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동안은 이른 봄부터
파란 잎새를 세기 시작했다
이 나무의 가지는 몇줄기며
줄기마다 몇잎 싹이 나는지
아침저녁 늦은 밤에도 세고 또 세었다
신록이 지나 더 이상
잎새를 세기조차 힘들어진 밀림에서
한잠 자고나면 늘어나는 잎새탓에
더는 하나 둘 셋 지 못하더니
만추 신록이 숨겨둔 온갖 그림
추상화를 공간마다 전시하더라
올가을에는 단풍잎을 세지 않았다
아마 여름부터 잎새 숫자를 생각하지 않고
추상화나 정물화나
아님 하나의 경치로
보고 느끼기 시작했다
올가을 저 세월의 나무에 매달린
잎새를 세지 않았다
떨어져 세월의 바닥을 뒹구는 잎새조차
몇잎이냐 묻지 않았다
정말 잘했다 올가을에
신록의 잎새도 만추의 단풍잎새도
더 이상 세지 않기로 한건
잘 한 일이다 철든 일이다
철부지에서 철인으로
옷 갈아 입는 계절이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집필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