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16일은 공무원 초임 9급 서기보시보 발령을 받은 지 꼭 40년이 되는 날입니다. 초임 발령일이 1977년 5월16일이고 '58년개띠'이니 弱冠(약관) 1년전인 19세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참 보람된 날이어서 초임 발령장 사진과 함께 소감문을 페이스북에 올리니 동기 한 분이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습니다.
40년 전 19살 까까머리에 면바지, T-셔츠를 입고 발령받으러 가서 복장불량으로 화성군청 최관조 행정계장님의 면박을 받고 웃옷을 빌려 입고 군수님 발령장을 받아 시작한 公職(공직)의 시작은 硬直(경직)스러운 출발이었습니다.

그리고 40년 동안 발령장 43장을 받으면서 임용장을 받는 상황실에서 긴장을 푼 일이 한 번도 없습니다. 발령대상자 인원에 관계없이 줄을 세우고 늦게 오면 야단맞고 일찍 온 공무원 모두에게도 숨이 멈출 것 같은 긴장감을 조성하는 ‘인사계 군기’는 어느 기관에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개인별로는 10초 안에 끝나는 발령장 받기 의전을 위해 30분, 50분을 긴장한 채 대기하였으므로 결재판처럼 뻣뻣한 발령장을 들고 회의실을 나서면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습니다.
1990년경까지는 오전에 발령받고 오후까지 이 과(課) 저 부서(部署)를 돌면서 인사를 했습니다. 선배 공무원들은 인사발령자가 부서에 인사 오는 것이 당연한 듯 여기시면서 늘 반갑게 발령장을 두 손으로 받고 한번 쓰다듬은 다음 다시 돌려주시는 일종의 종교의식을 행하셨습니다.
조선시대로 치면 이른바 나라님(임금님)의 명을 받은 관직을 적은 교지와도 같은 임용장이니 임용장을 쓰다듬어서 瑞氣(서기, 상서로운 기운)를 받아들여 자신도 다음번 승진을 기약한다는 의미라고 들었습니다.
인사발령 다음날 복도에는 이삿짐을 싼 보자기를 든 선후배들이 새로운 부서까지 동행하는 이른바 ‘후행’이라는 참 좋은 전통도 있었는데 요즘에는 조금 줄어든 듯 보입니다만 좀 더 발전시켰으면 하는 참으로 인간적인 의식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공직을 마치면서 발령장 의식을 좀 더 부드럽게 하였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후배 9급 신규공무원 인사발령장을 주는 행사를 주무과에 가서 과장, 팀장, 주무관 등 공직 선배들이 보는 앞에서 줄 세우지 않고 순서 없이 전한 바 있습니다. 임용장 2매를 숨겼다가 후반부에 추가로 정하는 일종의 이벤트를 펼친 바도 있습니다.
경기테크노파크 근무 때에는 승진과 전보인사 발령 의식을 기존의 틀에서 조금 일탈한 재미를 더한 세레모니로 진행하였습니다. 아침 9시40분에 1층 현관 로비에 발령대상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습니다.
5본부의 5명 본부장이 함께하고 첫 번째 본부장이 쌓여 있는 발령장 중 중간의 어느 하나를 뽑아 대상자를 호명합니다.
‘김승진씨는 대리로 근무하다가 이번에 과장으로 승진하여 총무팀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발령장을 읽지 않고 인사발령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입니다. 승진을 계기로 결혼을 해서 국가시책에 부응해야 한다는 덕담도 이어집니다. 일동이 박수로 축하합니다.
기다리는 이들은 총무팀이 제공한 과일주스, 커피를 마시고 있습니다. 발령장을 전하는 본부장, 원장도 한잔 마시는 중입니다. 발령장 전달이 끝나고 전체가 한자리에 모여서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뒤편에 매달아 둔 플래카드가 살며시 바람결을 타고 움직입니다. ‘榮轉(영전) 榮進(영진)을 축하드립니다’ 이 플래카드는 다음번 인사발령 세레모니에 또다시 재활용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모든 공무원 여러분의 昇進(승진)과 영전영진을 기원합니다.
<기고문> 차 마시며 주고받는 발령장
우선은 인사발령장을 전달하는 행사를 "사령교부"라고 하는 용어부터 개선을 건의합니다. 공직내내 그렇게 발령장을 받았으면서 이제서야 개선을 건의하는 점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조금 더 멋지고 의미있는, 발령장을 주는 자의 입장이 아니라 받는 공직자의 시선에서 개선해 달라는 의견을 말하고자 합니다.
1977년이면 공직에서도 권위주의가 하늘에 닿아있을 시기입니다. 화성군청 군수님을 만나서 5급을류공무원 사령교부, 오늘날 9급 공무원 발령장을 받으러 갔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후 재수생으로 학원을 다니는 중에 발령이 났다는 연락을 받고 흰색 T-셔츠에 끈 없는 운동화를 신고 오산읍에 소재한 화성군청 내무과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내무과장, 행정계장은 모든 ‘공무원의 헌병’이어서 이른바 ‘산천초목’이 벌벌 떨었던 시절인데,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발령장 받을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겁 없이 호랑이 굴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예상밖의 불량하고 미흡한 발령 대상자를 본 당시의 목이 짧은 행정계장님은 ‘복장불량’을 호되게 지적했습니다. 당신은 뭐요? 발령장 주신다고 해서 받으러 왔습니다. 그런데 그 복장이 뭐요? 발령자 준수사항을 읽지 않았소?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1977년5월16일 오전 10시 화성군청 내무과의 싸한 분위기입니다.
그 당시에 서울의 광화문 학원을 다니다가 곧바로 오산읍 소재 화성군청에 달려갔던 바이니, 시골집에 등기로 도착한 발령자 준수사항을 읽어볼 겨를도 방법이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아마도 발령대상자 준비사항에는 복장단정, 용모단정, 시간준수 등 행정명령사항이 있었을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경기도청에서 8급, 7급 발령장을 받으려면 발령장을 주는 시각에서 1시간 전부터 회의실에서 기다렸습니다. 인사과 공무원들이 줄을 세우고 연습을 했습니다. 한명 한명 발령장을 받은 후 일행의 뒤로 돌아가서 앞사람이 앞으로 가면 한 칸씩 전진해서 처음 발령장을 주기 시작할 때의 본인 자리에 도착하면 전체 200명 발령장 전달이 마감되는 것입니다.
인사발령 발표는 ‘나발’로 불었습니다. ‘나발을 분다’는 말은 인사발령을 청내 스피커로 알리는 것인데, 민원인을 만나던 공무원조차도 대화를 멈추고 방송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이름이 호명되면 “와아”하며 반색을 하고 다른 어떤 이의 승진에는 ‘오~우’하면서 동의하지 못한다는 의성어를 내기도 했습니다.
40년 동안 28장 발령장을 받으면서 공직을 마치고 어쩌면 마지막일 수 있는 경기도 공기관의 상임이사로 발령을 받아 근무했습니다. 부시장, 상임이사가 되어서 소속 공무원과 공기관 직원들에게 발령장을 주었습니다.
요즘 공무원 면접대상자는 물론 발령받는 신규임용자는 어떤 기획사의 지도를 받는가 봅니다. 남성 공무원은 검정이나 곤색의 정장에 탤런트를 닮은 헤어스타일로 나타납니다. 여성 공무원은 항공사 승무원처럼 머리를 망사로 단아하게 장식하고 투피스 정장에 굽이 낮은 단화를 신고 옵니다.
남양주시청에 근무할 때 복지직 9급 25명에게 발령장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회의실에 준비된 발령장 교부장소를 해당 공무원의 책임부서인 복지정책과로 바꾸자고 인사부서에 제안했습니다. 6급이 될 때까지 업무지도를 받게 될 복지과장 앞에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서서 첫 발령장을 받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여기에 약간의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발령장 25매중 3장을 과장님 테이블 신문 아래에 숨긴 것입니다. 그리고 발령 순서지에 맞춰진 발령장 순서를 흩트리고 그 속에서 임의의 한 장을 꺼내어 발령대상자를 호명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둥글게 자리한 임용대상자 중 한 명이 나와서 발령장을 받습니다.
발령장을 읽는 것이 아니라 발령의 내용을 설명하고 근무지를 알려주었습니다. 홍길동씨는 남양주시 퇴계원읍에 발령되었으니 읍사무소 복지계에 가서 말석 서무담당자에게 이 발령장을 제시하고 인사를 하면 팀원, 팀장, 과장, 읍장에게 인사를 하도록 안내할 것입니다.
복지정책과에 발령되는 대상자에 대해서는 복지정책과장님이 발령장을 주시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발령장 교부를 마치자 발령장을 숨겨둔 3인이 아직 저편에 남아있습니다. 이를 알면서도 넌즈시 평온하게 ‘이상으로 발령행사를 마친다’고 말했습니다. 놀란 토끼처럼 화들짝 큰 눈을 뜨고 바라보던 3명의 표정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어렵게 재수, 삼수해서 들어온 공무원인데 발령장이 없다는 것은 정말로 놀랄 일이었을 것입니다. 아차! 여기 3장이 더 있었군요.
경기도 공기관에 근무할 때에는 발령대상자와 본부장님을 1층 로비에서 만나 영진영전을 축하한다는 현수막을 걸고 법인카드로 주문한 커피와 음료잔을 들고 인사발령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발령장은 키높이 테이블에 쌓아놓도록 했습니다. 몇 사람은 소속 본부장님이 발령장을 주시도록 하면서 부서를 이동하는 발령자의 그간 성과를 칭찬하고 앞으로의 발전을 기원하는 덕담을 나눴습니다.
1980년대 청년시절 발령장 하나를 받기 위해 50분 이상, 한시간을 기다리느라 무릎 연골이 뻐근했던 추억을 회고하면서 나이 들어 임용장을 전하는 입장이 되어서는 발령행사가 직장에서의 축제가 되고 멋진 근무를 이어간다는 다짐의 장이 되도록 하고자 작게 조금 노력했습니다.
도청, 시청은 물론 공기관에서도 사령교부가 아니라 발령장을 전하는 축제의 장으로 꾸미고 '나때는 말이야'를 '녹차레떼'로 바꾸고 '줄세우는 사령장 교부'를 '둥굴게 모이는 발령행사'로 바꿔주셔야 할 때가 되었다고봅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