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배사#한말씀

  • 등록 2025.06.09 19: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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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는 상하좌우간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소통은 인체 혈류와 신경계다. 필요한 정보와 자료, 소재와 원재료가 적기에 공급되고 부족한 곳을 채우고 넘치는 곳은 가감해야 한다. 이 같은 경우는 봄날 농촌의 ‘판장모판’에 비유되기도 한다.

 

 

‘판장모’란 논에 일정한 간격으로 줄을 설정하고 그 안에 못짐을 넣은 후 한 명씩 들어가서 모내기를 하는 농사일을 말한다. 아주 고달픈 방식이다. 좁은 공간에서 주어진 일을 홀로 다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모내기 초보자에게는 이중고의 부담을 주는 일이다.

 

반면 작업속도가 느린 초보자는 못짐이 모자라면 여러발짝 후진해서 가져와야 하고 남아도는 경우에는 일일이 뒤편으로 이동시키면서 모내기를 해야 한다. 그러니 모내기를 잘하는 전문가라면 남는 못짐은 뒤편으로 밀어내면서 작업을 하되 옆자리의 못짐 배열을 감안하여 적정한 배치를 하는 관리자가 되어야 하는데 농촌의 농사일에서는 딱히 고수도 없고 하수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판장모 이야기를 현대 행정기관의 어느 부서에서 견주어 보고자 한다. 어느 기관이나 과단위 부서에는 과장과 4명의 팀장이 있고 각 팀에는 대략 6명씩의 팀원이 근무한다. 각 팀의 하는 일이 다른 듯 보이지만 과장으로 올가가면 모두가 ‘우리과’의 일이다. 그러니 과장은 판장모 작업을 위해 4개의 줄을그어 놓고 4개의 팀에게 각자의 업무를 부여하고 진행을 관리하게 된다.

 

그러니 과장이 일 잘되는 부서만 격려하는 것은 맞지 않고 일을 못 하는 부서를 질책하는 것도 옳은 일이 아니다. 과장은 4개 팀 전체의 고른 운영을 통해서 과 전체의 원활한 진행을 도모해야 한다. 따라서 앞서 나가는 팀은 격려하되 이보다 늦은 부서가 있으면 이 또한 지원해야 한다.

 

판장 모판에서 모를 심는 4명중에 모가 모자라는 이에게는 채워주고 남아서 밀리는 경우 이를 뒤편으로 이동시키는 ‘기획조정’의 역할에 과장이 나서야 할 것이다. 과장은 조율자이고 중용지도를 지키는 관리자인 것이다. 해당 부서를 책임지는 부서장이기도 하다.

 

1980년대 공직사회에는 ‘무두일’이라는 농담이 있었다. 無頭(무두)란 ‘우두머리가 없다’는 造語(조어)인데 부서장이 출장을 가거나 개인일로 자리를 비운 날의 오후에 현실화된다. 이날 팀장들은 우르르 나가서 소주 한 잔을 했다. 6,7급 직원들도 삼삼오오 일찍 퇴근해서 석양주를 마시며 저녁을 즐겼다.

 

어떤 사정으로 과장이 한 두 달 공석이 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처음 2주일 정도는 부서일이 편안하게 잘 돌아간다고 했는데 한 달 이상 과장, 즉 책임자의 부재가 길어지면 몇 가지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부서가 하는 일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부서에서 우리를 가볍게, 소홀하게 여긴다는 자격지심도 들었다.

 

그것이 조직의 생리였다. 과장이라는 자리가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라 긴 세월 조직을 운영해 본 전문가들이 필요해서 만들어낸 조직구성 방식이었던 것이다.

 

오늘 이 시각에 자신이 관리자, 과장이라면 ‘입은 하나이고 귀가 둘인 이유’를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한다. 말이 앞서기보다는 부서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말을 강조하는 바이다. 말하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 회의에서 먼저 말하지 않고 기다려야 한다. 주무관이 먼저 말하고 팀장이 보충하기까지 과장은 기다려야 한다.

 

회식에서의 에피소드로 마무리한다. 회식자리에서 서무담당이 말했다. 과장님! 술한잔 따랐으니 ‘한 말씀’하시지요. 과장이 잔을 높이 들고 외쳤다. “한 말씀!!!” 리더는 과묵해야 한다. 말을 줄이고 행동에서 앞장서야 한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

이강석 기자 stone91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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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오산#남양주 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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