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의 혈전증

강순

오늘은 봄의 노래를 쓰려고 준비한 연필로

하얀 낙서만 잔뜩 합니다

 

자유를 외치는 군중에게 총을 쏘는 무자비처럼

쿠데타 같은 악문만 써 대다

 

암술머리에 꽃밥을 갖다 대어도

불안과 이상 반응

 

밑씨가 없어 씨로 발달하는 과정이 생략된

불량한 꽃에게 어울리는 병명은 뭔가요

 

성대를 꼿꼿하게 세우지도 못하고

엄마나 산파도 없이 혼자 태어나는 아가처럼 웁니다

 

통증은 악습이 쌓인 예로부터 온 건가요

 

나무가 없는 숲을 게워 버리는 저 새는

내 이름도 말해 주지 않네요

 

새도 자기를 모르는 중병에 걸리나요

 

가지는 종양 같은 기억을 헤집으며

쌓인 울음으로 혈전을 만들다 눈이 부시고

 

이 꽃밥 꽃부리는 옛 기억이 하얗게 내리는

유행 지난 장신구 같아요

 

겨울 속에 박힌 등장인물들을

차례차례 연필로 콕콕 찔러 죽입니다

 

봄바람에 기대어 이제 단잠을 좀 자고 싶어요

 

 

 


강순 시인

본명 강수원.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 졸업. 199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이십 대에는 각시붕어가 산다』, 『즐거운 오렌지가 되는 법』, 『크로노그래프』가 있음. 경기문화재단 우수작가 창작지원금 수혜. 전국계간문예지 우수작품상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창작지원금 수혜. 현 수원대학교 객원교수.


 

-시작메모-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는 시장경제의 흐름은 물론 사회의 인식구조를 확 뒤집어 놓았다. 약 3년간의 전쟁에서 승자는 결국 코로나임을 인정하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구나 시인은 코로나와 연계된 혈전증을 모티브로 시로 이끌어 낸 창작 기법에 대하여 궁금증을 유발 했다.

봄의 노래로 시작하는 첫 행은 혹독했던 추운겨울을 잘 이겨낸 선물인 듯 많은 기대를 갖고 있지만 삶은 결국 뻔한 일상을 맞이하는 진부함을 느낀다. 시의 흐름은 전반적으로 아픈 화법이지만 고독과 쓸쓸함 속에서도 상처를 미적 감각으로 승화 시켰으며, 담백한 시어는 오히려 독자로 하여금 각자만이 상상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한다. 아울러 “가지는 종양 같은 기억을 헤집으며/쌓인 울음으로 혈전을 만들다 눈이 부시고...”는 희망의 싹을 엿보게 한다. 봄볕 눈부신 날 목련은 혈전증으로 인한 수관이 막히자 응고된 혈전은 가지를 통해 피를 토해내듯 꽃을 피웠다. 이제 그 꽃 속에서 고양이 잠을 자도 좋을 듯하다.

(시인/한국경기시인협회이사 정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