民願과 民怨
공직 주무관 시절 지방공무원교육원에서 들은 명강사의 강의를 일부 기억합니다. 민원실무 강사인데 어려운 한자를 칠판에 올리고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국민이 국가나 지자체에 요구하는 대부분의 서류는 민원서류이니 그 내용으로는 주민등록, 호적, 병적, 신원증명서 등입니다. 그리고 건축허가, 개발행위, 벌목, 농지전용 등 부동산과 관련한 민원이 그 다음입니다.
사실 민원은 자신을 위한 서류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취업이나 사업을 위해 필요한 서류를 발급해 달라는 것입니다. 1년간의 소득세를 정산하는 연말정산 2주일간에 수원시 삼성전자 인근의 동사무소에는 지원인력이 파견되었다 합니다.
당시 수원삼성에는 가전라인의 근무자가 많아서 일시에 연말정산자료에 첨부하기 위한 주민등록등본 발급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입니다.
신도시지역에서는 건축허가민원이 늘어납니다. 그래서 화성시에서는 동탄에 동탄출장소를 열었고 태안읍에도 동부출장소를 마련하여 밀려드는 민원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파트단지, 공업단지와 신도시를 개발하는데에는 도시계획위원회, 건축위원회, 경관심의위원회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협의체가 가동됩니다. 이 모두가 시민의 민원을 감당하기 위해 마련되는 행정조직이거나 지원조직입니다.
다음으로 民怨은 행정기관의 업무처리에 대한 비판이나 자신이 요구한 民願이 원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하여 발생하는 원망적인 행정수요입니다. 흔히 집단민원은 공무원이 가장 어려워하는 일이고 선거로 뽑히는 단체장에게는 더더욱 민감한 사안일 것입니다.
다수에게는 힘이 있습니다. 다수가 주장하면 그 논리가 사회적 중앙에 자리합니다. 나홀로 8차선길을 횡단하면 무단횡단으로 경찰관이 호루라기를 불지만 수만명이 광화문 넓은 도로에 모이면 경찰관은 안전을 위해 줄을 서서 국민을 보호합니다. 무단횡단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경찰이 국민과 함께 8차선 중앙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民願이 民怨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담당하는 공무원은 어려움을 겼습니다. 더르는 떼법이 일반법을 이깁니다. 각종 공사현장의 뒷모습이기도 합니다. 법규정에는 없지만 공무원들은 이웃의 동의서를 받아오라 하고 심한 경우 인감증명서를 첨부하라 합니다. 이른바 막도장을 받은 것으로는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화성시청에서 시민옴부즈만으로 민원을 상담하고 있습니다. 민원인의 주장과 공무원의 답변을 듣고 중재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민원인이 부서에 가서 지산의 억울한 이야기를 하려해도 5분을 넘지 못합니다. 공무원이 바쁘기 때문입니다. 반면 옴부즈만실에서는 최소 50분정도 민원을 설파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관련부서 실무자를 초청하여 함께 논의하고 해결의 길을 모색합니다.
하지만 더러 바쁘고 화가나는 민원인을 만납니다. 처음부터 공무원을 원망하고 갑질이라며 화를 내기도 하고 공무원에게 폭억를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중재역할을 하다보면 마음이 흔들립니다. 민원인의 편에만 서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공무원의 입장만 고수하는 것도 바른 길이 아니라는 판단도 합니다.
그동안 행정이 풀어내기 쉽지 않은 일을 대화와 중재와 설득을 통해 해결한 사례가 조금 있습니다. 그리고 몇몇 민원인은 할말을 다하니 마음이라도 시원하다고 자평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경우도 봅니다. 그래서 옴부즈만은 민원인이 오시면 곧바로 들어가지 않고 세상이야기로 차분하게 시작합니다. 그리고 듣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방향이 잡히면 빠르게 진행합니다.
대부분의 민원인은 속마음을 다 올리지 않는다는 사실도 간과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처음 이야기는 원문대로 받아적고 듣고 나중에 의견을 진술합니다. 관련부서의 입장을 듣고 조율한 후에 3자가 모여서 해결방안을 모색합니다.
민원을 해소하기 위한 중재역할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民怨을 民願으로 풀기도 하고 民願이 民怨이 되는 경우도 마주합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은 공무원에게 있습니다. 민원인도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조화롭게 대화하는 기법을 익히고 시청에 오시기를 건의합니다. 거칠게 다룬다고 공무원이 쉽게 인허가를 내줄 수 없는 시대이기에 말씀드립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