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딧세이’가 열풍입니다. IMAX는 예매조차 하늘의 별따기라 아직 안봤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입니다. 영화의 인기는 2000년대 어린이·청소년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절판본을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품귀현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기의 영향으로 영화 속 명대사들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오디세우스는 세이렌과 마주치게 됩니다. 세이렌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은 새이며 반은 사람인 마녀입니다.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뱃사람을 유혹해 배를 난파시켰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노래를 들으면 죽는 설정이라, 오디세우스가 선원들에게는 귀에 밀랍으로 막고 노를 젓게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돛에 자신을 묶고 세이렌의 노래를 듣습니다. 영화에서 노래를 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장면에 오디세우스는 “가장 갈망하는 것은 가질 수 없는 것이고, 가장 가질 수 없는 것은 이미 가졌다가 잃어버린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대사를 영화를 떠나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자주 망각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가장 갈망하는 것은 가질 수 없다는 것은 인간의 ‘욕심’ 때문일 겁니다. 현재에 만족하고 충실하면 그 안에서 편안함과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행복과 편안함을 두고 더 행복한 더 편안한 무언가를 찾기 위해 현재의 것을 내려놓습니다. 그것이 “가장 가질 수 없는 것은 이미 가졌다가 잃어 버린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고 처음의 목표가 가장 좋은 것은 아닐겁니다. 다만, 자신의 노력과 능력으로 무언가를 헤쳐나갈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노력으로 성취를 해냈다면 그 과정과 결과에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생각하지 않고 남과 똑같이 되려는 욕심만 갖는다면 과연 우리는 남과 똑같아질 수 있을까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제도 하는데 내가 못하겠어?”라는 생각입니다. 태어날 때 사람의 능력치가 ‘0(제로)’라고 가정해 보면, 똑같은 나이가 됐을 때 모든 사람의 능력치가 같아질까요? 그건 아닐겁니다.
흔히 천재라고 타고난 능력도 있겠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노력한 만큼 그 부분의 능력치가 올라가지 노력하지도 않은 부분의 능력치는 올라가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국가대표 축구 경기를 보면서 선수들을 응원하지만, 가끔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때면 훈수(?)를 두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훈수를 두는 사람이 경기장에 있더라면 자신이 훈수를 둔 것처럼 할 수 있을까요? 그건 아닐겁니다. 답답하니까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은 말이라고는 하지만, 주변에서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수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같은 시간에 테어나 똑같은 시간을 보냈더라도 모든 사람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1초 차이로 태어난 쌍둥이도 모습은 같더라도 똑같지는 않습니다.
주어진 모든 것에 만족할 수 없겠지만, 오디세우스의 말처럼 가질 수 없는 것을 탐하지 말고, 현재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놓지지 않고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당신의 미소가 보고 싶은 '거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