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율을 치는 마음으로

  • 등록 2024.10.29 12: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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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기제사는 집에서 부모, 조부모, 고조, 증조할아버지 할머니 조상님께 올리는 제례이고 시제는 가을에 날을 정해 5대 이상의 윗대의 조상님 묘역에서 올리는 제사이다. 제사절차는 전문가라야 이해하고 절차대로 진행할 수 있다. 다른 절차보다 제사상을 차리는데 신경을 쓰게된다. 동네마을의 여러성씨의 대표들이 모여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당제사에서는 문중간, 집안간에 제례절차로 논쟁을 벌이다가 정작 가장 중요한 신주는 개가 물어가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제사는 절차와 의식에 엄중함이 있다는 말로 읽힌다.

 

 

신기하게도 포털사이트에 화성시 매송면 야목리 당제사에 대한 설명이 상세하게 나온다. 이 제사는 새마을운동때 미신을 타파한다고 해서 없어졌으나, 그 후 마을에서 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쌍초상까지 나는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 일때문에 무당에게 문의를 했고, 당제사를 안지냈기 때문이라는 답을 들었다고 한다. 이후 당제사를 다시 지내는 것이 좋겠다는 동네사람들의 여론으로 1985년부터 다시 부활시키게 되었고 그 후부터는 동네가 편안하고 풍파도 없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기제사, 시제, 당제사 등 모든 제례에 올리는 과일을 살펴본다.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梨枾), 어동육서(魚東肉西), 좌포우혜(左脯右醯) 등 상차림의 기본을 본다. 조율이시는 상 왼쪽부터 대추, 밤, 곶감, 배의 순서로 놓고 호두나 넝쿨과일을 그 곁에 올리고 마지막에는 다식, 산자, 약과 등을 둔다. 생선탕은 동쪽 즉 오른쪽에, 육탕류는 왼쪽 서편에, 중앙에는 채로 끓인 소탕을 두며 탕은 홀수로 쓴다. 생선머리는 동쪽으로, 꼬리는 서쪽으로 둔다. 상왼편에는 포를, 오른쪽에는 김치, 나물을 두고 간장을 그 가운데에 놓는다. 

 

고기류를 올리는데 삼적으로 육적, 봉적, 어적을 쓴다. 육적은 고기류, 봉적은 닭을 잡아서 쓰고 어적은 바다의 물고기를 찜하여 올린다. 어린시절 제사를 위하여 읍내까지 5km를 걸아와 달랑 소고기 반근, 300g을 사들고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께서 소기름을 어찌하였는가 물으시므로 다시 그 길을 왕복한 일도 있었다. 소고기 반근보다 소기름, 우지 2kg을 귀하게 여기던 시절의 추억담이다.

 

참고로 제사상에 올리는 과일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대추는 씨가 1개이니 임금을 의미하고 밤나무에 매달린 밤송이에는 3개의 알밤이 들어있으므로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3정승을 상징한다. 배와 사과, 감에는 씨앗이 6개 들어있다고 한다. 이호예형병공. 요즘의 중앙부처 장관을 상징한다. 결국 조상님께 제사를 올리는데는 임금에 대한 감사, 자손의 벼슬길을 희원하는 바도 담긴듯 보인다. 

 

수년째 문중의 총무직을 수행하고 있다. 제수를 준비하고 참여종원을 위한 오찬을 마련중이다. 올해에는 조금더 정성을 드리겠다는 마음으로 제수용품중 밤을 사서 물에 불려 이른바 '생율작업'을 했다. 기계로 껍질을 대충 깐 밤을 판다. 물에 불린 밤을 왼손에 잡고 오른손의 과도를 이용하여 마무리작업을 했다. 이른바 '생율을 치는'작업을 했다. 고동색 껍질을 밀어내니 흰색의 생율이 탄생한다. 그 색감을 찾아내는 작업에 힘들지만 흥미로움이 있다. 

 

생율치기 작업에서 고민이 있다. 이른바 중용지도를 지켜야 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둥근 밤 모양을 유지하려하면 뽀얀 생율 몇곳에 속껍질의 잔상이 남는다. 본래의 기대하는 흰색상의 생율로 쳐내려하면 생율의 굵기를 줄여야 한다. 껍질을 많이 벗겨내면 양이 줄어 안타깝다는 말이다. 밤의 크기를 어느정도 유지하려면 군데군데 속껍질이 남게되어 미관상 마음이 개운하지 못하다.

 

관공서 행사에서 뒷말만 듣지 않으면 성공이라는 신념으로 일했다. 퇴직후 종중 총무로서 시제를 준비하다보니 제대로 준비하자면 끝이 없고 대충하자면 그리 할 수도 있는 일이다. 시제를 준비하는 전체의 과정은 마치 생율치기와 흡사하다. 좀더 잘해보겠다고 나서면 밤알이 작아지고 밤의 모양을 유지하겠다 마음먹으면 군데군데 티글이 남아 있으니 다른 종원들 보시기에 마음이 불편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인생사도 마찬가지다. 정답은 없고 만점에 접근하는 노력에 나서는 것이 삶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

이강석 기자 stone91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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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오산#남양주 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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