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야기는 수원 화성의 4대문입니다. 동서남북에 문이 있습니다. 남문은 팔달문, 북문은 장안문, 서문은 화서문, 동문은 창룡문입니다.
그리고 화성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화홍문이 수원천 중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용지와 방화수류정이 어울림을 선사합니다.
초중시절에 아이들끼리 떠드는 이기속에는 북문은 부서지고 남문은 남아있고 서문은 서있고 동문은 도망갔다했습니다. 그리하여 남문으로 알고있는 팔달문에 당도하여 문패를 보니 팔달문이라 적혀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문으로 아는 문의 세글자를 ‘나암문’이라 읽었다 했습니다.
그러하다면 장안문은 ‘부욱문’으로 읽어야 했을까요. 이 장안문에 6.25당시 소련제 인민군의 탱크 2대를 숨겼다는 정보, 첩보를 입수한 미군이 폭격기를 보내서 탱크를 부수는 과정에 장안문도 반쪽이 파손되었다고 합니다. 1951년 1월 25일의 사진입니다.

이후 1968년경 처음으로 영화동에 와서 보니 석조부분만 남아있고 목조는 사라졌으며 그 위 황토밭에 망촛대가 무성했습니다. 흔히 쑥대밭이라 합니다. 쑥과 대나무는 황무지에서도 잘 자라나 봅니다.
그리고 1972년에 정부에서 화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하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현충사의 충무공 이순신 사당을 크게 꾸미는 작업을 할 즈음에 화성도 보수의 기회를 얻었다 들었습니다.
경기도부지사와 도지사 권한대행을 하신 임수복 도지사직무대리께서 수원화성 복원계획의 입안, 실무자였다는 사실은 수년전 발간된 이병희 의원의 기록물에 나와있습니다.
세 번째는 자안리 마이크입니다. 1970년대 자안1리와 2리를 통털어 전화기 한대가 배정되어서 자안2리 이종근 이장님이 배정을 받습니다.
이 전화기 한대로 아래, 윗마을 70호가 외부와 소통을 시작했습니다. 전화기는 자석식이어서 레버를 돌리면 교환이 나오고 외부의 전화번호를 신청하면 걸어서 연결해주는 방식입니다.
통화비밀이 보장되기 어려운 시스템이지만 당시로서는 외지에 나가있는 가족과 양방향으로 통화가 가능하다는 소통만으로도 큰 의미를 두던 시기입니다.
외부에 나간 자녀가 부모에서 전할 말이 있으면 동네 이장짐의 전화를 통해 이장님께 부모님을 불러달라 부탁을 합니다. 이장님은 동네 방송을 통해서 아들딸의 전화 온 사실을 알리고 부모님이 이장집에 당도하여 아들딸에게 전화를 신청하여 통화를 하면 됩니다.
어느 날에 이장님이 교체되었습니다. 일정기간을 일하고 후임 이장님에게 업무를 인계하게 되었고 동네 사람들은 당연히 전화기도 인계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우체국에서 설치한 전화기는 당시 동네 대표인 이장님께 개인자격으로 설치한 것이니 개인소유의 전화기입니다. 이장님의 업무상 전화기가 필수가 된 상황에서 추가선로를 가설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대안의 마련이 필요했습니다.
심층 논의끝에 신 이장님댁에 방송시설을 추가하기로 했습니다. 전임 이장님은 걸려오는 전화는 모두 다 받아주겠다고 약속을 하신 바입니다. 그리하여 재미있는 상황극이 시작되었습니다.
우선 면사무소에서 걸려오는 전화는 구이장님이 받아서 신이장님께 마을방송을 통해서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외지에서 걸려오는 주민을 위한 전화는 먼저 이장님이 받아서 예전처럼 연결해 주십니다.
어느 날 구 이장님이 면사무소 전화를 받고 신 이장님께 전합니다. 면사무소에서 내일 오전에 긴급 이장단 회의가 있음을 알리기 위해 마을방송을 쓰게되자 온마을 주민들이 이장님의 면사무소 일정을 파악하게 됩니다. 두분 이장님의 대화를 통해 정보를 파악하는 긍정적인 요인이 생겼습니다.
내일 이장님이 면사무소를 가시니 주민등록 등 필요한 서류를 신청하게 됩니다. 그렇게 시골마을 전화기는 온동네를 소통하는 필수불가결의 문화시설이 되었고 가가호호 전화기가 설치되는 수년동안 그 소통의 역할을 다했던 것입니다.
전화기와 유사한 소통의 수단으로 관보가 있습니다. 관보란 조부모 별세 등 군대간 손자를 귀가하도록 조처하기 위한 전보입니다.
전보용지에 손자를 부르는 내용을 적고 면장이 직인을 날인하여 우체국에 타전을 의뢰합니다. 면사무소 공무원은 부고장이나 동네 이장님의 확인을 받은 후에 관보용지에 직인을 찍어주었습니다.
우체국 직원들은 면장님 직인이 없는 전보용지의 "비봉면장"이라는 네글자를 절대로 타전하지 않았습니다. 군부대에서도 면장님의 발신명의가 있는 관보는 진실인 것으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