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것들의 주소

이복현

가느다란 발가락으로

지구를 공처럼 굴리던 소똥구리는

어디론가 실종됐다

 

광막한 우주, 드높은 하늘 바탕에

힘차게 빗금을 그어 대던 별똥별같이

어두운 밤 골목을 떠돌며

깜박깜박 신호등처럼 불 밝혀 날던

반딧불이도 사라졌다

 

개구리 울음과 귀뚜라미 소리는

점점 가느다랗게 줄어들고

뻐꾸기 노래, 소쩍새 울음이 아득하다

 

산길 들길 좁은 길을 갈 때마다

앞장서서 인도하던 길라잡이는 도대체

어디로 납치된 걸까?

 

우리 곁으로 공룡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방사선 우라늄에 취한 흰 돌고래가 위험하다

 

포획되는 밍크고래가 몹시 위험하다

멸치 한 마리가 방사능에 위험해질 때

오늘 나와 당신의 식탁이 위험하다

 

찾아와야 하는데, 찾아야 하는데

불러도 도무지 대답 없는 것들을,

어디서 찾아야 하나?

그 많은, 사라진 것들의 주소를…‥

 


이복현 시인

전남 순천 출생. 1999년 대산창작기금(시 부문)을 받고, 같은 해 『문학과의식』 겨울호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 1994년 《중앙일보》 시조 장원, 1995년 《시조시학》을 썼고, 신인상으로 등단. 『사라진 것들의 주소』 등 4권의 시집과 시조집을 출간. 아산문학상(시), 시조시학상(본상) 등을 수상. 대산창작기금, 서울문화재단, 충남문화재단에서 지원금을 수혜. 한국시인협회, 한국작가회의 회원.


 

-시작메모-

 

이복현 시인이 4번째 시집인 『사라진 것들의 주소』를 출간했다. 복현이 형은 시를 쓰는 모임인 《빈터》에서 20여 년 전에 만났다. 《빈터》는 시를 합평하며 치열하게 쓰는 동인 성격의 모임이라 냉철한 분위기였는데 그 형은 항상 후배들을 보듬고 끌어주는 따뜻한 시인이었다. 그렇다면 마음이 따뜻한 시인의 시집을 어떨까. 역시 시의 흐름 전체가 생명을 중시하는 네이처리즘(Naturism)이다. 그렇다고 19세기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행하던 문예사조는 아니고 어떤 관념적이거나 반문명적 이미지도 아니다. 현실에 맞게 현대적 감각과 흐름에 따라 우리 주위에서 사라져가는 모든 존재에 의미를 두고 안타까워한다. 우리는 그동안 산업화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힘에 밀려 많은 것을 잊고 살았다. 아니다, 어쩌면 빼앗겼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시집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시, 「사라진 것들의 주소」를 읽다 보면 소똥구리, 반딧불이, 개구리 울음과 귀뚜라미 소리, 뻐꾸기 노래, 소쩍새 울음 등 칠·팔십년 대 까지 정겹게 우리 주위를 맴 돌았던 생명체들과 마주한다.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우리 곁으로 공룡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방사선 우라늄에 취한 흰 돌고래가 위험하다//포획되는 밍크고래가 몹시 위험하다/멸치 한 마리가 방사능에 위험해질 때/오늘 나와 당신의 식탁이 위험하다”며 절규하듯 개발을 위한 자연 파괴자들에게 경고성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는 사라진 것들에 대하여 “찾아와야 하는데, 찾아야 하는데” 하며 다시 한 번 호소 한다. 이 시를 읽는 동안 “살려 달라”는 아우성이 내 귀에 환청처럼 들리는 것은 어떠한 현상일까.

정겸(시인/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