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제란 음력 2월, 5월, 8월, 11월에 사당에서 지내는 제사와 음력 10월에 5대 이상의 조상 산소에서 지내는 제사를 의미한다고 사전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유년시절부터 할아버지, 아버지를 따라가서 산소에 벌초를 하고 3일후쯤에 조금 마른 풀을 갈퀴로 긁어모아서 집으로 가져와 아궁이에 불태운 기억이 있습니다. 시제, 시향날에는 과일과 떡, 적과 전을 준비하여 선산으로 올라가서 조상님께 올리고 절하고 축문을 읽으시는 80세 전후의 어르신의 모습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한때는 직계 5대까지의 조상님 벌초하는 일이 큰 부담이었습니다. 시골 읍내에서 버스를 내려 비포장길 5KM를 터벅터벅 걸어가서 산 중턱의 여러곳을 오르내려며 산소의 풀을 깍는 일이 중노동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는 고조, 증조할아버지 산소를 우선 벌초하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산소에서 작업을 하도록 진행해 주셨습니다.
어떤해에는 도시락을 가져갔지만 차라리 일찍 마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조상님을 모시는 벌초나 시제가 축제의 분위기가 아니라 부담스러운 업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이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해에 5대 문중이 의논하여 납골묘를 조성하였습니다. 5대까지의 조상을 하나의 봉분에 화장으로 모셨습니다. 묘역은 깔끔하고 잔디는 단정하므로 벌초작업이 수월해졌습니다. 산기슭을 이러저리 오르내리는 벌초에서 단정하고 평온하게 작업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퇴직한 이후에는 시간이 나서 6대조 이상의 종중 시제에 매년 참여하였습니다. 8월 벌초행사에도 함께하여 작업을 하고 한식뷔페를 트럭으로 실어와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참석율이 높아지자 문중 어르신들이 공무원 경험을 살려서 총무를 담당하라 하십니다. 그래서 그간의 경험을 살려서 '비중있는 총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총무직을 수락했습니다.
그리하여 벌초날과 시제에는 참여 종원들에게 약간의 교통비를 지급하였고 점심은 도시락으로 하는 해도 있고 가마솥을 걸어 해장국을 끓이기도 합니다. 올해 시제에는 김밥에 해장국을 내놓았습니다. 읍내 식당으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시골에서 40명 단체를 수용할만한 식당이 용이하지 않습니다. 식사후 귀가하는 방향도 동서남북이니 불편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해장국을 사서 짜지않게 물을 추가해서 끓여내고 조금전 받아온 김밥과 따스한 떡으로 점심을 대접했습니다.
종원들이 수고했다 말해주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사실 시제를 준비하는 과정은 1개월정도입니다. 한달전에 시제일을 알리고 구상을 합니다. 제수중 마른 것은 일주일전에 구매해서 창고에 넣어두고 음료는 3일전에 사들입니다. 그리고 미리 예약한 세제용품을 당일아침에 돌아다니며 받아서 차에싣고 종산으로 달려갑니다.
당일아침에 우선 해장국을 들통에 받아서 비닐봉지를 씌워 차에 실었습니다. 시장에가서 제수와 떡을 받았고 마지막으로 김밥집에서 방금 기계로 완성한 김밥을 박스에 담아 차에 실었습니다. 집에서 아내가 준비한 생율, 탕, 기타 제수용품도 빠짐없이 차에 실었습니다. 과일을 넉넉하게 사들여서 종원들에게 몇개씩 나눴습니다.
제수를 차리고 제사를 올리고 점심식사를 하는 과정은 우리네 가장의 하루 살림과 같습니다. 수저는 물론 국그릇, 치킨타올, 과도, 도마 등 주방용품 모두가 필요합니다. 제사를 올리는데 들아거는 용품의 가지수는 대략 80가지일 것입니다. 미리 창고의 재고조사를 하고 필요한 다양한 물품을 구매하는 일도 쉽지 않은 과정입니다.
주변에서는 아직도 시제를 올리느냐 묻는 분도 있습니다만 우리문중의 시제는 앞으로 20년이상 이어질 것입니다. 아이와 청장년들이 더 많이 참여하도록 노력중입니다. 며느님들에게는 특별히 총무로써 감사한 인사를 드렸습니다. 다른 성씨의 딸로 태어나 우리문중에 오신 분들이니 더욱 귀하게 모셔야 한다는 마음가짐입니다. 가화만사성, 가정이 화목하고 문중이 단합하여 사회의 기초인 가정과 문중의 단단함을 보여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하기에 시제의 의미를 적어봅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