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기상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고구려의 기상 구리시 만들기

구리시장 박영순

 

국가민족이 유념해고 해결해야 할 문제인 고구려 역사와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중국이 소위 중심이라고 칭하고 동북공정, 동남공정을 진행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중국이 기득권을 주장하려 하는 것이다.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고조선부터의 역사자료가 불타 버렸다. BC37년 고구려가 건국하여 668년에 나당연합군에 망할 때까지 고구려는 만주의 주인이었다. 당나라가 힘이 약해 밀려나면서 대조영이 발해를 세워 200년간 번창하였고 그 증거중 하나는 일본에서 발해가 고구려왕이라고 밝힌 옥쇄가 반결된 일이다. 즉 AD100년 동안 만주를 지배했다.

 

 

중국은 요나라가 200년 된 발해를 멸망시키고 금나라가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원나라 몽골은 명나라로 이어지고 청나라에 이어 일본만주국이 세워진다. 모택동이 공산통일을 하면서 중국 한족이 처음으로 만주를 지배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 민족이 1,000년 동안 만주를 지배했고 그 이후에는 동이족이 1,000년을 지배했으므로 중국당국은 취약한 역사에 대한 대응이 필요해졌다. 즉 중국 정부는 조선족의 분리 독립 운동이 발생할 우려가 있고 한반도의 남북한 통일 또한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고구려는 중국의 역사였다는 논리를 펴기 위해 역사를 날조하고 있다.

 

중국에 북한 땅을 빼앗길 수는 없는 일이다. 중국인의 의식 속에는 한국이 자기들의 속국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일본에게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한국에 배우러 온다고도 한다.

중국인들은 당나라를 가장 위대한 왕조로 평가하고 있으며 현재의 주오하패권주의가 최고라고 자랑하고 있다.

백두산공정, 간도공정은 팽창주의 영토 확장을 하겠다는 것이다. 슈퍼파워인 미국과 중국이 있는데 본토에 미군이 주둔한 곳은 한반도가 유일하다. 중국이 북한을 차지하면 남한은 영세중립국을 선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고구려와 고려가 혼용되고 있다. 중원 고구려비는 장수왕이나 광개토왕때 세운 비로 추정되며 여기에서 국호를 고려라고 하고 있다. 아마도 장수왕때 수도를 평양으로 이전하면서 휴기 고구려를 고려라 했을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1980년부터 시작되고 2002년경 외부에 밝혀졌다. 청와대에 근무할 당시 폴란드에 갔는데 폴란드 중앙국립미술관의 큰 그림에 징기스칸 부대가 폴란드를 짓밟는 내용이었고 그 그림 속에 등자(말을 탈 때 발을 거는 것)가 있었다.

 

1998년 민선2기 시장때 구리 아차산에서 고구려 유물이 나왔다. 발목을 등자에 고정시킨 그림으로 징기스칸보다 500년 전에 등자를 사용한 것이다. 이는 앞으로 고증을 거쳐야 한다.

값진 유물은 고구려 벽화이다. 중국의 고구려 벽화가 선명한 것을 보고 뜨거운 감동을 받았다. 일본이 니폰이라고도 하고 Japan이라고도 하는데 Japan은 동사로서는 ‘칠한다’는 뜻이 있다. 칠과 도자기 기술을 한반도에서 가져갔는데, 일본의 고급호텔은 옷칠로 장식을 하고 있다. 옷칠의 수명은 5,000년을 간다. 서양물감은 100년을 못 간다.

고분의 벽화는 옻칠을 했을 것이다. 고구려는 경제적으로 부강했다. 벽화를 보면 코가 큰 서역사람이 나오는데 그 역할이 말몰이, 마당쇠, 씨름선수 등이다. 교역을 통해 사람들의 교류가 많았을 것이다.

 

중앙아사아의 5,6세기 공주결혼식 사진 끝에 고구려사신이 나온다. 깃털을 단 조관을 쓰고 있어 고구려인임을 확인할 수 있다. 고구려가 강성했던 이유는 고도의 철강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적은 북한인 것은 분명하다. 통일된 후 우리의 주적은 중국이다. 중국은 한반도의 통일을 한사코 반대한다. 중국을 극복하기 위해서 고구려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에서 고구려 장수왕때 수도를 평양으로 옮긴 것이 멸망의 원인으로 주장했다. 선왕 광개토대왕까지는 북진정책이었는데 장수왕은 남방을 지키겠다고 수도를 남쪽 평양으로 이전한 것이다.

신채호 선생은 수도를 평양으로 이전하지 말고 계속 공략하였으면 큰 국토를 운용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북으로 가야하고 북한과 중국과 러시아와 교류해야 한다.

고구려는 오늘의 문제, 민족의 미래 번영의 문제이다. 이제 과거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본인은 공주사대를 나와 교사를 하다가 외무고시를 거쳐 외교관을 하고 내무부로 와서 청와대에서 8년간 근무하고 1994년에 관선 구리시장으로 일했다. 시장으로 일하면서 아차산에 무엇이 있을 것 같아 지표조사를 해보니 고구려 보루가 5개가 발견되었다.

신라는 경주에, 백제는 부여와 공주에 있지만 고구려는 특정지역이 없으므로 구리 아차산에 고구려 테마공원을 만들기로 했고 고구려 상징, 수렵도, 북 등을 만들고 전시하고 있다.

광개토소년단이 자신의 나이만큼 북을 치도록 했고 광개토대왕 동상을 설립했다. 10만평에 고구려 테마공원을 조성하고 1,500년전 고구려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구려 역사기념관 건립재원은 국민모금운동으로 마련될 것이다. TV3사의 고구려 드라마가 새로워지고 뜨거워지고 있다. 독립기념관이 일본의 역사왜곡에 항의하여 국민의 모금으로 지어진 것처럼 중국의 동북공정에 항의하고 고구려의 역사를 확인하는 성금모금 운동이 시작되면 여러분의 지지와 참여를 요청한다.

국민의 성금으로 기념관이 들어서면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의식있는 지도급 인사들의 관심이 중요하다.

이제는 정부의 인식도 변하고 있다. 주몽, 대조영이 뜨니까 관심이 높아진다. 이제 청소년들이 아차山에 와서 고구려의 기상을 배워서 통일 한국을 이끌어 갈 것이다.

세계사의중심에 서기위해 고구려를 지켜내고 정신을 이어 받아야 한다.

 

구리시는 1리가 모자라서 9里인데 1975년 서울시로 편입되게 되었으나 문세광 사건으로 대통령 결재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워커힐의 일부, 한강이 함께하고 100만평의 평야가 GB이다.

이제 구리시를 수도권 테마관광지로 만들어 가고자 한다. 자연농원 같은 랜드는 한계가 있고 디즈니가 참여하는 테마관광지가 될 것이다. 여행적자가 100억불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필요하다.

아차산은 고구려, 동구능은 조선시대, 그리고 선사시대, 삼한시대 등 한국의 역사문화를 체험하는 현장이 될 것이다.

코스모스 단지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데 60만명이 이곳을 다녀갔다. 또한 소각장 굴뚝을 타워로 만들어 회전하는 레스토랑을 만들었고 수영장과 인조잔디구장도 만들었다.

수도권의 벌판인 구리의 여건을 최대한 이용해 나가고자 한다. 외국인을 위한 관광지도 조성할 것이다. 여러분의 성원과 지지를 당부한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집필중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