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서 배우는 인생

이강석 전 남양주시부시장

 

 

며칠전에 중년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두집 부부가 점심을 먹었습니다. 와이프는 주방에서 생태와 코다리찜 2인분, 4인분을 찌그러져 쑤세미가 닿는 부분만 반짝이고 그 안쪽은 검정색이 남아있는 냄비에 담아 애벌을 끌여서 남편에게 인계하고 남편은 즉시 악어 입 옆으로 돌린 듯 보이는 집게로 번쩍 들어서 손님상에 배달해 줍니다.

 

12시가 지나 들어간 식당에는 손님이 한가득이고 이미 식사를 마친 테이블을 정리하지 못한채 남자 사장 혼자서 홀 서빙하고 계산대에서 카드를 받고 친절하게 카드와 영수증을 건네는 모습을 보면서 장사는 이렇게 해야 잘 되는 것이라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요즘 코로나19로 손님의 등락이 크다보니 종업원을 한 분 더 두지 못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동시수용 20명 정도의 식당에서 종업원을 채용하면 한달 인건비와 함께 발생하는 잘잘한 비용을 감당하기보다는 스스로 발품을 더 팔아서 이른바 薄利多賣(박리다매)전략으로 가시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이 식당이 손님을 끄는 힘은 아내의 손맛인가 생각합니다. 국물과 반찬이 입에 맞습니다. 살짝 건조후 볶아낸 듯 여겨지는 어묵조림의 식감이 기분을 좋게 합니다. 손님이 많아서 음식을 주문하고도 20분을 기다렸습니다. 우리는 기본 반찬이 도착하자마자 냉큼 집어 먹었고, 방금 도착한 옆테이블 부부 역시 우리 부부처럼 콩나물과 어묵, 나물을 연신 맛보면서 메인메뉴인 생태탕을 기다립니다.

 

이윽고 가스불에 올려진 생태탕이 충분히 끓기 전에 파랗게 올려진 채소부터 건져 올려 앞접시에 담아 먹었습니다. 특유의 거품을 일으키며 끓어오르는 생태탕의 국물을 맛보고 魚頭肉尾(어두육미) 머리부분의 잘잘한 고기첨을 먹으면서 식사의 행복을 느껴봅니다.

 

최근 식사량을 줄여서 체중 관리를 하느라 신경을 써 왔지만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는 어느 방송광고의 카피를 인용하여 공기밥 하나를 더 주문하여 두 남자가 반씩 먹으면서 남은 생태탕 냄비를 기울여가며 챙겨먹습니다. 남자 사장님 혼자 홀 서빙을 담당하므로 우리 스스로 마스크를 쓰고 주방앞에 가서 '셀프반찬'을 넉넉하게 추가하여 모두 다 먹었습니다.

 

잠시후에 2부부 4인이 고구마밭 2두렁을 정리하고 맨손 삽질로 고구마를 수확할 예정이고하니 평소 땅 일이나 운동이 부족하였던 바이므로 이참에 식사를 조금 더 늘리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고 사전 준비작업이라 스스로에게 변호하는 바였습니다.

 

공기밥 하나를 더 먹는 동안에 조금 늦게 할머니를 모시고 식당에 도착한 딸과 사위로 추정되는 3인상에서는 코다리를 주문했는데 국물이 나왔다며 당황해하자, 남자 사장님은 ‘코다리를 주문하시면 국물이 나갑니다’라고 안심을 시킨 후에 ‘국물은 서비스입니다’라는 멘트로 친절함과 여유스러움에 쇄기를 박습니다. 장사가 잘 되어서 남자 사장님의 마음속에 여유가 스며든 것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식당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면서 손님이 공기밥에 빠진 파리를 ‘검정콩 껍질’이라고 아름답게 주장(!)하고 이를 날름 먹어버린 아름답고 숭고한 식당 종업원 사건을 떠올렸습니다. 이 직원은 손님의 격려와 사장님의 응원으로 훗잘에 큰 식당을 꾸렸을 것으로 상상해 봅니다. 동시에 전날 방문한 큰 식당의 젊은 종업원 불친절 사례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안타까움을 겪었습니다. 마치 떳다방처럼 생겨먹은 식당인데 주인도, 종업원도 '친절'이라는 단어를 배우지 못한 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십여년도 넘는 과거에 어느 식당에서 목도한 또 다른 사건이 기억났습니다. 그날도 오늘처럼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을 받아 식사중이었는데, 잠시후에 노인 두 분이 오셔서 음식을 주문하시고 연이어 도착한 젊은 남녀가 주문한 음식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나중에 온 남녀의 음식이 먼저 서빙되자 노인중 한 분이 크게 화를 내십니다. 우리가 먼저 주문했는데 옆테이블 음식이 먼저 나오고 왜 우리는 주지 않는가가 화나시는 이유입니다. 주인은 죄송하다 답할 뿐 설명도 변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노인 두 분의 음식이 서빙되었는데 그릇도 많이 동원되고 반찬도 다양합니다. 비전문가가 보기에도 시간과 공이 많이 들어가는 메뉴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젊은 남녀의 식탁으로 눈길이 갔습니다. 아주 간단한 탕류입니다. 탁배기에 밥 넣고 국자로 두세번 토렴(밥이나 국수 따위에 따뜻한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며 데움)하여 내놓은 국밥이었습니다.

 

늦게 주문한 젊은이들의 식탁을, 노인들이 먼저 주문하신 반찬이 많은 식탁이 차려진 후에야 서빙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식당에서조차 선입선출을 주장하는 것은 합법인가는 몰라도 합리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평생 드시는 식사인데 옆사람보다 늦게 나온 것이, 나중에 주문한 식사가 몇분 먼저나온 일이 버럭 화를 내실 정도의 사건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서 식당은 밥 먹고 술 마시며 대화하고 사업 이야기를 하는 곳이라 생각해 왔습니다만, 더러는 타산지석으로 인생을 배우고 밥도 먹는 평생의 교실인가 생각합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