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보종료

이강석 전 남양주시부시장

인터넷 뉴스를 보니 전보가 사라진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전보는 1885년에 서울과 인천사이에 전신시설이 최초로 개통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국제전보는 2018년에 종료되었고 이제 2023년말에는 국내전보가 마무리된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참으로 긴세월을 버틴 바이기는 하지만 전화기 보급이 활성화되고 개인전화, 핸드폰, 스마트폰이 초등생에게까지 보급되는 전화 전성기에도 잘 버텨온 바인데 드디어 선진국의 추세에 따라 우리도 폐지수순에 들어간 것입니다. 미국은 2007년에 전보가 중단되었고 독일은 2023년 1월에 전보를 중단하였다고 합니다.

 

전보는 우체국에서 보내면 받는이의 우체국에서 수신하여 타자를 치거나 글로 적어서 주소지로 자전거를 타고가서 전하는 첨단과 전통이 융합되는 통신수단입니다. 그래서 전보는 조부모가 별세하신 경우 도시에 사는 손자들에게 부음수단으로 많이 활용되었습니다. 한글자마다 전보요금을 계산하므로 단문으로 적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사이버공간에서 단문을 많이 쓰는 이유는 손가락 타자를 최소화하기위한 전략인 것에 비해 당시에는 요금을 아끼기위한 노력이었으니 단문의 의미에는 나름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보는 짧은 글로 요약해서 한자를 한글로 적어서 보냈습니다. 조부별세 급래바람. 부친위독 귀향할것. 4행시처럼 전보를 보냈습니다. 특히 군에 입대한 손자나 아들이 집에와서 할아버지, 아버지 상을 치뤄야 하는 경우에는 관보를 보냈습니다. 관보란 고향마을 읍면장이 확인하는 전보입니다. 우체국에서는 전보를 보내는 이의 이름은 넣어주지만 면장, 동장, 읍장이라는 글자는 원하는대로 전보문안에 넣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경우 면사무소에 가서 사망사실을 확인받고 전보문안에 면장의 직인을 받아서 우체국에 가져갔습니다. 이를 일러 당시에 '관보'라 했습니다. 관청에서 확인하는 전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면장의 명의로 보내온 '관보전보'를 받은 군부대장은 해당 병사에게 특별휴가를 주면서 '귀향명령'을 하였던 것입니다.

 

 

전보보다 빠른 것은 마을방송이었습니다. 1970년대에 동네 이장집에 개인전화가 설치되었습니다. 서울에 나간 동생이 고향의 형에게 전할 말이 있을때 우선 이장집으로 전화합니다. 이장님이 집에계신 경우에 전화를 받은 이장님은 마을방송스피커를 통해 전달합니다. "홍길동아! 서울 동생이 전화가 왔으니 이장집으로 오기 바란다." 형 홍길동이 이장집에서 기다리면 동생이 다시 전화하여 통화가 성사됩니다. 전보를 우체부가 집에 가져다 주는 시간이나 이장집을 통해 전화로 연결되는 시간이 비슷했을 것입니다. 오히려 이장집 전화로 좀더 구체적이고 상세한 이야기를 양방통행으로 소통하였으니 일방향 전달인 전보보다는 일보 이상 이보 진전한 문명이었습니다.

 

축전전보와 관련한 에피소드입니다. 2009년말경에 한국축구팀이 국제경기에서 우승하였고  김문수 도지사님의 축전을 보내겠다고 보고하였습니다. 그리고 문안을 정리해서 우체국으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브라질은 수요가 적어서 국제전보가 폐지되었다고 했습니다.  도지사님 앞에서 축전을 보내겠다고 호언장담한 과장이 참으로 초라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체육계 인맥을 동원한 결과 브라질에 축구감독으로 국위를 선양하시는 분의 전화번호와 메일을 학보하였고 메일로 보낸 김문수 도지사님의 축전이 우리나라 선수단 감독에게 전해졌던 바가 있습니다.

 

사실 전보보다는 시간이 걸리지만 느림의 미학으로 볼 수도 있는 '군사우편'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군부대에서 우표를 붙이지 않고 별도의 우편요금을 지불했는가는 알 수 없지만 옆집 아저씨가 군대가서 어머니에게 보낸 군사우편이 찍힌 편지를 여러번 보았습니다. 아들의 편지를 받으신 어머니는 시간이 나면 옆집 초등학교 4학년 학생에게 편지를 읽어달라 하십니다. 어린이는 낭낭한 목소리로 국어책 읽기처럼 편지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편지읽기가 마무리될 즈음에 어머니는 눈물 한번 손수건으로 흠쳐내시고는 다 읽은 편지를 돌려받아 손수건에 곱게 싸서 속주머니에 넣으시고는 홀연히 집으로 가셨습니다. 

 

태어나서 6살로 시작하여 기억이 축적되는 1965년 국민학교 1학년 시절에 만나는 첨단문명은 라디오 한대였습니다. 유효기관이 경과하면 검정국물이 흐르는 배터리에 연결된 라디오 안에서 남녀노소 성우와 아나운서가 문명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시골마을과 하늘을 지나가는 비행기가 우주의 전부였던 어린이에게는 세상에 눈 뜨게하는 문명이었습니다. 1993년경 공무원 1인1전화기, 1994년에는 공무원 1인1PC시대를 열었던 담당자, 주무관이었음을 자랑합니다. 

 

요즘에야 돌 지난 아이에게 스마트폰 영상을 보여주는 시대여서 스마트폰의 폐해를 지적하고 있습니다만 전보로 연락하고 동네 이장님댁 전화기 한대로 온동네가 소통을 하던 시대에 살았던 기억을 돌이켜 보면서, 오늘 문득 전보가 연말에 없어진다고 하니 잠시 어린시절의 시골마을을 여행하는 기분이 듭니다.

 

전보 안녕!!!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