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부서 근무할때의 이야기

  • 등록 2025.04.21 13: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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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1992년 34세에 공무원 6급으로 예산부서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당시의 예산편성은 전투적이었습니다.

 

도의회에 예산안을 제출하는 날은 법령에 정해져 있으므로 8월부터 시작해서 11월초에 마무리되어야 하는 대 역사입니다. 큰 일입니다.

 

지금도 숫자로 쓰고 있는 당시의 예산규모를 외우고 있습니다. 2조1,791억원입니다.

 

2022년 화성시 추경예산이 4조원이라는데 1992년, 30년전에 경기도 일반회계 예산규모가 2조원을 조금 넘었습니다.

 

 

지난날의 돈과 오늘의 재산은 상호 비교할 수 없는 가치의 차이가 있습니다. 결혼식에 10,000원을 내면서 큰 돈이라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100,000원을 내면서도 미안해 합니다.

 

금액적으로는 그러하겠지만 업무적으로는 과거나 현재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일하는 방식이 요즘의 공직사회와는 달랐으니, 당시는 마치 군부대의 중대장, 선임하사, 교관, 보초병, 소총수가 깊은 산속에 자리한 군 막사에서 벌어지는 군대와도 같았습니다.

 

특히, 업무에 열정이 넘치는 선임이 그런 분위기를 이끌었습니다. 이분이 떠난 후에는 일하는 방식이 변하고 주사보, 7급 중심으로 업무의 중심이 이동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무관이 팀장이 되는 부서가 증설되면서 파트별로 업무를 분장하였습니다.

 

2022년 현재의 예산편성이나 집행이 과학적이라 평가합니다만, 당시에도 예산편성은 사업을 면밀하게 분석하는 사업카드가 있었습니다.

 

특히 시설공사의 경우 기본설계, 실시설계, 감리 등 용역, 시설공사비, 토지매입비, 시설부대비 등 예산의 쓰임에 대한 상세한 분류를 했습니다.

 

이 사업은 언제 시작되었고 이미 투자한 금액은 얼마이며 올해 예산에 얼마를 반영하며 앞으로 예산을 더 투자하여 준공한다는 계획을 한눈에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부지사, 도지사는 사업계획서를 보고 결재를 하고 결재가 나면 그 내역에 따라서 예산을 편성합니다.

 

예산항목에 맞춰서 금액을 써넣은 작업을 예산의 조립이라 했습니다. 처음 예산부서에 들어가서 보니 예산편성은 하지 않고 사업카드 작성에만 열정을 보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만나는 예산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산사업에 대한 분석에만 수개월째 매달리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일주일 정도 날을 잡아서 기획관리실장 결재를 받고 부지사를 거쳐서 드디어 도지사 결재를 받았습니다.

 

1992년이면 대략 지방자치가 시작되는 해입니다. 이전까지는 (유신)헌법 부칙에 따라 지방의회는 통일될때까지 구성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헌법이 개정되었고 지방자치법, 지방재정법에 예산편성과 의결의 규정이 신설되었습니다.

 

이전까지 지방의회 기능을 상급기관이 대행했던 것입니다. 시군의 예산편성에 대해서는 도지사가 결재하여 승인했습니다. 우선은 시군예산 승인과정을 보겠습니다.

 

아마도 연말 10월부터 시군 예산계 실무자 2명정도는 팔달산 도청 인근의 감포여관, 대도여관, 설악산장여관에서 장기 투숙을 하면서 예산 심의를 받았습니다.

 

이들 장기투숙과 작업전문 여관에는 보르네오섬의 나왕나무로 만든 작업 식탁이 있습니다. 시골에서 잔치할때 쓰는 교잣상 모습이지만 폭이 좁고 가로가 더 길어서 긴 서류를 올려놓고 주판으로 계산하기에 편리합니다.

 

이 상위에 서류와 부책을 올려놓고 숫자작업을 하기도 하고 다방커피를 주문해서 마시며 쉬기도 하고 더러는 자장면을 먹었습니다.

 

종이를 칼로 잘라서 편집작업을 하기에도 유용했습니다. 상바닥이 칼에 긁혀도 크게 마음 아프지 않은 다용도 장비입니다.

 

여러가지 용도에 쓰이는 작업용 밥상위에서 밤 늦게까지 일을 하다가 3개를 3층으로 포개놓고 남은 공간에 이불을 펴고 잠을 청한 후 새벽에 일어나서 또다시 숫자 더하기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그래서 경기도청 인근의 여관에서는 돈을 들여서 멋진 교잣상을 제작하고 시군청 공무원을 초빙했습니다.

 

도청 여러부서에 비공식적인 홍보전략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장기작업에 편리하고 가끔 도청에 올라가기에 편리한 인근의 여관이 성업했습니다.

 

공무원들은 여비를 받아 숙박비를 지불했고 작업기간이 길어지면 도청 관련부서에서 과장 결재를 받아 기간을 연장했습니다.

 

그리고 마무리 작업은 비교적 가까운 시청의 공무원 3명정도가 남아서 종결지었고, 그 경비를 하루전 미리 집으로 퇴근하는 동료 공무원들이 거출, 갹출한 돈으로 처리하였습니다.

 

다른부서에 7급으로 근무할때에도 세입을 합산하는 여관작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팀장님, 5급 사무관께서 왜 여관에서 일하는가 하십니다.

 

도청의 회의실을 활용하면 될 것이라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시군 공무원들은 도청 인근에서 숙식을 하는 작업을 명받고 왔습니다.

 

사무관님은 낮에 도청 회의실에서 작업을 하고 저녁에는 각자 여관에서 잠자고 다시 출근하는 방법을 제안하셨습니다.

 

하지만 대단히 비효율적이었습니다. 결국 사무관께 건의해서 여관에서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시군청 공무원들도 찬성했습니다.

 

도청 회의실을 작업실로 확보하는 것도 여려운 일이지만 하루종일 딱딱한 의자에서 일하기 보다는 이불펼치고 등받이로 쓰면서 두발 펴고 일하는 여관작업이 효율적입니다.

 

피곤하면 잠시 낮잠을 자기도 하고 밖에 나가서 자장면을 먹으면서 체력을 보충하기도 했습니다.

 

1980년대 공무원들은 대부분 여관작업을 하였습니다. 이를 자세히 알지 못하는 가족들은 도청, 시청에 근무하는 아버지들이 왜 여관작업을 하는가 궁금해 했습니다. 이런 여관작업은 행정기술중 하나인 엑셀프로그램이 보급되면서 크게 줄었습니다.

 

엑셀이라는 프로그램을 시군청에 보내고 수식을 입력한 후 경기도내 31시군의 것을 하나로 합산하면 수분안에 끝나는 일이 된 것입니다.

 

이후 여관작업은 기획부서, 사진 등 보고서 작성, 조례개정 등 일반 행정 업무의 경우에 많이 활용되었습니다.

 

예산편성과 심의과정에서의 에피소드입니다. 앞서서 시군 예산을 도에서 승인한다는 설명을 드렸습니다. 시군청 예산을 편성하여 검토한 후 도지사 결재를 받아서 승인합니다.

 

그래서 과거 임명직 도지사는 12월31일 오후 2시에 이른바 '종무식'을 한후 각 부서를 돌면서 술 몇잔을 하신 후에 그해 마지막 업무로 가장 중요한 시군 예산을 승인하는 결재를 했습니다.

 

염보현 도지사는 종무식날 오후 3시경에 집무실에 들어와서 시군예산을 승인하는 결재를 했습니다.

 

당시에 예산을 관리하는 부서는 이원화되어 있습니다.

 

기획관리실 예산계에서는 본청과 도청 사업소 예산을 관장하였습니다. 내무국 지방과 기획예산계에서는 시군예산을 검토, 조정, 승인하는 업무를 했습니다.

 

예산계(기획관리실)에서 도가 시군에 보낼 예산을 정해주면 기획예산계(내무국 지방과)에서 보조내시를 합니다.

 

보조내시란 이만한 금액을 이런 사업용으로 보낼 것이라는 추정액을 공식 문서로 알리는 것입니다. 시군청은 도지사의 보조내시 사업을 우선 반영합니다. 보조내시에는 반드시 시군예산 부담을 지시하기 때문입니다.

 

보조내시서에 따라서 편성된 예산안을 기획예산계가 수개월동안 검토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꼭, 하필, 왜 그랬는가 몰라도 법령에 의한 도지사 승인 결재는 종무식 이후에 진행되었습니다.

 

거창하게 준비한 서류와 자료를 진연한 도지사실에서 염보현 지사가 호기있게 결재를 진행합니다.

 

"내년도 도와 시군의 예산은 얼마인가?"

"도가 3조원, 시군이 5조원입니다"

"그럼 이것을 내가 결재를 해야 하나?"

"예, 지사님! 내년도 사업을 잘 추진하겠습니다"

 

사실 종무식날 반드시 결재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다음날인 1월1일부터 시장군수가 업무추진비를 집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업비는 1월3일 시무식에 집행을 시작해서 1년내내 공무원들은 매일매일 예산회계 업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급식비 등 일상적인 비용을 대부분 현금으로 집행하였습니다. 물론 카드로 집행하는 경우라도 예산이 배정되고 회계장부에 현금이 들어와있어야 가능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파악해 보니 법인카드는 집행당일 현금이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고 대략 10일정도의 여유기간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부서나 비서실에 예산 배정이 있다면 도지사의 승인이 없어도 법인카드로 필요한 경비의 집행은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엄정한 공무원들은 장부에 예산이 배정되고 회계부책에 돈이 들어와 있어야 집행을 하게 됩니다. 여러명의 실무자와 책임 결재권자가 합동으로 운영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엄중한 시스템속에서도 수십억을 말아먹은 공무원의 비리사건이 보도된 바 있습니다.

 

회계비리 공무원이 대단한 것인지 감독자가 소홀한 것인가는 각각의 경우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만 요즘에는 보안시스템이 보강된 것일까, 큰 사건이 나오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예산의 승인과정은 광역자치단체인 도와 내무부간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도가 시군의 예산을 승인하는 것처럼 서울특별시, 경기도의 예산은 내무부장관이 승인하였습니다.

 

내무부는 과거 총무처를 흡수하고 행정안전부였다가 행정자치부였다가 이제 다시 행정안전부입니다.

 

2022년 최근에 행정안전부가 경찰국을 크게 신설하면서 경찰청과 충돌하고 전국적인 반대시위, 삭발투쟁이 벌어졌습니다만 결국 정부의 권력, 장관의 힘은 막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행정안전부장관이 대학과 고등학교의 지방이전을 발표해서 또한번 혼란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기획관리실 예산계 실무자들은 내무부의 예산승인을 받아서 차를 타고 달려와 도지사에게 이 기쁜 소식을 보고하고 각 부서를 불러모아서 다음해 예산을 배정해 주면서 전장에서 승리한 병사처럼 호기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내무부 작업방은 필운여관이 유명했습니다. 이곳에서 3개월정도 도청 인근 여관과 같이 보르네오 나왕 교잣상에 일한 결과가 예산안의 승인이라는 열매인 것입니다.

 

전산시대 요즘에는 행안부 승인이 아니라 의회의 승인을 받습니다.

 

그래서 의회의 예산승인 과정에 대한 기억을 모아 보겠습니다. 8월부터 편성작업을 시작해서 마무리하여 조립한 예산안은 대략 11월초에 도의회에 제출합니다.

 

예산안을 제출하고 도지사가 시정연설을 통해서 그해의 도정의 성과를 말하고 다음해의 예산규모와 투자 우선분야에 대한 설명을 합니다.

 

도지사가 분야별 예산투자의 방향을 말하고 각론은 기획관리실장이 본회의장에서 설명을 합니다. 정부도 국회에서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하고 예결위에서 각부장관이 해당 예산을 설명하는 것처럼 도에서도 도지사의 보고에 이어 상임위원회별로 실국장이 예산내용을 설명합니다.

 

실국과 상임위간의 예산설명이 끝나면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시작됩니다. 예결특위라고 줄여서 표현하고 상임위는 예비심사, 예결특위는 본심사입니다.

 

상임위에서 증감한 예산내용이 예결위로 보내지지만 각 상임위원회에서 2명씩 추천된 예결특위 위원들은 원점에서 다시 예산안을 검토합니다.

 

예결특위 위원들이 국장의 설명을 듣고 예산내용을 파악한 후에 소위원회 5인을 구성합니다. 소위원들은 특위 위원들이 예산안 심의과정에서 나눈 국장과의 대화내용을 바탕으로 조율을 시작합니다.

 

지방자치법에서 의회는 집행부가 제출한 예산안의 금액을 삭감, 축소할 수 있지만 증액의 경우에는 집행부, 즉 경기도 기획관리실장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기획관리실장은 의회의 증감내역을 도지사에게 보고하고 증액부분을 동의하겠다는 사전 결재를 받습니다.

 

도지사의 의사를 기획관리실장이 대신 전달하는 것입니다. 의회는 집행부의 동의를 받아 증액하고 감액해서 예산안을 예산으로 의결하여 집행부로 보내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당시 예산계장님들의 시군 예산안 심의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규모가 유사한 4개시를 나란히 앉혀놓고 101 급여부터 마무리 지원제비까지를 축조심의합니다.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비교하고 평가해서 결정을 내리는 과정입니다.

 

4명의 젊은 7급 공무원이 도청 5급 사무관의 예산심의를 서너시간 받는 동안에 예산계장님을 상사가 호출하기도 하고 전화를 받기도 합니다.

 

하나둘 따져서 심의를 마친 예산안 서류 틈새에 연필을 끼워두었는데 상사를 만나고 돌아온 예산계장님은 끼워진 연필을 빼고는 첫장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이러기를 반복하니 과천시인가 어느 시청 공무원이 속으로 부글부글 제성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실신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물을 마시고 정신을 차리기는 했으나 이를 보신 계장님은 그냥 한말씀 하셨답니다.

 

"그 사람, 참!"

 

이 직원은 이후에도 여러번 연필이 예산서 종이 틈새에서 빠져나오는 상황을 겪으면서 그해 예산심의를 잘 받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지금쯤은 정년퇴직해서 제2의 삶을 살아가고 있기를 기원합니다. 당시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거의 공직에서 물러났을 것입니다.

 

또다른 기획예산계장님은 인품이 합리적이어서 많은 공무원들이 존경했습니다. 훗날에는 인사계장으로 근무하시면서 저를 7급에 승진하는 문서에 서명을 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예산심의는 물론 사업검토에서도 합리성을 추구하신 분입니다. 함께 일하신 공직 선배들은 물론 주변에서 협조관계를 가졌단 공직자들도 이구동성으로 칭송을 합니다.

 

주변의 세평이 좋은 공무원, 선후배 모두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공직자가 크게 성장합니다. 자신의 주장이 강한 경우는 6급, 5급에서는 효과가 있어 보이지만 4급부터는 어려움을 겪는 것 같습니다.

 

4급은 관리자, 과장입니다. 1980년대에는 군수이고 도에서는 국장이며 차후에 임명직 시장이 될 인물입니다.

 

그러니 스스로 간부급이라 생각한다면 자신의 생각보다는 다른 이들의 의견을 경청하시기 바랍니다. 공직에서 자신의 주장을 최대한 주장할 수 있는이는 도지사, 시장군수 등 기관장입니다.

 

부단체장도 자신의 주장을 펼치려면 좌고우면이 필요합니다. 전직원의 대표이고 기관장을 보좌하는 첫번 계선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여관작업 이야기를 하니 저만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세정과에서 시군 작업을 마치고 그 결과자료를 가지고 내무부 작업장에 올라갔는데 거의 마무리 부분에서 사무실의 서류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경기도청 세정과 전직원이 규정에 따른 야유회를 가서 사무실에 아무도 없습니다.

 

가까운 수원시청 세무과 동료에서 서류배송을 부탁했지만 그 역시 바쁜 일로 서울에 오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함께 작업한 서류중 수원시 직원이 쉽게 찾을 수 있으니 도청 사무실에 가서 서류를 찾아서 아내에게 전해주는 작업까지만 부탁했습니다.

 

그리하여 서류를 받아든 아내가 서울의 필운여관으로 올라왔습니다. 전국 시도에서 모인 공무원들이 집계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가져온 서류는 부산시 공무원이 담당하는 파트에 필요했고 올라온 김에 아내가 숫자작업을 돕게 되었습니다.

 

함께 작업을 하는 시도 공무원에게는 경기도청에서 온 미혼 공무원이라고 아내를 소개했습니다. 그러니 부산 공무원 선배는 아내에게 농담을 하면서 재미있게 작업을 진행하였고 저녁식사 전에 일을 마쳤습니다.

 

경기도에서 준비가 부실하여 하루 더 업무를 하였으므로 미안하여 저녁식사후에 맥주를 냈습니다. 그리고 건배사를 하면서 이 여성은 도청공무원이 아니고 집에서 도청으로 달려가 사류를 받아들고 올라온 아내라고 소개했습니다.

 

주변에서는 환호성이 올랐고 부산 선배는 자신의 농담이 미안했다며 크게 웃었습니다. 그렇게 흥미로운 여관작업은 잘 마무리되었고 시도 공무원들은 다른 방으로 방종연횡하여 우리 부부에게 한칸을 내주었습니다.

신혼여행을 경주로 다녀왔는데 두번째 신혼여행은 서울로 온 셈이 되었습니다.

 

다음은 면사무소 공무원의 에피소드입니다. 면사무소에 여성 신규직원이 발령을 받아 근무하던 중 총무계장이 군청소재지인 오산에 가서 업무를 도와주라 했습니다.

 

주판하나를 들고 따라가니 함께한 남성직원은 오후시간에 군청으로 가지 않고 여관골목으로 안내했습니다.

 

여성공무원은 잘 알지도 못하는 같은 면사무소 남자직원을 따라서 여관이 즐비한 이골목 저골목을 지나 어떤 여관 문 앞에 당도했습니다.

 

"여깁니다, 들어갑시다!"

"여기요?"

 

화들짝 놀란 여성공무원은 지금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하는지 난감했다고 합니다. 남성 공무원이 사전에 여관방에서 읍면 공무원들이 자료 합산작업을 한다고 알려주었으면 상황파악이 되었을 것인데 이 직원 역시 서먹한 여성 공무원에게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훗날 이 여성공무원은 그날의 긴장감을 이야기하면서 그순간 어찌 대처해야 하는가 만감이 교차되었다고 술회했답니다.

 

짧은 긴장의 시간이 지나고 일단 긴장을 하고 들어가보니 방방마다 남녀 공무원이 한가득 앉아서 수판과 계산기를 두드리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소통이 중요하다고 합니다만 맥락이나 현장 파악도 필요합니다. 버스타고 오산시 소재 화성시청에 가면서 우리가 가는 곳은 작업장이고 그 작업장은 여관방이며 거기에는 공무원 수십명이 있다고 사전에 알렸으면 참으로 큰 긴장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예산편성도 전산으로 집계되고 세무과의 징수액도 자동으로 계산되니 더이상 계산기는 필요하지 않고 엑셀프로그램도 자주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숫자 하나하나를 계산기로 두드리고 3시간 작업한 자료를 주산 8단이 한번 훌터보고는 틀렸다고 하면 또다시 들고가 계산기를 눌렀던 그 시절을 추억합니다.

 

세정과에서 하는 일이 세외수입 집계여서 거의 한달 내내 시군과 통화하여 보고서를 독촉하고 치수사업특별회계등 도청내부 세입을 종합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끔 하는 일중 무게감 있는 업무는 기채 등 채무상환이었습니다. 기채는 차석이신 6급 고00님이 담당하셨는데 일부 잔무는 7급에게 내려왔습니다.

 

어느날 내무부에서 재무이자 상환 자금이 60억원쯤 교부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1천억원 이상의 채무에 대하여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보내준 것인데 즉시 금액이 작은 것부터 채무별로 이자를 계산하여 결재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에 다시 은행별, 차입선별로 고르게 배정하도록 방침이 변경되었습니다.

 

이날은 토요일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토요일 13:00까지 근무하였습니다. 오전에 예산부서에 협조를 받으로 갔는데 자리에 계시지 아니하므로 이리저리 수소문하여 보니 기획관님실에서 예산계장님이 홀로 계시다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급하게 올라가서 결재를 올렸지만 지금 토요일 오후인데 뭔 결재를 올리느냐 하시면서 내용을 보시지 않으려 하십니다.

 

"이자 원금 상환인데요, 오늘 결재 안하시면 3일후에는 큰 손실이 발생합니다."

 

실제로 계산을 해보니 오늘 지출하지 않으면 월요일에 빨간글씨등 연휴기간이어서 3일간 지체되면 1일 800만원씩 2천4백만원 이자를 더 물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같은 설명을 들으신 장oo 예산계장님은 그제서야 반응을 보이십니다.

 

"이 사람 서기야! 서기보야!"

 

가슴에 단 명찰을 잡아 채셨습니다. 공무원증에는 내무국 세정과 지방행정주사보 이강석, 발급자 경기도지사입니다. 즉시 결재를 하셨습니다. 말없이 서명해 주셨습니다.

 

일은 이제 시작이었습니다. 오전 11시에 도금고인 제일은행에 사전 통지하여 두었습니다. 오늘 60억원정도 이자상환이 있다고 알려준 것입니다.

 

결재를 모두 마치고 문서를 도금고에 넘긴 것은 1시반경이고 도금고 직원이 수원시내 농협등 몇개의 은행에 들러 상환을 마친 것은 오후 5시경입니다. 이리하여 1일 800만원짜리 이자갚기 작전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담당 계장님의 방침 변경으로 2,400만원, 7급 공무원의 2년 반치 연봉이 날아갈 뻔한 사건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대단한 일이기는 한데 그냥 계장님의 지휘대로, 예산계장님이 결재를 늦게하여서 2,400만원이 이자비용으로 지출되어도 누구하나 문제삼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공직은 중요한 일을 합니다.

 

또다른 업무는 경영수익사업입니다. 주로 시군에서 양묘장, 골재채취, 문화재 관람료 징수, 유원지 유료화 등이 업무의 주종입니다.

 

하지만 민간의 경제활동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행한다는 것이 대 원칙입니다. 요즘에는 경제투자관리실에 9개 과가 있어 여러가지 경제정책을 행하고 있지만 당시 지역경제국에는 3과가 있어 기본적인 업무를 관장하되 주로 물가안정, 연료관리 등 규제행정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관람료 징수가 과연 필요한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1인 200원-300원인 관람료를 하루종일 받아야 100명이 오면 20,000원이고 한달을 계산하면 60만원입니다.

 

관람료 영수증 인쇄비도 들겠지만 징수자의 인건비는 당시 기준으로 최소 100만원을 주어야 할 것인데 그러면 매달 40만원이상 적자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입세출이 따로 있으니 징수된 관람료는 연간 720만원이 들어오고 인건비는 1천200만원이 나가는 것입니다.

 

차라리 관람료를 징수하지 아니하면 연간 480만원을 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관람료 부담없이 편안하게 문화재를 보고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는 점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지하철은 물론 KTX조차도 표검사를 늘상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LA에서 전철을 타 보았는데 표 1장을 사서 그날의 일자에 맞도록 복권처럼 숫자를 긁어낸 후 하루종일 여러번 전철을 타고 내릴 수 있습니다.

 

누구도 표검사를 하지 않는데 거의 모든 이들이 이 표를 산 후 전철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한번 무임탑승에 걸리면 거의 1년치에 해당하는 벌금을 물게 되기 때문입니다. 유색인종 사람들이 가끔 걸린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지하철역에서 표검사를 하지 않는 것은 문화의식이 신장된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표검사에 들어가는 인건비가 무임승차자의 요금을 벌금으로 징수하는 금액보다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생산성이 떨어지니 표검사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우리 행정도 벤치마킹할 수 있는 분야가 많을 것입니다. 아주 오래전 출근부를 없앤 것도 잘한 일이고 경상비를 실과에서 집행하도록 위임한 것도 잘한 일입니다.

 

특히 부서운영비라 해서 월 25만원을 과 회계담당이 알아서 집행하도록 하였는데 이 돈은 차, 휴지, 나무젓가락 등 작은 소품을 현금으로 직접 구입하도록 하여 편리하다고 합니다.

 

과거 면사무소에서 회계담당을 할때는 젓가락, 못, 화장지 등을 각각 회계서류를 꾸며서 건당 20여개의 도장을 찍어 지출한 기억이 있습니다.

 

품의서, 견적서, 영수증, 입급표 등 몇가지 서류를 구비하여 못 50개를 구매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퇴임하신 유재연 선배님으로부터 재무회계규칙 67조1항에 의하면 "구입과 동시에 소모되는 물품은 소모품대장에 정리를 생략할 수 있다"는 참으로 고마운 조항을 다시한번 기억해 봅니다.

 

당시에는 업무를 몰라서 구매하여 즉시 소매하는 복사지, 마분지를 소모품수불부에 올려서 1권, 100장을 소모품 사용하였다고 계장, 원장님 결재를 받았습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

지금 생각해 보아도 전혀 의미없는 일에 어린 공무원들이 시간을 쓰느라 토요일 오후의 여유를 맞보지 못한 것일까 회고해 봅니다.

이강석 기자 stone91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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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오산#남양주 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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