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에서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수원역 지하철은 수인·분당선의 30여개 역중에서 가장 친밀한 곳입니다. 매일 전철을 타지 않으면서 일부러 지하로 내려갔다가 다시 지상으로 올라옵니다. 지하에 내려가면 잠시 이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을 만나는 기분이 듭니다.

 

 

아마도 공상만화, 공상영화에서 꿈꾸는 지하세계는 이렇게 꾸며질 것 같습니다. 개미굴 같은 지하세계를 보면 여러 가지 상상의 날개가 펼쳐지는 느낌이 듭니다. 특히 어린이에게 지하세계를 많이 경험하게 하면 더 큰 공상과 상상을 펼치게 될 것입니다.

지하철역으로 진입하면 우선 평생을 익숙하게 살아온 보도와 자동차 도로와는 많이 다른 공간을 만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는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와 인도를 붙여놓았습니다. 더러 캐나다와 같이 국토가 넓고 인구밀도가 낮은 경우에는 상행선과 하행선이 4km 떨어져있다고 합니다.

중앙선이 30cm정도인 우리와는 다른 것이지요. 그러하다면 중앙선이 중앙선인줄 모르겠습니다. 상대편 자동차의 불빛이 보이지 않을 것이고 교통사고가 나도 정면충돌사고는 없겠군요.

 

지하철은 기차와 사람의 동선을 분리하였습니다. 안전팬스가 설치되어서 문이 열리면 타고 내린 후 다시 닫혀야 열차가 출발합니다. 그 틈새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여 온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늘 대형사고가 발생하여 인명피해가 난 후에서야 대책을 강구하곤 합니다. 사후약방문이니 소 잃고 마구간 고친다는 말은 조선시대부터 이어온 안전에 대한 비판여론입니다.

지하에 들어서면 지상의 세계와는 크게 다릅니다. 모든 것이 체계적으로 정비되었습니다. 화분이 없습니다. 식물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돌과 유리입니다. 철판으로 만든 에스컬레이터가 내려가고 같은 속도로 손잡이가 흘러갑니다.

손잡이는 플라스틱 재질로서 둥글게 휘어지는 특성을 잘 활용하였고 탄성이 강한 쇠로 만든 발판은 탱크의 무한궤도가 되어 스르르 흘러갑니다. 그 틈새가 들며날며 맞아 떨어지는 모습은 마치 고급의 기계가 돌아하는 형상입니다.

 

일단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오른쪽으로 다가서야 합니다. 좁은 통로의 왼편은 더더욱 다급한 손님에게 양보해야 합니다. 제법 빠르게 흘러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바쁘게 걸어 내려갑니다. 왼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두 귀는 이어폰으로, 브르투스로 채워져서 주변의 사람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바쁜 일정이면 조금 더 일찍 집을 나서야 합니다. 길바닥에서 시간을 주우려 하지 말고 잠자는 시간을 덜고 아침 화장시간에서 여유시간을 빼내야 합니다. 시간은 일정하게 흘러가는데 쓰는 사람의 마음속에서의 흐름 속도는 제각각입니다.

그러니 시간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시간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에 의해서 관리되는 것인데 여기에서 사계절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 속에서 인간은 1년을 느끼고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말합니다.

 

사실은 같은 5분도 내가 기다리면 지루하고 다른이가 나를 기다리는 것이 지루한가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시간은 제각각 다르게 느끼지만 실제로는 초침이 일정하게 돌아갑니다. 1년에 1초가 차이나서 윤초를 한다고 합니다.

그런 느낌으로 지하에 내려와서 머리위로는 12차선 대로를 이고 걸어서 건너편 대각선 방향의 출구를 향합니다. 그 사이에 만나는 시설은 모두가 규격화되고 획일화된 현대식 장비입니다. 목적지를 알리는 안내판이 보입니다.

나가는 곳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수인·분당선이라고 소상하게 알려줍니다. 그리고 입간판 광고가 있습니다. 불경기라서 광고판에 광고를 하라고 광고중입니다. 이 곳에 광고를 하실분 연락처를 적은 광고판입니다.

 

이어서 매점이 나옵니다. 스마트폰 케이스, 벨트, 가방 등 저렴한 7,000원에서 10,000원대 소품을 진열하고 있습니다만 수원시청역 안에서 이들 소품을 판매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소상공인이 많이 힘드시겠습니다.

승차권 판매기가 보입니다. 보증금 환불기도 있습니다. 이제 목적지로 나가는 문은 6번출구입니다. 합정역 5번출구로 유재석이 인기를 얻었습니다만 수원시청으로 가는 길은 6번입니다. 그리고 다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합니다.

결국 지상에서 내려온 것과 올라가는 것을 뺀 나머지 이동거리는 지상에서 신호등에 따라 횡단보도를 건너고 보도를 지나는 거리와 같은데 지금 지하철역 안에서의 느낌은 외국이나 미래의 세계에 와있는 것 같습니다.

 

금방 지하철이 도착한 듯 한데 아마도 서울에서 달려와 수원역을 지나 인천으로 가는 길인가 봅니다. 대략 인천방면에서 수원역을 거쳐서 시청역까지 오는 승객은 적을 것 같습니다. 바쁜 걸음을 옮기는 젊은이를 볼때마다 청춘은 빠르게 지나가니 바쁘게 사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세월을 보내고 나서 돌아보니 젊은 날을 저처럼 빠르고 바쁘게 살 것만은 아닌 듯 생각됩니다. 그제 노태우 전대통령이 89세로 서거했습니다. 이런저런 논란이 있었지만 국민장으로 장례를 5일동안 치르고 있습니다.

현직시절 한복이 어울리던 김옥숙 여사가 86세의 나이든 모습으로 남편의 입관을 지켜보았다는 기사를 봅니다. 젊고 아름다운 모습은 세월에게 넘겨주고 자녀들의 손을 잡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시간과 세월이 이리도 무상한가 생각합니다.

 

이제 지하역을 나와서 일상의 거리로 나오면 다시 복잡하고 균형 잡히지 못한 가로를 만나게 됩니다. 이처럼 복잡한 거리에서 살았는데 잠시동안 지하의 정제된 공간을 걸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하도, 지하철역을 걸어보면서 잠시 마음의 평온을 얻습니다. 그래서 출근, 퇴근길에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지하역을 걸어봅니다. 그 속에서 작은 평화와 보람과 행복을 느끼게 되거든요. 아마도 훗날에 지하세계를 이처럼 꾸민다면 고층빌딩보다 더 값나가는 시설이 될 것이라 봅니다.

하지만 채광과 환풍의 문제를 선결해야 할 것입니다. 이 문제를 먼저 풀어내지 못하면 지하세계에 대한 기대는 무너질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퇴근길에 지하도를 걸어가면서 채광과 공기 길을 생각하곤 합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집필중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