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되어서 15년차에 경기도인재개발원 교관요원이 되어서 예산실무를 강의한 바가 있습니다. 그 인연으로 6급 후반기 5급직전에 예산부서에서 3년간 경기도청 예산담당관실의 주무관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니까 공무원 6급이 되어서 처음으로 명함을 만들었습니다. 강사를 섭외하거나 외부인사와의 소통할때에 명함이 필수라면서 사무실에서 제작해 주었습니다.
이후 동두천시 생연4동장으로 발령을 받으니 당연한듯 동장 명함을 만들어서 책상위에 올려주었으므로 한뭉치 들고 다니면서 동민을 만나 인사하면서 드리고 시청에도 돌면서 인사하고 명함으로 내놓았습니다. 당시의 명함에는 소속과 성명, 전화번호, 삐삐번호가 적혀있습니다. 핸드폰번호는 없으니 적을 일도 없었고 문명의 첨단중 하나인 삐삐를 허리에 차고 정말로 삐삐거리면 그 번호로 전화를 해서 필요한 소통을 했습니다.
이후 부서를 이동할때마다 명함을 만들었습니다. 사무실에서 제작해주지 않으면 스스로 돈을 들여서 만들기도 했습니다. 동장으로 근무하면서 명함 아래칸에 이 명함의 제작일을 넣었습니다. 실용신안특허를 내야할까 생각도 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여러장의 명함을 받게 되는데 명함을 주신분 앞에서 명함을 받은 날짜를 적는 것은 실레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자리를 떠나면 주머니, 책상서랍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는 명함들을 어느날 문득 한곳에 모은 후에 수첩에 빼곡하게 붙이면서 언제 어디에서 받은 명함인가를 알지 못하는 기억의 한계를 겪곤 했습니다.
그래서 나의 명함에라도 이 명함을 인쇄한 날짜를 함께 인쇄하면 받은 분들이 어느날 즈음에 받은 명함인 것을 알 수 있도록 도움을 주자는 생각에 이른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인쇄하였거나 기관의 책임자로 가서 총무팀에서 사전에 명함 안을 검토하도록 요청하면 날짜를 넣어달라 했고, 근무중에 명함이 떨어져서 2차로 인쇄를 요청할때에는 반드시 인쇄날을 적도록 했습니다. 대략 부서에 2년내외를 근무하므로 근무중에 누군가에게 드린 명함은 대략 그 자리에 근무한지 1년 안쪽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더구나 10년, 20년후 명함을 정리하는 분이라면 인쇄한 날이 찍힌 명함을 보면서 아주 오래전에 받은 명함이라는 사실을 파악하면서 동시에 어느즈음에 무슨일로 만났을까 자신의 인생여정과 견주어보는 재미와 멋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 보기도 합니다.
최근에 열정적인 언론인을 만나 13년전 경기도청 홍보에 대한 논문숙제를 가지고 인터뷰를 해서 언론에 보도된 기억을 회고한 바가 있는데 오늘 문득 이 언론인이 인터넷을 통해 써올린 컬럼에서 명함과 함께 요즘 공직자들은 시청 홈페이지에서 이름조차 밝히지 않는다는 사실에 서글픔을 함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업무차 방문한 부서에서 명함을 건네지만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명함 꺼내기를 주저한다는 경험담에 심도있고 공감했습니다.
실제로 젊은 공무원과 연락을 하는 경우 핸드폰으로 연락을 주기보다는 사무실 전화를 많이 씁니다. 절반 정도씩 핸드폰과 일반전화를 쓰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핸드폰으로 연결하면 사안에 따라서는 문자나 SNS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회의날을 잡는 경우 발전적인 주무관들은 3개 날을 올리고 투표를 거쳐서 다수로 결정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무실 전화를 고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무실 전화이니 회의날짜와 장소를 말하고 다른 참석자와 조정하다보면 또 다시 전화해서 날짜를 바꾸기도 합니다. 개인정보라는 어려움이 있지만 핸드폰을 오픈하면 행정적 업무가 수월할 것인데 오직 사무실 전화로 업무를 진행하는 부서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SNS를 쓰자고 요구하기도 어렵습니다.
다음으로 시청의 홈페이지가 열릴때 공무원의 소속, 직, 성명, 이메일을 공개했습니다만 앞의 지인 언론인의 컬럼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민원인중에 공무원의 안타까운 사건까지 가는데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 개인정보, 핸드폰 번호를 가급적 오픈하려 하지 않는 경향에 이른 것으로 봅니다. 방송에서 보니 요즘에는 택배박스의 정보자료를 떼어내는 것은 물론 주소와 이름, 전화번호를 지우는 소품도 판매한다고 합니다. 개인정보 보호차원의 아이디어상품인가 봅니다.
하지만 공무원은 공무원인 것을 자부심으로 인하는 직업입니다. 민원인을 만나고 사회생활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시작할때 자신의 명함을 꺼내어 교환하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니 자랑스럽게 명함을 꺼내고 그 명함에 핸드폰번호를 진하게 인쇄할 수 있는 자신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행정기관 홈페이지에 모든 공직자의 이름이 올라가고 핸드폰번호는 오픈하기가 어렵다고 하니 이메일까지는 다시 공개되는 안전하고 신뢰깊은 사회로 성숙해 가기를 기대해 봅니다. 조금씩 양보하며 살자고 제안합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