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궐리사> 김병조 선생, 인의예지 강의

  • 등록 2025.06.16 13: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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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궐리사 최초 시민참여 강좌

김병조 초청강연 ‘仁義禮智(인의예지)로 배우는 지혜’

 

화성 闕里祠(궐리사) 유도회 주관으로 처음 개최

유도회원, 시민, 학생등 100여명 참석 성황

감성을 담아 열강하는 김병조 선생에 수 차례 박수

 

화성궐리사 유도회(회장 공찬식)가 주관한 ‘오산시민을 위한 김병조 선생 초청강연회’가 (2025) 6월14일(토) 12:30~15:00까지 오산오색문화체육센터 다목적실 2층에서 이권재 오산시장, 공창식 회장, 이용우 도유사, 유도회원, 시민, 학생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초청강연회는 궐리사 유도회가 회원을 중심으로 개최해 온 그간의 강연회를 확대하여 다수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최초로 준비한 행사로 한반도 유일의 궐리사랄 수 있는 화성궐리사가 지역사회에서 공자사상을 전파하고 지역문화의 구심체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는 의미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궐리사와 유도회 관계자들은 “시민과 함께하는 행사로 발전시키고자 이번 강연회를 확충하여 마련했다”고 입을 모으며 “공자님을 모시고 있는 궐리사가 최초로 초청강연회를 열고 참석범위를 일반 시민까지 확대한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하여 말했다.

 

강연회에 참석한 이권재 오산시장은 인사말을 통해 “화성궐리사가 발전하도록 시에서도 더 크게 노력하고자 하며, 우리 시민과 국민에게 공자사상을 전파하고 함양하는데 더 큰 역할을 이어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강사로 나선 김병조 선생은 당초 강연 예정시간을 30분 넘기는 열강을 통해 공자님의 인의예지, 부모님의 마음, 자식의 도리, 경주 최부자의 규율, 새옹지마 이야기 등 현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귀감이 되는 강연을 진실되게 펼쳐서 큰 박수를 받았다.

 

사회자로 나선 윤의영 사무처장은 강의시작전에 “김병조 강사는 명심보감을 완역했으며 마음공부 책을 출간하였고 오상으로 배우는 리더십을 통해 유교를 계승하고 유교문화의 대중화에 기여해 온 분”이라고 소개했다.

 

한편, 화성궐리사는 경기도 오산시 매홀로 3번지 오산대학 인근에 있는 공자님의 사당이다. 조선후기의 사당으로 오산의 궐리사는 (충남)노성의 궐리사와 함께 우리나라 2대 궐리사중 하나로서 1792년 정조16년에 서원적 사당으로 친필 사액된 것으로 대성 공자를 봉안하고 있다.

 

 

 

 

<강의내용 정리>

 

* 강의내용을 들으면서 메모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역한 기록자료입니다.

* 강사님의 의도와 다르게 필사하였을 수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작성자 이강석)

 

강의를 시작할 때 박수를 치신 분, 함성을 지르신 분들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강의실에 와주신 회원, 시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특히 초등학생 두 명이 자리를 함께하고 있는데 두 학생은 훗날 큰 인물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조선시대 중종대에 문헌공 공서린 선생은 기묘사회에 낙향하여 이곳 오산에 궐리사를 지었고 훗날에 정조가 능행차를 오셔서 64대 후손 공서린 선생의 고향에 노나라의 궐리라는 공자님 고향의 이름으로 지어진 궐리사를 위한 사액현판을 내린 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충남 논산에 궐리사가 하나 더 있는데 이는 노론이 소론을 견제하기 위해 세운 것이고 화성궐리사는 왕명으로 세운 궐리사이니 다른 궐리사와 비교될 수 없는 정통성이 있는 궐리사라 하겠습니다.

 

공자사상의 정신적 고향, 유학의 중심지인 화성궐리사에서 올해 처음으로 일반 시민까지 참여하는 초청강연이 열린 것이고 저로서는 참으로 수준 높은 곳에서 이처럼 강의를 하고 있으니 큰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 저는 건강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健(건)보다는 康(강)입니다. 굳셀建(건) 보다는 편안한 康(강)이 중요합니다. 건강은 마음이 편해야 하고 욕심을 줄여야 하며 곁눈질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옆집의 남편, 아내, 자식들은 다 잘났다고 하기보다는 우리 집이 더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家鷄野雉(가계야치). 집에 있는 닭과 들에 있는 꿩이라는 뜻으로, 가까이 있는 흔한 것은 천하게 여기고, 멀리 있는 드문 것을 귀하게 여김을 이르는 말입니다. 집닭보다 꿩만 본다는 말입니다. 이게 욕심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건강해야 제대로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방송경력 10년인 예능인이 이제 겨우 6개월된 예능출연 청년개그맨이 자신의 10배를 넘기는 출연료를 받고있고 지금 방송국에 온 관객에 둘러싸여서 싸인을 해주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형상이기도 합니다.

 

세상사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습니다. 저의 게그중 하나인 ‘지구를 떠나거라~~~’가 유행일 때 방송 시청율은 70%가 넘었습니다. 이번 대선토론 시청율이 20%정도였습니다. 저는 7년동안 이 70%의 시청율을 유지했습니다.

 

작가로부터 대본을 받으면 외우기보다는 밤새 원고를 고쳐서 대본을 읽고 또 고쳤습니다. 같은 말도 어느 단어에 강약을 주는가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흔히 드라마 작가가 쎄다고 합니다만 저에게는 작가들이 조금은 어려워한 듯 보입니다. 愼終如始(신종여시). 일이 마지막에도 처음과 같이 신중(愼重)을 기함을 말합니다. 조심하기를 처음처럼 하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는 방송국에 와서 10년동안 '그냥 지나가는 역할'만 했습니다. 하지만 늘 지나가는 역할에서도 PD가 신경쓰이게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작은 역할이 주어지고 나중에는 주인공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잘나가면 교만해지고 인기가 오르면 교만해집니다. 그래서 신종여시(愼終如始)가 중요합니다.

 

제가 방송에서 뽀식이와 함께 뽀병이를 할 때에 체중이 83kg까지 나갔습니다. 주변에서 운동을 하라 했습니다. 그래서 체중관리를 했습니다. 날씬해졌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지나가던 분이 저를 보더니 “배추가 씨레기가 되었네”하십니다.

 

어느 언론기사에서는 “고 김병조”라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오늘 저를 보셨으니 전해주세요. 김병조가 쌩쌩하게 잘 살고 있다고 말해주세요.

 

​權不十年(권불십년), 부불삼대(富不三代, 아무리 큰 부라도 삼대를 가지 못한다)입니다. 경주최씨는 12대를 1만석 부자로 이어왔습니다. 경주김씨 부잣집의 6훈이 있습니다.

 

​1. 100리안에서 굶어죽는 이가 없도록 하라.

 

2. 10,000석이상 하지 마라. 멈출 줄 알라. 正(정)자를 풀어보면 一(일)과 止(지)가 되는데 이는 일단 멈추라입니다. 止(지). 선비는 멈출줄 알아야 한다.

 

​3. 흉년에 논을 사지 말라. 파장에 물건을 사지마라. (흉년에 먹을 것이 모자라 논을 파는 이가 늘어날 것이다.)

 

​4. 進士(진사)이상 하지마라. 결론은 정치를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김삿갓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김익순의 정치에서 밀려났고 그 며느리와 손자가 영월까지 멀리 피난하듯 이사를 왔습니다. 그리고 손자 김병연이 그 지방에서 실시한 향시에서 장원에 급제하였습니다. 어머니에게 장원을 받은 향시의 과제를 설명하였는데 그 내용은 김변연 자신의 할아버지 김익순의 죄를 논한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에게 하늘을 볼 수 없는 죄를 지었다하여 김병연은 평생 삿갓을 쓰고 다녔으며 한번도 그 삿갓을 벗지 않았다고 합니다.

 

​5. 손님접대를 잘하라.

 

6. 시집와서 3년간 며느리는 무명옷을 입어라. 부잣집에 시집올 정도이면 어느정도 재산이 있는 집안이겠지만 그래도 무명을 입도록 했고 3년이 지나도 검소한 며느리는 계속해서 무명옷을 입었다고 합니다.

 

權不十年(권불십년),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 그런데 어느 분이 백일홍이 있다고 하십니다. 백일홍은 피고지는데 100일을 유지하는 것이지 백일홍 꽃 한송이가 100일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육사를 가려고 했는데 담임선생님이 연극영화과에 가서 코미디언이 되라고 하십니다. 평소에 사회도 보고 이런저런 재기를 보이는 것을 보신 때문일 것입니다. 육사를 가면 국비로 수업을 받는 것이고 연극영화과에 수석으로 가면 역시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극영화과에서 首席(수석)으로, 4년간 장학금으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취미가 水石(수석)입니다.

 

당시에 최불암 선생님, 조용필 가수, 그리고 김병조가 필적하였습니다. 저는 노원구에 살고 있습니다. 이사가지 않고 열심히 노원구에 살고 있습니다. 영어로 노원구는 아무도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려워도 흔들림 없이 당당해야 군자입니다. 저는 늘 아내와 함께 다닙니다. 저는 운전을 못 해서 아내와 같이 다닙니다. 아내가 운전을 하고 저는 옆에 타고 여기 오산에 왔습니다.

 

저는 야간업소에 출연하지 않았습니다. 일요일밤의 대행진에 출연하면 38만원을 받았을 때에 다른 출연자들은 야간업소에서 10분정도 출연하여 노래3곡을 불러 100만원을 받더라구요. 그래서인가 저는 근검절약으로 살았습니다.

 

​역시 근검절약의 대명사인 이상0과 김병조가 커피를 마신 경우 그 커피값은 누가 내는가가 조크성 질문이었습니다. 답은 “지나가던 PD가 낸다”입니다.

 

남을 해치는 말이 돌아와서 나를 해치게 됩니다. 나의 나쁜 점을 말해주는 이가 나의 스승입니다. 과거에 나에 대한 기사를 쓴 기자는 잘 모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일로 오늘날 교수가 되었습니다. 세상사는 생각하기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매사 긍정적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든 성공한 후에 어려운 시절을 잃어버려서 사업이 망합니다. 어려웠던 시절을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아버지의 형제 중 3녀가 모두 장성군으로 출가를 해서 운동회날에는 모두가 다시 만나기도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유언을 하십니다. 장손을 잘 가르쳐라. 그래서 어머니는 행상을 하면서 학비를 벌어 저를 학교에 보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인 저에게 기죽지 말라 말씀하십니다. 16살에 결혼하신 어머니는 3살위 누나를 낳으시고 다음에 저를 낳으셨는데 누나가 늦게 학교를 가서 6학년일 때 저는 5학년이었습니다.

 

누나는 나를 위해 희생했습니다. 초 6학년 1학기에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제가 세계의 성인보다 그 누구보다 가장 존경하는 분은 누나입니다. 누나를 늘 생각합니다. 그 누나를 기억하기 위해 방송에 출연하는 모든 대본 한구석에 저만 알 수 있는 누나의 이름을 적어놓았습니다.

 

“내가 정치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말하는 이가 정치를 해야 올바른 정치가 됩니다.

 

저는 10년동안 광주에서 방송을 했습니다. 좋은 일을 하면 복을 받습니다. 인기있는 연예인은 괴롭습니다. 돈이 많으면 망할 일만 남았습니다. 망할 일 뿐입니다. 그러니 오히려 안 좋은 것이 좋은 것입니다. 저는 매니저없이 스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내 모습이 더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안데르센은 가난하게 살았기에 ‘성냥팔이 소녀’라는 글을 써냈습니다. 안데르센은 아버지의 구박을 받았기에 ‘미운 오리새끼’라는 책을 창조했습니다.

 

<참고자료 정리>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1805.4.2~1875.8.4) 덴마크의 동화작가. 《즉흥시인》으로 독일에서 호평을 받아 유럽 전체에 명성을 떨치기 시작하여 아동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수많은 걸작 동화를 남겼다. 《인어 공주》, 《미운 오리 새끼》, 《벌거숭이 임금님》, 《성냥팔이 소녀》, 《즉흥시인》, 《가난한 바이올리니스트》, 《그림 없는 그림책》 등 창작동화는 130편에 이른다.

 

이제와서 보니 최고의 재산은 가난이었습니다. 가난은 우리가 어려운 일을 겪어도 참아내는 힘이 되었습니다. 겨울이 지나야 봄이 오듯이 어려운 일을 겪어야 위대한 인물이 됩니다.

 

​塞翁之馬(새옹지마). 변방에서 할아버지가 말을 키우면서 아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암말이 도망을 갔습니다. 6개월 후에 그 암말이 숫말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새끼를 배어서 돌아왔습니다.) 함께 돌아온 말은 천리마급이었습니다.

 

어느날 노인의 아들이 천리마를 타다가 낙마해서 다리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나라에 전쟁이 나서 젊은이를 군인으로 징발하러 왔지만 아들은 다리 부상중이어서 군대에 가지 않았고 목숨을 유지했습니다. 긴 인생을 살아보면 불행이 행복이고 행복이 불행인 줄을 압니다.

 

​사가지라고 합니다. 4가지입니다. 인의예지. 공자님 3,000명 제자중 육례, 72학자, 10철이 있습니다. 仁(인)은 어려울 때 앞장섭니다. 인은 애인입니다. 상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안스러워한다는 것입니다. 자비는 눈물 짠하게 여긴다는 말입니다. 맹자는 이를 惻隱之心(측은지심)이라 했습니다.

 

100살의 어머니가 80세의 자식을 걱정합니다. 1953. 7. 27 6.25 전쟁을 휴전할 때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는 어디에 계셨을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늘 미안해 하십니다.

 

저의 어머니는 12년전 돌아가시면서 말했습니다. "아들아 미안하다. 엄마가 못먹이고 못입혀서 미안하다." 그렇게 나의 어머니는 미안해, 미안해 하십니다.

 

모름지기 지도자는 어머니처럼 미안해야 합니다. 어머니는 자식이 중죄를 지어도 엄마가 잘못 가르쳤으니 선처해달라 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공자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어머니를 내려보냈다고 합니다.

 

모든이에게 안스러워지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건은 나의 책임이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어렵다고 멀리하지 않는 자가 진짜 군자이고 대장부입니다. 날씨가 추어보아야 소나무가 늦게 낙엽지는 것을 안다고 합니다. 소나무에도 낙엽이 있습니다. 그것을 모아서 불쏘시개로 쓰고 있습니다.

 

​제주도에 유배간 김정희선생이 자신을 도와준 이에게 보낼 그림으로 세한도를 그렸습니다. 어려웠을 때 나를 도와준 이에게 전한 그림이 세한도입니다.

 

​​<참고자료> 세한도의 크기는 23 X 69.2 cm이다. 이 그림은 추사 김정희가 귀양 시절 제자 이상적이 북경에서 귀한 서책인 120권 79책짜리 황조경세문편을 구해와 유배지 제주도까지 가져다 준 것에 감명해 그렸다고 전한다. 이 때 추사 김정희는 소나무와 잣나무를 보고 "가장 추울 때도 너희들은 우뚝 서있구나."라면서 자신의 처지를 표현한 그림이다.

 

歲寒然後知 松栢之後凋(세한연후지 송백지후조)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되어서야 소나무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비로소 알 수 있다. (논어 자한편)

 

세한도(歲寒圖)라는 제목은 논어 자한편에서 따왔는데, 사람은 고난을 겪을 때라야 비로소 그 지조의 일관성이나 인격의 고귀함 등이 드러날 수 있다는 뜻이다. 시절이 좋을 때나 고난과 핍박을 받을 때나 한결같이 인격과 지조를 지켜야 한다는 추사의 다짐은 이처럼 여러 문인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맹사성이 관리가 되어서 자신만만했는데 이방이 관내의 고승께 인사를 드리고 가르침을 받자고 제안했습니다. 스님은 “좋은 일을 많이하고 나쁜 일은 적게하라”는 평범한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차를 대접하는데 찻잔에 차가 넘치도록 계속 따르고 있습니다. 지식이 넘쳐서 인격을 망치는 것을 모르십니까?

 

<참고자료> 맹사성(孟思誠, 1360년 8월~1438년 10월)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정치인, 유학자이다. 고려 전의시승, 조선 판한성부사 등을 지냈다. 파주 군수가 된 맹사성은 선정을 베풀기 위한 좋은 지침을 구하기 위해 고을의 명망 있는 어른들을 찾아 나섰다. 그러던 어느 날 도(道)가 높다는 무명 선사를 찾아가게 되었다. 서로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자신이 어떻게 하면 훌륭한 선정을 베풀 수 있는지를 공손하게 물었다.

 

그러자 스님은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그것은 너무도 쉽고 간단한 일입니다. 좋은 일은 많이 하고 나쁜 일을 하지 마십시오." 뭔가 고상한 이야기라도 들을 욕심에 잔뜩 기대하고 있던 맹사성은 너무나 식상한 말에 그건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다 아는 이야기 아닙니까? 하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맹사성은 먼 길을 찾아온 내게 고작 해줄 말이 그런 것 뿐입니까? 하고 못 마땅한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차나 한잔 하고 가시라고 붙잡았다. 마지 못해 다시 자리에 앉은 맹사성은 연신 입맛을 다시며 곱지 않은 표정으로 스님을 바라보는데 이번에는 스님이 찻잔에 차를 가득 따르고도 멈추지 않는 게 아닌가.

 

스님 차가 넘칩니다. 맹사성이 다급하게 소리치는데도 스님은 태연하게 계속 차를 따르기만 한다. 잔뜩 화가 난 맹사성이 차를 그만 따르게 하려는데 나지막한 스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찻물이 넘쳐서 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자신이 재주가 넘쳐서 인품을 망치는 것은 모르시는군요.”

 

맹사성은 스님의 한마디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황급히 자리를 뜨려고 문을 열고 나가려다 그만 문에 머리를 심하게 박고 말았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스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머리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습니다. 물처럼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춰 저 너른 바다와 같은 마음이 되시면 거기엔 더 이상 울타리가 없으며 벽도 없을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일체의 시비가 끼어 들지 않을 정도로 끝없이 자신을 낮추십시오. 인격은 겸손으로부터 다져지는 것입니다."

 

​충돌하지 않으려면 자신을 낮춰야 합니다. 아랫사람을 존중하고 자신을 낮추면 그들도 함께할 것입니다. 그 아랫사람을 존중하면 아랫사람이 그 윗사람을 존경할 것입니다. 사랑하고 공경하라.

 

​사랑만하고 공경하지 아니하면 이는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입니다. 사랑만 하고 공경하지 않으니 문제입니다. 낮춰야 충돌하지 않습니다. 낮추는 사람이 가장 무섭습니다.

 

지식은 앞장서고 지혜는 양보합니다. 지식은 이기려하고 지혜는 저줍니다. 위대한 지도자는 아랫사람에게 지는 사람입니다.

 

지식은 주인공이 훌륭하다고 하고 지혜는 조연이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공자님의 말씀이 오산시에 널리 퍼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강연도 중요하지만 이 같은 초청강연, 행사를 준비하신분들이 더 위대합니다.

 

​저는 조연 임현식씨를 좋아합니다. 주연이 아니지만 조연으로써 열정을 보이는 분이어서 좋아합니다. 연예인중 여러명이 국회의원을 했습니다. 이순재, 이주일, 강부자, 최불암 등이 국회의원을 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국회의원 10번 하는 것보다 고향에서 명심보감을 강의한다는 것이 더 자랑스럽습니다.

 

​공자님의 제자중 자공은 富者(부자)였습니다. 그는 3년도 아닌 6년간 공자님 묘역에서 시묘살이를 했습니다. 공자님 묘역의 대부분을 자공이 공사했습니다.

 

​공자와 자공의 문답입니다. 나라를 이끄는 힘은 무엇입니까. 족병, 족식, 民信. 믿음을 잃으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스스로를 믿고 凡事(범사)에 감사하라. 수시지족. 성경에서도 범사에 감사하라 합니다.

 

어느날 저의 눈이 아팠고 시력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 눈으로 보고 있으니 행복합니다. 아내의 격려에 마음의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두 눈으로 보면 밝아서 좋고 한 눈으로 보면 一目瞭然(일목요연)해서 좋습니다. 건강의 소중함을 알게 합니다. 오늘 제 말씀을 들으시니 행복하시지요? 오늘 참 행복합니다.

 

꼴등이 있으니 1등이 있습니다만 꼴등은 옆도 보면서 가는데 일등은 앞만보고 갑니다.

 

1998~2025년까지 강의를 해왔습니다. “아버지 제가 강의를 해서 박수를 많이 받았어요.” 이렇게 자식이 부모님께 말씀드리려 하나 안게시니 말씀을 드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 부모님께 잘 해드리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강의를 들어주시고 박수로 호응해 주시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

이강석 기자 stone91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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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오산#남양주 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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