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록된 수원화성은 그 차제가 아름다운 성이고 그중 白眉(백미)를 꼽으면 화홍문과 그 위편에 자리한 방화수류정이라 할 것입니다.
화홍문 인근에는 심재덕 시장님 재임 중에 자주 들렀다고 하여 유명세를 탄 소고기 식당이 하나 있는데 2002년경 어느 날 사무관 2명과 중견 언론인 몇 명이 자리를 잡고 도정의 홍보와 언론사의 미래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두 사무관은 물론 공보부서를 대표하는 당시로서는 그래도 젊은 공무원이고 언론인 역시 회사의 정치부를 대표하는 한참 잘나가는 기자였으니 할 말도 많고 빈 술병도 여러 개 양산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단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최후의 3인이 남게 되었고 따로 소주집에 갈 여력도 휘발유도 부족하지만 단거리라도 달려보고 싶은 마음이 동하였고 아주 쉽게 의견의 일치를 보았던 것입니다.
해서 언론인 간부가 인근 슈퍼에 가서 소주 몇 병을 확보하고 안주꺼리 포를 사서 화홍문 달빛거리를 지나 방화수류정 별빛마을에 도착하였던 것입니다. 화홍문을 지나는 물결의 일렁임속에는 둥근 달이 붉은 구슬이 되어 물결을 만나 너울거리며 검은 밤을 밝혀주고 방화수류정 문틈을 지나 작은 고원마을에 도착하면 하늘에서 별빛이 반겨주는 곳입니다. 水原八景(수원팔경)을 한번 돌아보겠습니다.
정조가 수원성을 세우고 빼어난 경치 여덟 군데를 꼽아 찬양한 데서 수원팔경이라 전합니다.
1. 광교적설(光橋積雪)
2. 북지상련(北池賞蓮)이다. 장안문 북쪽 연못에 흰색·붉은색의 연꽃이 호수면 가득 피어 있으니 우아하기 그지없는 광경이었다고 한다.
3. 화홍관창(華虹觀漲)으로 광교산 깊은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광교천 맑은 물이 화홍문의 7개 홍예를 빠져나갈 때 옥처럼 부서지는 물보라를 바라보는 눈 맛이다.
4. 용지대월(龍池待月)이다. 화홍문 방화수류정과 어울려 용지는 한없이 아름답고, 여기서 동쪽을 바라보며 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그리도 아름다웠단다.
5. 남제장류(南提長柳)이다. 화홍문에서 화산릉 앞까지 이르는 수원천의 긴 제방 남제 양편에 늘어서 있는 휘늘어진 수양버들이 가관이었음을 이른다.
6. 팔달청람(八達晴嵐)이다. 야트막한 팔달산에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울창했다. 맑게 갠 날 이 나무숲에서 산기(山氣)가 모락모락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빛나는 모양이다.
7. 서호낙조(西湖落照)이다. 서호 수면에 여기山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그 위에 석양빛이 반사되어 황금빛으로 물들면 가히 빼어난 아름다움 아니겠는가.
8. 화산두견(華山杜鵑)이다. 봄이 오면 온 산이 진달래로 붉게 물들어버리는 화산의 아름다움을 이른다.
수원 8경중 3곳이 화홍문과 연결되니 방화수류정 마져 감상하면 수원 화성의 절반을 보았다 해도 될 것입니다. 더구나 저녁식사 중 한잔하고 다시 풀밭에 앉은 3인은 달물결의 군무에 취하고 쏫아지는 별빛을 폭설처럼 맞으며 늦은 시각까지 별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을 것입니다.
몇 년이 흐른 어느 날 중견 언론인은 컬럼을 통해 이날의 비밀스러운 회동을 회고합니다. L사무관이 술에 취해 공보실 근무자로서의 고충을 토로하고 또 다른 L사무관도 생각보다 힘든 나날이라는 말을 하였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컬럼은 공무원들이 열정이 있다면 작든 크든 무엇인가를 이룩해 낸다는 의미로 마무리해 준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컬럼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다시 읽고 초심으로 돌아가 남은 공직을 보람차게 마감해야 합니다. 훗날 실명거론이 가능해질 즈음에 다시한번 별 빛과 달 물결에 취했던 그 언저리에서 지나간 세월을 반추해 보고자 합니다.
그때는 소주가 아니라 와인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현장에 들어가기 보다는 주변에서 관조하는 입장이 될 것입니다. 세월은 그렇게 세류의 버들처럼 부드럽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기자실과 기자단
기자실은 행정기관과 언론인간의 밀고 당기는 공간 확보의 현장입니다. 기자실 확보는 출입 언론인의 자존심이고 기관의 입장에서는 민의를 대변하고 소통하는 현장이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공사를 하겠다며 잠시 기실을 폐쇄한 후 장기간 신장개업하지 않은 사례가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기관에서는 늘 아주 넓은 공간을 확보하려 노력하는 사무공간이 기자실입니다. 그리고 기자실 옆에는 늘 브리핑룸이 있어서 각종 중요 현안에 대해 언론에 설명하고 때로는 시민단체 등이 찾아와서 기자회견을 합니다.
경기도의회 기자실 브리핑 룸에서는 지방선거 때마다 출마 기자회견이 줄을 이어가고 총선 시에도 국회의원 출마 선언의 장으로 활용합니다. 환경단체, 경제단체, 복지단체 등의 주장을 펼치는 장소로 도의회 브리핑 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기자단은 기자실에 출입하는 언론인들의 모임입니다. 기자단에는 간사라는 총무 겸 회장의 역할을 하는 중견 언론인이 있으며 2년 정도씩 돌아가며 담당하기도 하고 어느 기자단 간사는 10년 넘게 이어 가기도 합니다.
안정된 기자단의 간사는 장기근속을 하게 되고 심히 유동적인 기자단의 간사는 수시로 바뀌고 합종연횡을 이어갑니다. 안정적인 기자단의 간사는 1년에 2번 정도 정기회의를 하는 반면 불안전하거나 불완전한 기자단의 회의는 수시로 소집됩니다.
20년 전 간사는 약간의 대우와 특전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기자단 간사는 대표성도 약해 보이고 특전보다는 오히려 비난과 해명으로 상호 밀당이 이어지는 듯합니다.
잘되면 그냥 가다가도 무엇인가 맞지 않으면 간사가 잘못이라는 비판을 듣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간사도 못해먹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그래도 행정기관의 입장에서는 간사가 존재해야 편리합니다. 전체의 의견을 묻는 일이라든지 중요 취재시 동행할 1-2명의 언론인을 간사가 정해줍니다.
기자단의 회원으로 가입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기존의 회원사 출입기자가 본사 발령으로 변경되는 경우에는 그대로 대를 이어갈 수 있지만 새로운 언론사가 들어오려면 1년 정도 공을 들여야 합니다.
마치 대기표를 받고 발령을 기다리는 듯이 수시로 접촉하면서 기자단 가입을 위해 노력하면 6개월이나 1년쯤 지난 어느 날 간사가 회의를 소집하고 예비 회원사 가입에 대한 투표를 합니다.
교황선출방식으로 전원 찬성을 받아야 합니다. 개헌발의선인 2/3의 경우도 있습니다만 일단은 화백제도처럼 전원 찬성을 필요로 합니다.
경기도청 브리핑 룸이 2004년경 만들어 졌는데 이용 수칙을 구두로 정한 바 있습니다. 행정적인 브리핑은 늘 가능하지만 정치적인 부분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치관련 브리핑은 도의회 기자실을 이용하도록 권고합니다.
민원관련 브리핑을 할 때에는 프랑카드 1매를 허용하며 피켓이나 기타 도구의 지참을 금하고 있습니다. 이 불문법은 10년 이상 지난 지금도 잘 지켜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거철이 되면 경기도의회 기자실에는 정치인들의 발표가 이어집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