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신 백미항

넓은 갯벌에 서니

온몸에 짠 기를 풀어놓은 듯

오롯한 그 맛이 짭조름하니 알싸하다

미지근한 순항은 밍밍하지만

호된 사지를 넘어온 짜릿한 안착은

단번에 빨려든다

수산물 작업장 창고 마당

꽃 달린 해님이 달그락거리는 오후

널브러진 그물은

한낮 햇살에 달큰하게 늘어지고

비닐하우스 한 채

굴뚝 연기로 몸 비틀어 유혹하는데

얼마만의 호기인가

소복하게 쌓인 굴 더미

성곽처럼 둘러앉은 동네 아낙들

찌그러진 양동이로 토닥토닥 모이는데

새댁 얼굴에 복사꽃 핀 걸 보니 졸겠구먼

그게 아니랑게유

칼칼한 양념 웃음

난로 위 주전자 구수하게 수증기 오르면

항구의 겨울이 입담으로 밀려간다

윤민희 시인

충남 보령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대학원 문예창작콘텐츠학과(문학석사) 졸업,

시집 『그리움을 위하여 가슴 한 켠을 비워두기로 했습니다』, 『엇박자』, 『책들이 나를 보고 있다』, 수상/경력 - 동서문학상, 오산문학상, 풀잎문학상, 대한민국 독도문예대전입상, 전국여성문학대전 동시부문 최우수상 수상, 경기도 문화예술진흥유공 표창, 오산문인협회 제11대 회장 역임, 초등학교 교사.

- 시작메모 -

윤민희 시인의 시집 『책들이 나를 보고 있다』는 삶이라는 긴 여정 속에서 느끼는 감성과 스케치한 풍경들의 묘사가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살갑게 한다. 특히 「백미항」은 우리 사회에서 재능은 있지만 여러 환경 여건상 세상에 알릴 기회가 없는 사람에게 지상파 방송에서 끼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준 느낌이다. 사실 화성시 서신면에 있는 백미항은 같은 면에 소재한 궁평항의 ‘궁평낙조(宮坪落照)’라는 화려한 명성에 밀려 그동안 뭇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궁평항에 대하여는 여러 시인들이 많은 시를 써서 발표 했지만 백미항은 인근 궁평리에 고향을 둔 나로서는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 시집에서 「백미항」이라는 시를 본 순간 왜 이렇게 반가운지 말로 형언 할 수 가 없다. 시인은 이 시의 소재가 된 백미항을 너무도 자세하게 관찰했다. ‘넓은 갯벌’, ‘짠 기를 풀어놓은’,‘수산물 작업장 창고 마당’ 등은 그야말로 백미항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시인의 관찰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비닐하우스로 이동한다. 비닐하우스는 겨울철 굴을 까기 위한 아낙네들의 바람막이 거처이다. 썰물 때 바다에서 세칭 굴봉을 주워다 쌓아 놓고 빙 둘러 앉아 굴 까는 작업을 한다. 이 과정에서 아낙네들은 과거 동네 우물가처럼 본인의 푸념도 늘어놓고 남정네 욕도 해가며, 심지어는 성인들만의 야담으로 한바탕 웃는다. 아낙네들은 그렇게 하며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날리는 것이다. 백미항에서 일어난 풍경을 사유와 서정적으로 풀어 낸 시에서 독자들은 어떤 노스탤지어를 느낄 것이다.

정겸​(시인/한국경기시인협회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