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하철로 이동할 때 가끔 눈살을 찌푸리는 광경을 보곤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객차에 사람이 많아도 임산부 배려석에는 잘 앉지 않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 간혹 앉기는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잘 앉지 않습니다. 앉았다 다시 일어나기 귀찮아서가 아니라 언제라도 임산부가 탔을 때 주변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가길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직장인 커뮤니티에 ‘임산부석에 앉아 있는데 너무 속상하네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해당 임산부는 한 승객이 자리를 양보해 줘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었는데 한 할아버지가 ‘왜 젊은 사람이 앉아 있냐. 비켜라’라고 큰소리로 말했다고 합니다.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어 ‘임산부’라고 설명했지만, 노인은 옆에 서서 계속 욕설을 하고 심지어 다리를 발로 툭툭 치기까지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고 적었습니다.
이 글에는 “노인이라고 다 어른이 아니다”, “주변에서 도와주지 않은 게 아쉽다” 등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일각에서는 임산부 배려석을 ‘지정석’으로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모든 노인들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텐데 되레 노인혐오로까지 번지지 않을까하는 기우도 생깁니다.
이런 경우도 본 적이 있습니다. 제법 사람이 많은 지하철에 나이가 지긋해 보이신 분이 탔습니다. 어디 앉을 때가 있나 둘러보지도 않고 출입문 근처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자 한 젊은 여성분이 자리를 양보하겠다며 일어나 앉기를 권했지만, 그분은 한사코 괜찮다 사양했습니다. 실랑이 아닌 실랑이가 잠깐 이어지더니 젊은 여성은 다른 칸으로 이동했고, 노인분은 다음역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는 다음 정차역까지 아무도 앉지 않았습니다.
이 두 사례 모두 작은 배려가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선 상황에서 임산부 주변에 앉았던 사람이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했더라면, 임산부는 그런 느낌을 받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의 경우 누구를 탓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그 상황을 본 사람들은 불편한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배려’는 명사로 여러 가지로 마음을 써서 보살피고 도와줌(고려대한국어대사전)이라고 정의돼 있습니다. 그러데 앞선 상황처럼 무조건 양보한다고 행서 배려는 아닙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빵을 주는 것은 배려일 수 있지만, 계속 해서 빵을 주는 것은 배려가 아닙니다. 계속 빵을 주면 받는 사람은 그것을 당연한 권리로 인식하기 때문에 한 번의 배려는 있을 수 있지만, 계속된 배려는 그 사람을 되레 망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명한 배려는 일단 요기는 시켜주고, 앞으로 빵을 사서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베푼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배려는 상황을 한 번 더 살펴보고 어떻게 행동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좋은 의도가 상대방에게 불편하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배려는 나보다 상대방을 먼저 파악해야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같이 사는 세상, 상대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보고 행동하면, 눈살을 찌푸릴 일은 줄어들겁니다. 내가 힘들면 거울 속의 나를 상대라고 생각하고 한 번 바라보세요. 나를 위한 배려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의 미소가 보고 싶은 '거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