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청소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입주청소! 생소한 말이었습니다. 새로 마련한 아파트로 이사 준비를 하는데 업체를 불러서 입주 청소를 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업체에서 만든 용어일 것입니다. 새로 지은집이든 사서 들어가는 집이든, 전세로 가든 처음 입주를 하는 것이니 용역회사가 ‘입주청소를 하는 용역을 하겠다’하고 이를 집주인이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 비용이 들어도 청소전담 용역회사에 청소를 의뢰하는 것이라 합니다. 실제로 입주 청소 과정을 보니 일응 공감이 가기는 합니다.

 

 

다만, 외국인들이 찬장과 베란다 등 아파트의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왜곡된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아쉬움이 일어났습니다. 차라리 이삿짐을 들인 후에 가족이 나서 청소를 하는 것이 좋았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실제로 이사하는 과정에서 이리저리 짐을 이동할 것이고 다시 청소를 해야 하고 다양한 짐이 들어왔으니 재배치 이후에 정리 정돈을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 전에 입주 청소라는 명목으로 청소를 한 것이 효과가 있는가는 의문점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필자는 공직 생활을 하면서 20번 이상 사무실을 이동했습니다. 전임자가 쓰던 책상을 받으면 일단 비어 있으니 물걸레질을 하고 물기가 마르면 필기구 등 사무용품을 제자리에 넣었습니다. 일주일 정도 지나면 필요한 소품이 어디에 있는가 알게 되어 업무능률이 오르게 됩니다. 처음에는 자와 칼이 필요한데 곧바로 찾아내지 못하여 불편을 겪지만 이내 전처럼 고정된 자리에 그 물건이 배치되는 단계에 이르면 능률이 배가됩니다.

 

한 번은 인사 발령을 받고 사무실을 이동하게 되어 짐을 싸면서 청소를 했습니다. 후임자에게 먼지가 쌓인 서랍을 넘기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어쩌다 청소가 불량한 전임자의 책상을 만나기도 합니다. 노후된 책상, 삐걱거리는 의자를 받아서 수개월을 불편하게 지내다가 새 의자를 받는 날에는 근무 의욕이 급격하게 오르기도 합니다. 책상보다 의자의 기능이 중요합니다. 하루 내내 앉아있는 의자가 편하면 업무능률이 향상되고 자존감도 높아집니다. 그래서인가 의자에 주인이 따로 없고 앉으면 사장이라는 1960년대 유행가가 인기를 끌었나 봅니다.

 

간부 공무원이 되면서 관사를 배정받았습니다. 아파트를 독채로 쓰니 송구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습니다. 이때에도 전임자가 버린 물건이나 빈병, 서류 등을 발견하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1년 2년 쓰던 방에 자신의 물건을 두고 가는 것은 후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인 서류가 나와도 이를 전달하기에도 애매모호하여 파기한 경우도 있습니다. 소주병, 와인병은 차라리 재활용에 보낼 수 있어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래서인가요. 관사에 입주할 때보다 나올 때 청소에 더욱 열중했습니다. 정리 정돈에 노력하고 기본 집기 이외에 개인적인 물품이나 서류가 남지 않도록 확인하고 점검했습니다. 입주 때보다 더 깔끔한 관사를 후임에게 넘기는 데는 아내의 노고가 컸습니다. 아내는 더 이상 쓰지 않을 관사 청소에 땀을 흘렸습니다. 후임자가 들어와서 불편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입니다. 아내는 관사를 관리해 준 주무관에게는 감사 편지를 보냈습니다.

 

정치인도 때가 되면 후임자에게 사무실과 방을 넘겨줄 것입니다. 미국의 대통령은 대통령실 서랍 안에 극비자료를 넣어두는 전통이 있다고 합니다. 후임 대통령이 백악관에 들어와서 행하는 첫 번째 업무는 전임 대통령이 서랍 가운데에 두고 간 비대면 인계 인수서를 읽는 일이라고 합니다. 이 자료집에는 경쟁국 대통령의 내밀한 비밀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오늘 당장 진행해야 할 국가적인 업무 내용도 있을 것입니다.

 

관사를 쓰는 직위라면, 미국 대통령이 후임에게 백악관을 넘겨주고 대한민국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새집무실 용산청사에서 청사를 물려주는 경우 후임자에게 정치와 행정에 필요한 소중한 문서를 남겨주어야 할 것입니다. 재임 기간 중에 어려운 문제를 풀어내는데 노력을 다해서 후임자에게 부담을 덜어주어야 합니다. 후임자가 ‘입주청소’를 부탁하지 않도록 전임자가 깔끔하게 국정, 행정, 업무를 인계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제 다시 한번 강조하면, 후임자에게 미결사항을 남긴 것은 송구한 일이지만 관사 정리만은 제대로 할 수 있게 도와준 아내의 내조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합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