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봉면 근무할때

  • 등록 2025.04.07 13:5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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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화성군 비봉면사무소에 처음 발령을 받고 만난 분은 안희창 선배입니다. 당시 회계담당자로서 이강석과 금은섭 서기보가 발령을 받고 온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군청에서 읍면에 발령대상자를 2~3일 전에 미리 공문으로 알린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군수님 발령장을 들고가서 인사하면 그제서야 발령사실을 아시는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군청 공문이 면사무소에 왔을 것이고 남자 한명과 여성공무원 한사람이 비봉면사무소에 발령된 것을 알았고 이름도 확인되었으며, 특히 이강석은 비봉면 자안1리 출신이라는 것도 파악되었던 것입니다.

 

이른바 본면 직원이 대부분이던 시절이니 이번에는 어느 동네에서 공무원이 오는가 하는 것도 궁금한 일이었습니다.

 

대략 비봉면사무소에는 25명이 근무했는데 23명은 본면출신이고 인근의 면에서 잠시 발령받고 와서 근무하는 직원은 2명이내였습니다. 얼마후에는 다른 면에서 근무하던 본면출신 공무원이 복귀하기도 하고 근무중에 군대를 가거나 타 기관으로 전근을 가기도 했습니다.

 

안희창 선배에게 인사를 하고 발령후 사무실에 출근을 하였고, 훗날 교사로 전공을 찾아간 강점석 선배의 후임으로 서무담당이 되었습니다.

 

저는 서무담당이 문서를 취급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군청 문서사송 홍주사님이 오시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나중에 면사무소 직원은 논두렁 밭두렁으로 뛰어다니느라 참으로 바쁜 직업임을 알았습니다만 처음 1개월간은 참으로 평온했습니다.

 

서무담당으로 업무를 지정받고 한달을 일하는 동안에 두번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수시보고통제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보고기한 안에 반드시 보고서를 군청에 제출해야 하는 중요한 업무입니다.

 

하지만 이 문서를 2주일정도 뭉개고 있었습니다. 이영채 계장님이 급하게 문서를 찾으시므로 캐비넷에 쌓아둔 문서를 뭉치째 가져다 드렸습니다.

 

급하게 보고하라는 두동그라미라 찍힌 문서를 찾아내시고는 급하게 공무원 인사통계를 작성해서 군청에 보고하십니다.

 

나머지 문서를 그냥 돌려주시므로 일주일을 더 가지고 있었고 드디어 산업계에서 보고가 늦어서 이른바 독촉장이 떨어졌고 당시의 민병일 부면장님의 도장을 받아서 지참보고했습니다.

 

부면장님 개인도장을 찍어서 보고서가 지연된 사유를 설명해야 했습니다. 나중에는 농촌지도소에서도 독촉장을 보내는 등 당대에 독촉장을 남발하는 모습도 기억이 납니다.

 

이같은 부족한 19세 공무원보다는 20대 후반의 이철희 선배가 발령되자 이강석은 산업계로 보내서 축산, 양정, 상공, 수산, 잠업, 관정, 농정 등 잡다한 일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이강석은 '사표서'를 작성했습니다. 사무인계서도 만들어서 봉투에 담은 후 이를 권병춘 선배에게 맡기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사표와 사무인계인수서를 받아든 권 선배는 이서기, 이서기를 연호하며 따라왔지만 이강석은 첫월급으로 마련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줄다름질 했습니다.

 

사표를 낸 다음 날에 민병일 부면장님이 권병춘 선배와 함께 49cc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오셨습니다. 집안으로 들어오시면서 어머니께 인사를 하셨습니다.

 

"어머니, 송구합니다. 귀한 자제를 데려다가 잘 근무하도록 하지 못하여 송구합니다."

 

오시자마자 사과를 하시니 할 말이 없고 오히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입니다.

 

함께 온 권병춘 선배도 힘들겠지만 공무원이라는 사회생활이 다 그런 것이라는 취지의 위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어머니도 답하십니다.

 

 

"아이고, 아들이 철이 없어서 그랬겠지요. 제가 죄송합니다."

 

아마 이렇게 답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두분은 면사무소로 되돌아가셨고 마루 기둥 옆에 내려놓은 재수생 가방은 그대로 다락장에 들어갑니다.

 

이날 서울로 출발하지 못하니 운명은 또한번 바뀌고 말았습니다. 재수생의 길로 갔다면 또 다른 세상을 만났을 것입니다만 두분의 설득으로 다음날 아침에 면사무소로 출근했습니다.

 

출근하여 잠시 자리에 앉아있으니 부면장님께서 면장실로 부르십니다. 당시 멋쟁이 홍무표 면장님의 앞에 앉으니 송구함뿐입니다. 하지만 고수 공무원이신 홍 면장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잘못 생각해서 너를 산업계로 보냈는데, 지금이라도 네 의견을 말하면 다시 배치를 할 수 있다."

"죄송합니다. 면장님께서 명하신 대로 열심히 근무하겠습니다."

 

"네가 그러면 그렇지. 너의 할아버지 이명의 어르신으로 보나, 아버지로 보나 너는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다"

이 말씀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원래대로 배치해달라는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이미 간파하신 것입니다.

 

고수는 원하는 바를 말하면 해주겠다 떡밥을 던지셨고 이강석은 그 떡밥속의 바늘을 피해서 '면장님께서 배치하신대로 근무하겠다' 답변함으로써 서로간의 체면을 살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산업계에서 열정으로 근무하였습니다. 면직원, 면서기가 할 일이 이런 것이었음을 2년반동안 열정으로 받아들이고 현장을 뛰었습니다. 그린벨트 단속, 통일벼, 논보리, 퇴비증산 등 다양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근무중에 한두분이 다른 기관으로 전근을 갑니다. 어느 기관에 근무하다가 임용권자가 바뀌는 전출을 가는 경우에 양 기관은 이른바 '割愛(할애)요청'이라는 문서를 주고 받습니다.

 

할애要請(요청)이란 귀기관장이 이 직원을 사랑하사 함께 근무하던 중에 그 사랑을 우리 기관에도 나누어달라는 취지의 문서를 말합니다.

 

아마도 행정기관의 용어중 가장 낭만스러운 표현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사랑을 나눈다는 표현이니 참으로 멋지지 않습니까.

 

당시에 군청에서 면서무소에 보내는 공문서에는 조치할것, 보고할 것, 기타 지시사항은 반말투였습니다. 상급기관에서 하급기관으로 명령을 내린다는 취지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2023년 이시대 공문서를 보면 존칭을 쓰고 있습니다.

 

민원인은 물론 기관간에서 상급기관에서 하급기관에 존칭을 쓰고 있습니다. 통보합니다. 자료를 제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불허처분 하오니 필요한 조치를 하시기 바랍니다. 신청에 대하여 승인처리하니 사업을 추진하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좋은 표현입니다. 기관에는 30명에서 수천명이 근무합니다. 기관마다 위상이 있고 모시는 국민이 있습니다. 일종의 법인격이랄 수 있는 기관간에 과거에는 할것, 보고하라, 저리하라 등 하대의 표현을 한 것은 잘못이 있습니다.

 

조선의 군신시대의 방식이라 핑게를 대겠지만 이런 하대하는표현이 바로 잡힌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기관간에 서로를 존중하고 존중하는 만큼 갑질도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1984년 도 본청에 처음 들어가보니 도에서 시군지역에 행하는 갑질이 많았습니다.

 

부서의 갑질도 흔했습니다. 공무원을 대하는 자세에서도 갑과 을이 확연하고 민원인은 을이고 공무원이 갑인줄 알았습니다. 도청공무원은 민원인에게 이렇게 소홀해도 되는가 하는 반문이 들었습니다.

 

회의중이라도 민원인이 오셨으면 그 민원내용을 알아보고 즉시 가능하면 처리해 드리고 시간이 걸리면 잠시 몇시간 기다리시도록 하는 것이 공직자의 기본자세라 배웠는데 이곳 경기도청에서 민원인을 기다리게 하는 것은 다반사였습니다. 여반장입니다.

 

다반사는 차를 마시는 날이 흔해서 차를 마시는 일처럼 흔하다는 말이고 여반장은 손바닥을 뒤집는 일처럼 쉽고 흔하게 행한다해서 나온 말인줄 압니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권력, 권한이 있다고 민원인, 주인인 국민을 이처럼 모시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요즘 2025년과 1984년 행정은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다만 당시의 공직은 자부심이 팽배했고 오늘날의 공직은 그만큼 긴장감이 흐르지는 않는 듯 보입니다. 신규자의 퇴직비율이 높은 것도 그런 이유이겠거니와 평생을 공직자로 일하겠다는 의욕이 생겨나지 않은 현실도 안타까움이 큽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

이강석 기자 stone91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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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오산#남양주 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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