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생의 일기장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금연의 시작]

2007년에 담배를 끊었고 2012년에는 새벽잠을 줄였다. 2월에 지방혁신인력개발원 입교를 명 받으면서 작은 고민을 시작했다. 나이 50에 연수를 가면 무슨 공부를 하는 것일까?

흔히 월례조회나 직장교육에서 이른바 저명(著名)강사(낮은 이름이 아니라 나타나는 이름/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음)를 만나곤 하였는데 그런 분들을 1년 내내 만나서 강의를 듣는 것일까?

그러하다면 그 강의는 자리에 앉아서 듣기만 하면 될 일이고 정작 본인이 해야 할 일은 10개월이 넘는 기간에 어떤 의미로 임해야 하는가가 더욱 중요한 화두가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작은 결심을 한 것이 금연이었다. 아마도 이세상 사람들이 많이 정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결심이 금연일 것이다.

 

 

하지만 일단 금연을 2007년에 가장 중요한 과제로 정하였으니 어금니를 물고 실천하는 일만 남았으렷다. 일단 금요일 저녁에 시작한 금연이니 밤은 지나고 토요일 하루는 버티고 지나갔다. 일요일이 문제였고 고비였다.

그래서 마트 약국에 가니 둥근 패치를 주는데 노랑색이다. 이 속에 담배 성분이 들어 있어서 털이 적게 난 피부 어딘가에 붙이면 금연에 도움이 된단다.

월요일 아침에 입교하였다. 2007년 2월 14일 아침. 전국에서 모여든 70명의 50대 전후의 장년들 중에는 흡연자가 15명 정도였다. 물론 교육을 기회로 담배를 끊은 이도 있으리라.

 

아침 커피타임에는 사람들을 피하였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조우하지 않기 위함이다. 점심식사후 식당앞이 문제다. 끽연가 사이의 농담으로 ‘식후제일미’ 담배가 아니던가.

식후 3분이내 끽연하지 아니하면 ‘3분후 즉사’라는 농담도 있다. 그래서 식사를 마치고 식당건물 뒤편으로 돌아 담배연기를 피하여 우회한 후 강의실로 돌아왔다.

입교한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일주일, 한 달이 지나니 이른바 禁斷現象(금단현상)도 겪어내고 30일 금연이라는 성취감에 의해 교육내내 금연하였다. 그중에서 가장 위험한 시기는 회식자리. 당시에는 暴飮(폭음)하는 선수들이 더러 있던 관계로 함께 취하다 보면 불가항력으로 담배를 입에 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용하게도 잘 넘겼다.

2012년, 이번에는 지방행정연수원으로 이름을 바꿔 달고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이곳에 연수생으로 왔다. 물론 강의실이 202에서 201로 한 칸 옮겼다. 2007당시 물끄러미 화장실 가다 들여다보면 아주 소수 선배공무원들이 평온하게 자리잡고 휴식을 취하던 그 방이다. 하지만 들어와보니 평화만은 아니고 늘 긴장과 생각이 겹치는 공간이었다.

 

2007년부터 현재 2012년까지 금연하고 있으니 이번에는 무슨 결심을 해야 하나 생각을 하던 중에 운동의 중요성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그래, 운동을 많이 해서 건강을 지키자. 그리하여 일단 승용차를 집에 세워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아침에 일찍 집을 나서면 20분정도 걸어서 산업도로(국도1호선)까지 걸어가서 300번 버스를 탄다. 시간이 남으면 몇정거장 걸어가서 승차하고 다시 시간을 재서 연수원 도착 2개정거장에서 하차하여 다시 걸었다. 연수 중 3번은 집에서 연수원까지 9km를 걸어갔다. 하반기에는 새벽에 13번 종점이 있는 광교산 기슭에 하차하여 산등성이를 천천히 걸어 연수원에 도착했다.

 

운동효과가 몸속의 이곳저곳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몸이 가벼워졌고 6개월 여만에 4kg 정도 체중이 줄었다. 걷기운동 만으로 체중을 감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험한 것이다. 그리고 택시를 타던 구간은 버스를 이용하고 버스 3정거장 거리는 아주 평온한 마음으로 걸었다. 걷는다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참으로 편안한 일이다.

우선 버스를 탓을 때 못 본 사물이 보이고 그 물체의 형상이 달리 보였다. 고은 시인의 시에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 갈 때 못본 그 꽃’이라는 글귀가 있다. 인생을 살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자세하게 살피거나 챙기지 못한 일에 대한 반성을 하게 하는 시다.

자식사랑보다 손자사랑이 크다는 말을 한다. 현직에서 바쁘게 살고 힘들게 일하면서 키운 아이들이 사랑스럽지만 귀여움을 알지 못했다는 반성을 하는 부모들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그 아들딸이 낳은 손자손녀가 참으로 귀엽단다.

 

내 자식이 나은 아이이기도 하지만 삶의 여유속에 아이를 돌보는 행복을 느낀다고도 푼다. 그래서 아들 하나만 낳아 키운 것을 반성한다는 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손자손녀가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보니 외아들은 함께할 형제자매가 없으니 얼마나 쓸쓸할까 생각이 든다는 말이다.

올라갈때는 보이지 않았던 꽃이 마음의 여유와 평화로움으로 바라보니 그리도 잘 보이더라는 말에 공감되는 이야기다. 그리하여 연수생 8개월 동안 택시를 한 번도 타지 않았다. 걷고 버스를 타고 평온한 자세, 여유로은 시간속에 세상을 다시보는 생활을 통해 정신을 맑게하니 체력도 좋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안타까운 일은 2012년 10월 30일, 이제 교육수료를 달반 남긴 상황에서 테니스 시합 수업 중 왼쪽다리 정강이 근육파열 부상을 입은 것이다. 병원에 가서 주사기로 피 20cc를 뽑아내고 이후에도 6차례 피를 뽑으니 모두 100cc가 넘을 것이다.

 

첫날은 붉은 피, 다음번부터는 검은 피, 그리고 30일이 지난 12월초에는 다시 붉은 기운이 도는 피를 뽑아냈다. 30일 넘게 목발을 짚고 다녔다.

운동이 갑자기 중단되자 근육이 쑥하고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소화 불량이 오는 것 같고 무기력증이 나타났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간의 운동 효과를 보아서 나름 체형은 유지하는 것 같았다.

이제 40일 만에 목발을 졸업하고 두 발로 걷는다. 평소 취미로 올리던 108배도 일시중지 상태이고 저녁산책도 안되고 광교산 등산은 중지되었다.

간신히 두 발로 걸으면서 평소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 두 다리의 역할에 감사한다. 조금 나아지면 광교산 형제봉에 두다리 형제의 힘을 빌려 올라가고자 한다. 가면서 조금도 불편해 하지 말자.

 

다쳐보니 다리의 역할과 고마움을 이해하겠다. 목발은 행정업무의 작은 소재, 이야기 소재가 되었다. 그리하여 남을 배려하고 이웃을 생각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유리한 상황을 최대한 발휘하고 활용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삶의 원칙에 대해 말하고 실천하고자 한다.

그간 목발 이강석을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금연을 권고한다.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 금연하시고 열심히 운동하시기 바란다.

 

☆교육수료를 축하드림☆

논산 훈련소에 입소한 20대 초반 훈련병처럼 서먹하게 서로 바라만 보던 그날이 2012. 2. 14일 이었는데 열달이 훌쩍지나 세번, 네번의 계절을 겪은 초겨울의 오후입니다. 그동안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폭풍에 비바람을 만나고 산으로 바다로 해외로 다름질 쳤습니다.

원룸에 익숙해지고 강의실이 오히려 편안해지면서 인간 특유의 적응력을 보였습니다. 가슴속 적응 DNA가 적기에 발동되어 동기가 동료되고 친구되고 회원으로 규약도 받아들었습니다.

바쁘고 빠르고 매순간 결정해야하는 실전에서 벗어나 잠시 벤취에 앉듯이 물러난 이곳에서도 치열함은 조금 있었습니다. 정신 줄을 놓지 말자는 전쟁터 부상병은 아닐지라도 나태하지말자, 무엇인가 얻어 보자, 생각을 더 깊고 높게 해보자는 다짐과 각성과 결심을 매일아침 화두로 던져 보았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이룩한 성과는 없는듯하고 守城(수성)도 어려워 보일 때의 아픔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연 속 봄이 가을이 되듯이 어느덧 자신의 생각에도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생각의 깊이, 판단의 넓이, 대인관계의 스킬이 조금씩 미세한 변화조짐을 스스로 느끼면서 목사님의 미소, 스님의 눈길처럼 공직자에서 성직자가 되어가는 기분이 드는 것입니다.

사실 화요일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 연수원 마당을 돌고 헬스장에 들르고 광교산을 가로지른 영동고속도로 가로지르는 아치교를 건너가고 돌아오면서 성직자의 묵언수행을 배운 것 같습니다.

인간의 삶은 이별의 연속선상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한 달 여 남은 원룸 전세계약기간이 아까워 지기 시작합니다. 할 수 있다면 다시 1년 재수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가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가야지요. 개척교회 전도사의 심정으로, 암자 비구니의 마음으로 세상과 속세의 어린양과 중생을 위해서 기도하고 용맹정진 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성직자급이 된 34명 용사들이 할 일입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여러 가지 잘잘한 사건사고가 있었지만 다행입니다. 34명 전원이 이번 ‘교육연수 마라톤’을 완주하였습니다. 그래서 교육생들 스스로가 서로에게 ‘완주 메달’을 드리고자 하는 것 입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집필중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