되는 명예 또는 권리나 그 밖의 법익(法益)에 관한 다툼이 있는 경우 이를 조정하고 중재하는 등의 실효성 있는 구제제도를 확립함으로써 언론의 자유와 공적(公的) 책임을 조화함을 목적으로 한다. 언론중재법을 보면 ① 언론의 자유와 독립은 보장된다. ② 누구든지 언론의 자유와 독립에 관하여 어떠한 규제나 간섭을 할 수 없다. ③ 언론은 정보원(情報源)에 대하여 자유로이 접근할 권리와 그 취재한 정보를 자유로이 공표할 자유를 갖는다. 자유와 권리는 헌법과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제한받지 아니한다. 그리고 언론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① 언론의 보도는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하고, 국민의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보호·신장하여야 한다. ② 언론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여야 하고,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타인의 권리나 공중도덕 또는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③ 언론은 공적인 관심사에 대하여 공익을 대변하며, 취재·보도·논평 또는 그 밖의 방법으로 민주적 여론형성에 이바지함으로써 그 공적 임무를 수행한다. 또한 ① 언론, 인터넷뉴스서비스 및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은 타인의 생명, 자유,
언론인은 지속적으로 중앙 지향적입니다. 경기도내 지방 언론인으로 들어와 중앙 방송국의 간부가 된 경우가 있고 중앙신문사 부장급이 된 사례도 많습니다. 같은 지방지 간에도 많은 언론인들이 오고가고 신문기자가 방송으로 가고 방송기자가 신문으로 통신으로 인터넷신문으로 자리를 이동합니다. 경쟁사 기자로 건너가서 승승장구하는 케이스도 더러 있습니다. 잘 아는 K기자는 지방지에서 장기근속 후 경제지에 있다가 다른 지방사에서 다시 최초 근무하였던 회사에 복귀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룹 이동의 경우도 있는데 이는 아마도 끈끈한 선후배의 정으로 뭉쳐진 독수리 5형제의 경우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함께 간다 입니다. 언론사 에이스로 활동하다가 퇴직한 후 다른 신문사 부국장으로 가는 코스는 마치 공무원이 정년을 앞두고 산하기관 본부장으로 가는 경우와 유사합니다. 젊은 시절 신문사 차장 부장을 거쳐 국장을 하신 분들이므로 언론에 대한 경륜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입니다. 공무원은 내부 인사숨통을 열기 위해 정년 2년 전에 산하기관에 가서 경험을 발휘하고 퇴직하도록 하는 제도를 운영해 왔습니다. 이를 요즘에 언론에서 '관피아'라면서 비판을 합니다. 세파속에 흔들리며
8년 근무하신 김문수 경기도지사(32~33대, 2006. 7 ~ 2014. 6)는 2006년 도지사에 취임하여 도청 정문을 철거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인수위 시절에는 도청사 주변의 철조망을 걷어내자고 제안했습니다. 도민과의 거리를 가깝게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2009년에 정문과 후문의 철제대문도 철거 철거한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경기도의회 공보과장으로서 도청 청사를 관리하는 회계과에 의견을 냈습니다. 경기도청·경기도의회 동판을 살려내자고 제안 한 것입니다. 동판이 박힌 시멘트 구조물을 통으로 뽑아 화단에 옮겼다가 광교청사 준공시에 이전하자고 건의했습니다. 담당자도 사무관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예산이 없답니다. 예산이란 목적사업을 구상하고 예산안을 편성하여 도지사의 결재를 받고 의회에 올려서 의결되면 확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산이 없는 것이 아니라 경기도청과 경기도의회 동판을 보존할 의지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다시 문화재과에 의견을 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말은 아직 50년이 지나지 않아서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1967년에 세워진 경기도청 동판이므로 2009년에는 딱 42년입니다. 8년이 모자라서
물론 언론인들은 이 세상을 비판적으로 봅니다. 그래야 기사가 나옵니다. 평범하게 바라보면 그쪽에서 생각하고 제시하는 대로 맞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만 모든 것을 뒤집어 보고 생각하는 데서 기사가 출발합니다. 기사는 발로 쓰는 글이라고 합니다. 현장을 가보고 다시 확인하고 생각하여 작성되는 글에서 멋진 기사가 보도되는 것입니다. 연탄가스에 사망하는 사고가 가끔 발생하던 시절에 늘 있는 일인데 왜 이리 신문에 크게 보도 되는가 물었습니다. 질문을 받은 기자는 연탄가스에 국민이 사망한다면 국가, 사회, 정치인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자동차로 인한 사망자, 부상자도 아주 많다고 하는데 이 문제에 대해 국가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물었습니다. 자동차 회사의 문을 닫을 수는 없으니 교통사고에 대한 국민의 경각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크게 보도한다고도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총기사고가 많다는데 국가가 나서서 총기를 모두 치우면 될 것이라 말하니 총기가 없으면 일부 총기를 소지한 강도들이 더 많이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총기사고는 총기가 막고 또 다른 폭력을 예방한다는 말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니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는 사건사고에 대하여 단편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