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 앞에서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5월 한달동안 3번 왕릉을 방문했습니다. 종중행사로 건원릉을 비롯한 8분의 왕과 왕비를 모신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에서 조선왕릉의 진면목을 만났습니다.

 

우리 문중에서 영조께 제를 올리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바로 영조시대에 효령대군의 청권사가 건립되었습니다. 정조는 청권사에 현판을 내렸습니다. 청권사는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이 왕위를 세종대왕에게 양보한 것을 중국의 역사를 견주어 이름을 붙인 효령대군 사당입니다. 

 

 

화성시공무원동우회가 주관하는 융건릉 방문일정에 동참하여 장조와 정조의 스토리를 들었습니다. 해설사님마다 매번 추가해서 들려주는 스토리가 새롭습니다.  융릉의 주인은 사도세자입니다. 아버지 영조가 사후에 사도라는 시호를 지었다고 합니다. 역사적, 정치적, 시대적 상황과 또다른 사연과 이유로 젊은 나이에 죽음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사도세자는 고종 때 장조로 추존되었다가 1899년 의황제(懿皇帝)로 다시 추존되었습니다. 고종황제가 스스로 황제가 되면서 윗대 4대까지를 황제로 모실 수 있었다 합니다. 

 

경기도공무원동우회에서 2024년 첫번 일정으로 여주시를 선택했습니다. 신륵사와 영릉을 방문했습니다. 여주에 소재한 英陵(영릉)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을 모셨고 여주의 寧陵(영릉)에는 효종과 인선왕후를 동원상하릉으로 모셨습니다. 해설사의 말씀을 다 기억하지 못아여 인터넷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단릉, 합장릉, 동봉삼실릉, 쌍릉, 동원이강릉, 동원상하릉, 삼연릉이 있습니다. 박물관 해설사와 세종대왕의 영릉 해설사의 설명중 반복되는 스토리가 왕릉의 형태입니다.  그동안 다른 해설사로부터 듣지 못한 이야기를 보충했습니다. 사담으로 들은 바는 왕릉이든 원이든 묘이든 오늘까지 남아있는 모습은 당대의 릉, 원, 묘의 주인보다는 그 자손들의 역량에 따라 다라진다는 점입니다. 아들이 왕으로 재임하면서 힘을 키우면 어머니의 릉을 크게 모시는 것이고 아버지의 왕릉도 잘 관리하는 것입니다.

 

당다에는 큰 일을 이룩했다해도 자손이 약하면 왕릉 또한 그만큼 힘을 잃더라는 말입니다. 요즘에도 고속도로, 국도를 지날때 잘 가꾼 묘역을 보게되는데 이 또한 고속도로 공사로 조상님 선산이 보상을 받아 인근에 잘 모신 것이라는 상상을 하곤 합니다. 부모님의 재산을 물려받아 잘 사는 자손들이 더욱 부자되게하고 출세와 영달이 더 높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조상의 산소를 잘 꾸미고 관리할 것입니다.

 

왕릉을 돌아보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성계는 조선을 창업하면서 400년이 갈 것이라 예언했는데 세종대왕릉을 잘 꾸며서 500년 대업을 이어갔다는 말을 합니다. 이성계를 모신 건원릉의 억새는 함흥에서 가져온 것이랍니다. 함흥의 풀과 흙을 실어왔는데 풀은 말라죽고 강력한 억새가 살아남오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합니다. 억새를 실어왔을까요? 소견으로는 병사들이 함흥의 흙과 풀을 마차에 실어와 묘역을 꾸몄는데 이중에서 억새가 살아남은 것이라 봅니다.   

 

한달동안 왕릉 여러곳을 방문하는 행운의 기회를 얻은 것도 대단한 일이거니와 왕릉의 파트너인 명찰을 방문한 것도 대단히 복된 일이었습니다. 1고수 2명창이라면 1사찰 2왕릉이라는 말도 어느정도 소통하는 바가 있습니다. 온고이지신의 마음으로 행복한 순간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