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헌 배롱나무

이복순

오죽헌 뜰 앞

육백 년을 머문 배롱나무

어미는 몸 낮추어 흙으로 돌아갔다는데

생명 줄 하나 싹을 틔워

어미의 세월을 살고 있다

 

어머니의 어머니를 찾아서 떠나면

수미산을 몇 바퀴 돌아야

본래의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까

 

오죽헌 밤하늘에 뜬 별 들 만큼이나 많았을

내 어머니의 시간을 살고 있는 나

허상 하나 만들어 놓고 돌고 도는구나

 

배롱나무 밑동에 뻗은 실가지

너인 듯 나인 듯

어미에 어미로

육백 년을 살겠구나.

 

 

 

 

 


이복순 시인

1957년 경기도 김포 출생, 2015년 [수원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경기여류문학 회원, 수원시 버스정류장 인문학 글판 수상

KBS 성우협회 수원시 주관 시와 음악이 있는 밤 공모 수상

길 위의 인문학상 수상, 수원문학인상 수상, 서울 지하철 시민 창작시 선정, 수원문인협회 19대 부회장, 현 수원문인협회 이사, 시집 『서쪽으로 뜨는 해도 아름답다』


 

-시작메모-

 

때는 바야흐로 배롱나무의 계절이다. 일명 간지럼나무, 목백일홍이라 부른다.

붉디붉은 꽃이 피고 지며 백일까지 간다하여 백일홍이라 불렀다. 쌀이 귀했던 어린 시절 어르신들은 배롱나무 꽃이 져야 햅쌀밥을 먹는다하여 꽃이 빨리 지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던 추억의 꽃이기도 하다. 시인은 오죽헌 앞 오래 된 배롱나무를 보며 어머니를 생각한다.

 

강릉 오죽헌은 조선시대 신사임당의 친정집이며 성리학의 대가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시인은 시, 서, 화 학문에도 능했으며 현모양처의 상징성을 가진 신사임당의 친정집에서 어머니를 이미지화 했다.

 

그러면서 어미는 몸 낮추어 흙으로 돌아갔고 생명 줄 하나 싹을 틔워 어미의 세월을 살고 있다며 불가에서 회자되는 윤회의 길을 이야기한다. 특히 불교의 '삼천대천세계' 중 하나인 수미산을 거론하며 몇 바퀴를 돌아야 본래의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까 하며 허상의 시간을 만들어 어머니의 가없는 사랑과 희생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다. 시인은 이 시를 통하여 어머니에 대한 심오한 뜻과 철학적 의미를 서사시의 형식으로 풀어 낸 것이다.

(시인/한국경기시인협회이사 정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