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금 기사에 사설까지

  • 등록 2025.05.26 12:5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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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장학금 기사와 사설까지

존경하는 선배 공무원이 명예퇴직을 하면서 지역인재 육성을 위한 장학재단에 큰돈을 쾌척하신다 하시므로 급하게 보도자료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몇 개월 전 국장에 승진한 선배 공무원은 후배의 승진 길을 열어주기 위해 조금 일찍 공직에서 물러나는 것에 보태어 덤으로 더 큰 미래의 후학들을 위한 인재양성에 미력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하는 뜻에서 장학기금을 퇴임식장에서 전달하겠다고 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이분 공직 선배는 1975년 강화군청에서 공직에 입문하였습니다.

 

 

당시에는 강화군과 옹진군이 경기도와 함께하는 郡(군) 지역이었습니다. 1994년경에 인천광역시에 편입된 후 몇 년 전까지도 강화 환원운동이 전개되었으나 선봉에 게시던 더 오래전 공직 선배님들이 돌아가시니 서서히 그 열기가 주변에서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에펠탑 철거 100인위원회’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글이 생각났습니다.

 

[에펠탑효과] 1889년 3월31일 프랑스 파리에는 프랑스 대혁명 100주년을 맞이해 열린 만국박람회의 기념 조형물로 에펠탑이 세워졌다. 수많은 시민들이 탑 건립을 반대했다. 15,000개의 금속조각, 2,500,000개의 나사못으로 연결시킨 무게 7,000톤, 높이 320.75m의 철골 구조물이 고풍스러운 파리의 분위기를 완전히 망쳐 놓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 프랑스 정부는 20년 후에는 철거하기로 약속하고 건설을 강행했다. 에펠탑 철거를 위한 '300인 선언'이 발표되기도 했다. 20년이 지난 1909년 다시 철거논의가 거세졌지만, 탑 꼭대기에 설치된 전파송출장치 덕분에 살아남았다. 100년이 지난 지금 에펠탑은 파리의 상징이 되었으며 에펠탑 없는 파리는 상상할 수도 없다. 이래서 파리시민들이 날마다 보는 에펠탑에 정이 들어가듯 단지 자주 보는 것만으로도 호감이 증가하는 현상을 '단순노출의 효과' 또는 '에펠탑 효과'라고 한다.

 

이 선배님은 경기도와 깊은 인연이 있는 강화군에서 공직을 하던 중 흔한 표현으로 나라의 부름을 받아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육군 병장으로 제대를 합니다. 다시 강화군에 복직한 후 1979년경 화성군 비봉면으로 왔다가 오산시로 승격된 1989년 오산시청 개청과 함께 오산시 공무원으로 시민과 함께했습니다. 이 선배는 오산시 공무원으로서 근무하는 동안 시민으로 부터 받은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적은 금액을 장학금으로 내놓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결코 적은 금액도 작은 기부도 아닙니다. 그런 마음을 생각을 아주 오래전부터 가슴에 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조기 명퇴 결정, 장학금 기탁,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과정이 참으로 물 흐르듯 편안해 보입니다. 그리하여 시에서는 명예퇴임식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의미있는 퇴임식이 되도록 하기 위해 4인조 성악가가 초청되고 장학금 기부에 대한 기사문을 화첩으로 만들어 전시했습니다.

 

초중고 군대, 그리고 공직생활 내내 삶의 여적을 화면에 담은 활동사진을 가족 친지 후배 공무원에게 보여 주었다. 많은 분들이 명예로운 공직 퇴임을 축하하고 그간의 노고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런데 이날 시장님께서 서울 일정이 길어져서 오후 3시 퇴임식장에 20분 정도 지각하신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그래서 무대에 나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선배공무원님의 공직 역사를 잠시 소개하는 시간을 긴급 편성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야기 소재가 떨어질 무렵 2분만 어 이야기 해달라는 사회자의 말대로 22분간의 '약장사'를 마치고 객석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고속도로를 빠져나온 시장님 승용차가 사무실 앞에 도착하고 시장님께서 퇴임식장에 도착하시기 까지 소요시간은 예상보다 길었습니다. 다시 정적과 침묵의 시간이 다가서므로 재차 마이크를 잡고 알람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우리 공무원들은 회의를 시작할 때 20분 짜리 알람을 스타트하고 시작합니다.

 

그래서 벨이 울리면 회의는 종료됩니다. 오늘 제 이야기는 시장님이 '벨'입니다. 시장님께서 입장하시는 순간 에 말씀은 끝나고 궁금하신 분은 나중에 방으로 오시면 마무리 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그 순간에 시장님이 입장하시었습니다. 명예퇴임식은 웃음과 격려와 감동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시장님의 명연설도 좋았고 본인의 퇴임사도 무게 있고 임펙트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객석이 텅 빈 자리에서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스토리를 어찌 마무리해야하는가입니다.

 

결국 언론사에 조기 명예퇴임에 보태진 장학금 이야기를 보냈습니다. 매년 수십만명이 퇴직을 할 것인데 장학금을 내신 분에 대한 기사를 본 일이 없는 듯하니 좀 더 크게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기고문을 넘어 데스크 컬럼이나 사설에서 한 말씀 던져야 한다고 언론에 요청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성사되었습니다.

 

[경기일보] 이호락씨는 오산시청 국장이다. 1956년생이니 만 58세다. 40년을 일하고 오늘(29일) 퇴임한다. 법이 정한 정년까지는 2년 남았다. 그 2년을 반납하고 명예퇴직을 택했다. 이제는 일반화된 공직사회의 명퇴다. 이런 퇴임식 때마다 따라붙는 말이 있다. ‘후배들을 위한 용단’이란 형용사다. 실제로 간부직 공무원의 퇴임은 연쇄승진으로 이어진다. 오산시청도 이 국장의 명퇴 덕분에 5, 6, 7, 8, 9급 5명이 승진하게 됐다.

 

여기까지는 공직자의 일반적인 명퇴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이 국장의 퇴임을 거론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좀처럼 보지 못했던 모습, 장학금 쾌척 사실을 접해서다. 지역의 대표 장학재단인 오산애향장학회에 500만원을 전달했다. 이강석 부시장을 통해 전해진 그의 취지는 간단하고도 분명하다. “곡식을 심는 것은 1년 농사이고, 나무를 심는 것은 10년을 내다봄이고, 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100년을 준비함이다”.

 

1975년 강화군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1989년부터는 시로 승격한 오산시의 터줏대감이 됐다. 자치과장, 교통과장, 공보과장 등 일 많기로 소문난 보직들을 두루 맡았다. 하지만, 이런 여건이 배움에 대한 그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도내 모 대학이 개설한 공공정책대학원의 1호 석사가 됐다. 이후 관내 대학에서 강의까지 맡았다. 이번 장학금 전달은 배움에 대한 열망을 지역에 선물하고 떠나는 그의 마지막 모습이다.

 

지금 대한민국 공직사회는 소용돌이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로 대변되는 철밥통이 서리를 맞았다. 때맞춰 정부 여당은 공무원의 노후 보장이던 연금에 메스를 가하고 있다. ‘43% 더 내고 34% 덜 받아가라’는 개혁안도 나왔다. 공무원 노조는 반발한다. 공무원 10만명이 참가하는 총궐기 대회를 예고해놓고 있다. 하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공무원=철밥통’ ‘공직=권력’이라는 국민 인식이 그만큼 뿌리 깊다.

 

이런 때 보게 되는 장학금 퇴임식이다. 기억도 희미해진 ‘공복’(公僕)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하는 장학금 퇴임식이다. 후배들에겐 ‘선비’라고 불렸고, 업무 처리엔 ‘중심 잡기의 달인’으로 불렸다는 이 국장, 그가 두고 떠난 장학금은 후배 공직자 모두에게 500만원 그 이상의 선물로 남을 것임에 틀림없다. <김종구 논설실장>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

이강석 기자 stone91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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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오산#남양주 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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