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에서 양곡관리법을 제정하였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여 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쌀 수급 안정, 직불제 확대 및 농업·농촌 발전방안'을 발표했는데 이번 대책은 쌀값 하락을 막겠다는 취지이며 더불어민주당이 3월23일 처리한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대안책이라고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 요구를 의결하며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농촌을 세심히 살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정부는 올해 수확기 쌀값이 한 가마니(80㎏)당 20만원 수준이 되도록 수급 안정 대책을 적극 추진한다고 했는데 이는 지난해 수확기 쌀값(80㎏당 18만7268원)을 웃도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마트에 가면 10kg(25,000원), 20kg(50,000원) 단위로 구매하여 필요한 만큼씩 플라스틱 병에 담아서 줄 세워놓고 밥을 지어먹었습니다. 그런데 80kg들이 쌀 1포대가 20만원쯤 나간다는 계산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 양곡관리법 개정과 정부의 거부권 행사 내용이 언론에 회자(膾炙)되는 것을 보면서 1977년 9급 공무원 초임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공무원 초임으로 대략 5만원 정도를 받았고 연금, 의료보험, 공제회비 등을 제하면 실수령액은 4만원 정도였을 것입니다. 이전 선배님들은 월급 8천원 정도를 받았다고 하시고 후배 중에 고참은 초봉 10만원으로 기억하기도 합니다. 1977년 당시는 3년 전쯤인가 폭풍처럼 지나간 이른바 '서정쇄신'이라는 공직기강을 바로 세우는 '토네이도'가 지나간 직후였으므로 공직사회는 단단하고 경직되어 있었습니다. '공직자는 공복'이라 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단어를 검색해 보니 공복(公僕)이란 국가나 사회의 심부름꾼이라는 뜻이며 ‘공무원’을 달리 이르는 말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공무원을 ‘국민의 공복’이라 칭하였으며, 당시에는 국민이 오히려 공무원을 어려워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공무원들은 스스로 ‘국민을 위한 공복’이라 자처(自處)했던가 봅니다.
더구나 공복의 복(㒒) 자는 노복(奴僕)의 복자와 같습니다. 사전에서 노복이란 ‘예전에, 남의 집에서 대대로 일을 해 주는 천한 신분의 남자’를 이르던 말이라 했습니다. 결국 공무원은 공공의 심부름꾼인 것이고 스스로의 마음속에서는 머슴이라는 말에 공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요즘의 공무원은 그리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일반 국민들도 그 정도로 공무원을 대하지 않는 상황이겠습니다만 당대에는 공무원 스스로나 국민들이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19세 어린 마음이지만 공무원으로서, 면직원으로서 '노복만큼은 아니어도 머슴의 심성으로 일하자'라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습니다.
최근 들리는 바 공직사회의 이야기와는 딴 세상 말을 하는 것 같다 할 것입니다만 당대의 공직과 일반 사회 분위기는 엄중했으므로 어린 공무원으로서 소신을 갖거나 주장을 펼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속마음으로 5급을류, 9급 공무원과 초·중 시절에 본 머슴 아저씨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화성군 비봉면에서 당시의 상머슴이 쌀 12가마, 중머슴은 10가마를 연봉으로 받았습니다.
12가마 연봉의 상머슴 기준은 '쉰 일'을 하는가 못하는가가 심사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쉰 일'이란 나중에 이해했는데 '쉰'이란 '상한 음식'을 의미하므로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하기 싫어하는 일을 의미했습니다.
소를 몰아서 농사를 짓는 일 중 쟁기질과 써레질이 ‘쉰일’이었습니다. 쟁기질은 소를 활용하여 논밭을 갈아서 흙과 퇴비가 고르게 섞이도록 하는 어려운 작업이고, 써레질 역시 소를 이용하여 갈아엎은 논밭에 파종을 하거나 모내기를 할 수 있도록 평탄 작업을 하는 쉽지 않고 힘이 드는 일입니다.
이제 연봉을 계산하여 비교해 보았습니다. 당시 9급 공무원 월급 5만원이면 쌀 2가마니 값이었습니다. 1년 12개월 동안 쌀 24가마를 받는 9급 공무원과 쌀 12가마니를 받는 머슴의 대우가 비슷하다는 계산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머슴은 주인집에서 자고 먹고 담배와 옷가지를 받으며 일해서 연봉으로 12가마니를 받는 것이고 공무원은 제집에서 자고 먹고 다니면서 24가마에 해당하는 연봉을 받으니 대략 형평성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더구나 머슴은 연봉 기간이 10개월로서 2개월간의 농한기에는 간단한 일을 하면서 보냈던 시절이었습니다.
42년 504개월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490번 월급을 받았습니다. 14개월은 국방의무를 위해 일했습니다. 공직에서는 월급을 하루 이틀 당겨주면 주었지 늦게 준 바 없습니다.
기간 중 받은 봉급을 추산해보니 21억원쯤 됩니다. 개인차가 있으며 다수 공무원의 셈법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공복'이 아니라 '공익'을 받고 살아왔습니다. 그 공익이 공무원이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하는 이유인가도 생각합니다. 먼저 쓴 ‘퇴직공무원의 반성’(본보 3월3일자)을 다시 한번 되뇌어 봅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