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팔달산→광교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경기도공무원 대부분이 근무하는 사무실, 즉 경기도청 청사는 서울 광화문에서 시작됩니다. 도청의 전신인 京畿監營(경기감영)은 서울 한성부 내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청 청사가 서울시에 있는 것은 경기도민의 자존심이 허락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1953년 4월 15일 경기도 인천시에서 먼저 ‘경기도청 유치위원회’가 발족되자 1주일 뒤 수원시에서도 ‘경기도청 수원 존치위원회’가 구성되었습니다. 存置(존치)란 표현을 쓰는 이유는, 조선시대에 수원에 경기도 감영이 있었고 6.25전쟁 당시에도 임시도청이 설치된 적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1962년에 수원의 지역 유지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게 도청을 수원으로 이전하자는 건의서를 제출하였는데, 1963년에 박창원 경기도지사는 청사를 시흥군 안양읍에 이전하자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이병희 수원유치위원장(제6,7,8,9,10,13,15대 국회의원)이 도의 발전과 미래를 생각하며 삭발까지 감행해 박정희 의장에게 찾아가 무릎을 꿇고 도청 이전을 요청하였던 바 1963년에 법률 제1538호가 제정되어 수원으로 결정되고 팔달산에 청사를 준공하여 1967년에 '서울도청'이 수원시에 移轉(이전)했습니다.

 

참고로 공사비 15억원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전 당시 경기도민은 289만명으로 현재는 1천353만명이니 4.7배가 늘었습니다. 공무원수도 늘었고 경기북부지역 발전을 위해 의정부에 북부청사를 두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이제는 경기도를 남북도로 나누자는데 동의하여 경기도 분도를 위한 별도기구를 운영중에 있습니다.

 

경기청사 이전에서 고배를 마신 인천시는 오히려 1981년 직할시로 승격하는 추진력을 얻었다는 것이 당대 행정가들의 평가입니다. 그리고 도청을 인천광역시로 이전하였다면 교통상황이 불편하여 도민과 공무원의 고생이 심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14년만에 또 다시 청사를 지어 이사를 하는 말 그대로 ‘탁상행정’의 상황이 발생할 뻔했습니다.

 

◇ 100년을 경기도와 함께한 측백나무

 

1910년경 서울 광화문 앞 의정부(議政府) 터에 경기도청사가 건립되면서 심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 중 측백나무 한 그루에 대한 스토리를 시작하겠습니다. 이 측백나무는 높이 13m에 가지 양끝 길이가 13∼15m로 성장했습니다. 이 나무는 1967년 경기도청의 수원 이전 때까지 57년간 광화문 청사와 함께 했습니다. 지난날의 광화문 도청 사진 중에 '이 나무가 그 나무'라 할만한 나무가 찍혀있습니다.

 

그리고 도청 수원으로 이전한 후에 홀로 남겨졌습니다. 그 후 대략 50년간 서울의 청사철거, 주변 개발 등 격동의 삭풍 속에 용하게도 견뎌내던 중 서울시가 ‘의정부’터 발굴조사계획을 추진하면서 베거나 이식해야 하는 위기를 맞게 됩니다.

 

그리하여 2017년 8월에 경기도 남경필 지사와 서울 박원순 시장이 논의하여 경기도에 기증됩니다. 나무가 제 주인을 찾게 된 것입니다. 경기도는 즉시 이 측백나무를 광교역사박물관 부지(영동고속도로 동수원IC) 인근에 移植(이식)하고 광교청사 준공되면 옮겨심기로 했습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 취임에 맞춰 민원서 형식으로 건의한 바 있습니다만 아직 구체적인 이전계획은 나오지 않은 듯 보입니다.

 

 

◇ 56년을 함께한 경기도청 동판

 

김문수 경기도지사(32~33대, 2006. 7~2014. 6)는 2006년 도지사에 취임하면서 도청 주변의 철조망을 걷어내라고 지시했습니다. 도민과의 거리를 가깝게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2009년에는 정문과 후문의 철제대문도 철거했습니다.

 

경기도청의 철문을 철거한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경기도의회 공보과장으로서 도청 청사를 관리하는 회계과에 의견을 냈습니다. 경기도청·경기도의회 동판을 살려내자는 제안을 한 것입니다. 동판이 박힌 시멘트 구조물을 통으로 뽑아 화단에 옮겼다가 광교청사 준공시에 이전하자고 건의했습니다. 담당자도 사무관도 주무관도 모르겠다고 답합니다. 예산이 없다고 핑게를 댑니다.

 

다시 문화재과에 의견을 냈습니다. 아직 50년이 지나지 않아서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주민등록증이나 자격증을 들고 태어나는 이는 없습니다. 1967년에 경기도청이 팔달산에 입주하였으니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경기도청’은 2008년도에 이미 41년을 맞았습니다. 9년이 지나면 50년을 충족합니다. 2023년 올해로 56년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 논의가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2008년 어느 날, 실제로 정문을 철거하는 토요일에 일부러 양복을 차려입고 현장으로 나가 책임자를 만났습니다.

 

“저는 도청 과장입니다. 이 동판은 소중한 역사물이니 흠결없이 떼어내서 넘겨주십시오.”

 

경기도청 현판은 총무과로 보내고 김영삼 대통령이 1992년말에 경기도의회 이달승 의원의 청을 받아 써준 ‘경기도의회’ 현판은 의회 총무담당관실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2018년말 공직 42년을 마감하면서 도청 출입 경력이 있는 K사 기자와 점심을 먹으면서 공직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경기도와 도의회 현판을 지켜낸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함께한 젊은 기자가 즉시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어렵게 구해낸 동판이 공무원의 관리소홀로 사라졌다는 기사가 예상되었습니다. 하지만 점심을 함께 한 그 날 오후 5시가 지나지 않아서 문자와 사진을 받았습니다. 경기도인재개발원에 자리한 경기도행정박물관에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는 희소식이었습니다.

 

경기도청과 의회의 도의원과 공무원이 2022년 초 광교청사로 이사를 했습니다. 이제 앞에서 설명한 측백나무는 100년 넘게 이어온 경기도청의 상징이므로 광교청사 중심부에 이식되기를 바랍니다. 경기도청과 경기도의회 현판(동판)은 현재의 팔달산 청사의 적정한 곳으로 배치했으면 합니다. 도민들이 많이 오시는 오솔길 자락에 세웠으면 합니다. 다른 의견으로는 광교청사 로비에 설치하는 안도 제시합니다.

 

◇역사발전과 1,000년 계승을 위한 노력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경기도청이『이건희 미술관』입니다’라는 청원을 올려 159명의 서명을 받았던 바가 있습니다. 도청 구청사는 리모델링 공사 6개월후에 미술관 개관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받아들였다면 지금쯤 팔달산 경기도청은 세계 수준의 미술관이 되었을 것입니다. 수원시 소재 華城(화성)과 함께 역사와 문화의 현장으로 더 크게 빛나고 있을 것입니다.

 

공직 42년이 훅하고 지나간 것처럼 경기도의 역사는 쉼 없이 이어집니다. 도민은 물론 후배 공무원들이 역사를 가꾸고 이어가는 작은 날갯짓을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광교청사로 이사 간 경기도청에서 현명한 공직자에 의해 더 크게 경기도 역사를 줄기차게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道政(도정)도 필요하지만 가끔은 역사적인 의미를 되짚어보고 선배 공무원과 도민들이 이룩한 행정성과도 돌아보면서 풍성하게 가꿔주시기를 후배 공무원들에게 청합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